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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붓이 좋을까?
박종진 2023년 02월 01일 (수) 00:01:26

붓을 언제부터 사용했는가에 대해서는 자료마다 다른데, 예전엔 진나라 때 만리장성을 쌓은 몽염이 만들었다고 하는 설이 많았지만, 최근엔 여러 고고학적 발견으로 은(殷)나라 때 갑골 중에도 붓으로 쓴 것이 있고, 신석기 말 산동성 용산(龍山)과 앙소(仰韶)의 채색 토기에도 붓 아니면 그릴 수 없는 것들이 발견되어 기원전 2500년 전 이전부터 붓을 사용했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몽염은 기존의 붓들의 단점을 보완하여 발전시킨 인물이고, 후한(後漢)시대의 초서(草書)로 이름을 떨쳤던 서예가 장지(​​張芝) 역시 붓을 잘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는 만큼, 붓은 한 사람의 독창적인 발명이 아니라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다듬어지고 발전한 것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붓이 좋은 붓일까요? 전통적으로 좋은 붓은 네 가지 덕(德)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첫 번째 붓끝이 뾰족해야 합니다. 뾰족할 첨(尖). 두 번째는 들쑥날쑥하지 않은 가지런할 제(齊)입니다. 세 번째 털은 둥글게 매어야 합니다. 둥글 원(圓). 마지막은 튼튼할 건(健)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것을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습니다. 왜나면 요즘 붓들은 값싼 것들도 이 네 가지는 잘 지켜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재료와 방법입니다. 

   
  (왼쪽) 칡 붓과 등나무 붓(정종미 갤러리에서 류필무 필장 붓)
(오른쪽) 황모 붓(정종미 갤러리에서 류필무 필장 붓)
 

일반적으로 붓은 짐승 털이 재료가 되지만 식물인 짚과 갈대, 칡과 등나무, 대나무와 새의 털인 닭털도 붓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서성(書聖)으로 불리는 왕희지는 쥐 수염으로 만든 서수필(鼠鬚筆)을 사용했다고 전해지고, 우리나라의 경우는 족제비 꼬리털로 만든 붓인 황모(黃毛)붓을 예부터 잘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밖에 소 귓속 털인 우이모(牛耳毛), 너구리, 늑대, 돼지, 토끼, 곰, 가늘고 부드러워 장액(獐腋)붓을 매는 데 사용되는 노루 앞다리 겨드랑이털도 붓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같이 큰 글씨를 많이 쓰는 현대엔 털이 길어 큰 붓을 만들 수 있는 양호(羊毫)필이 선호됩니다. 사실 양으로 불리지만 수염이 있는 흰 염소입니다. 중국 양쯔강 남부에 서식하는 흰 염소라고 알려져 있고, 그 흰 염소 털 중 비싸고 좋은 털은 목덜미 털입니다. 이 목덜미 털도 숫염소의 것을 더 선호하고 목뒤의 것을 세광봉(細光鋒)이라 하는데 이것을 최고(最高)로 치고, 턱 아래 수염 아래쪽 털인 조광봉(粗光鋒)을 그다음으로 칩니다. 

    
  붓끝 쪽 어둡게 보이는 반투명한
부분이 봉영 
 

그밖에 값이 싼 등, 배, 옆구리 털도 붓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런 이유로 세광봉과 조광봉이 많이 들어간 붓이 비싸고 덜 들어간 붓은 값이 쌉니다. 참고로 우리나라도 예전엔 좋은 붓을 맬 수 있는 흰 염소들이 전라도 해안가에 꽤 있어 좋은 붓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그 숫자가 많이 줄어들어 붓으로 맬 수 있을 만큼 좋은 털을 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실정에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세광봉이 많이 들어간 붓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우선 만져 보면 찰랑찰랑하고 털에 윤기가 있습니다. 두 번째 물에 적셔보면 붓끝 쪽으로 반투명한 부분이 깁니다. 이 부분을 봉영(鋒穎) 또는 영(穎)이라고 하는데 이 부분이 긴 것이 세광봉의 특징입니다. 이 봉영이 길면 길수록 오래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광봉으로만 만들어진 붓은 엄청 부드러워 붓을 세우는 실력이 없으면, 다루기 어렵습니다. 때문에 초보자에겐 무용지물(無用之物)입니다. 

   
  (왼쪽) 순양호 무심필
(오른쪽) 겸호 유심필
 

초보자는 단단한 털과 부드러운 털 두 가지 이상을 섞어 만든 겸호(兼毫) 붓을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면 가운데는 곰털로 채우고 바깥쪽은 염소털로 만든 붓은 곰털이 심(芯) 역할을 하는데, 이런 붓을 유심필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부드러운 염소 털로만 만든 붓을 무심필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유심필이 붓을 세우기 쉽기 때문에 초보자도 다루기 쉽습니다. 재료가 비싸지 않고 값이 싸지만, 붓끝이 빨리 닳기 때문에 오래가지 못합니다. 

재미있는 것이 서양필인 만년필도 부드러운 연성(軟性)이 있고, 단단한 경성(硬性)이 있다는 점입니다. 또 대체로 연성이 비싸고 경성이 값이 싸다는 점, 연성 만년필은 오래 사용한 숙련자에게 경성은 초보자한테 적합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년필 역시 연성펜촉이 더 오래갑니다.  

인간사(人間事)는 어떠한가요? 노자의 도덕경에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능히 제압한다.”는 유능제강(柔能制剛)이란 말은 어떻게 나온 말일까요? 노자 시절엔 변변한 붓도 만년필도 없었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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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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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rie (211.XXX.XXX.212)
노자가 말한 부드럽다는 것이 약하다기보다 사고의 유연함이나 폭넓은 지혜를 의미하는 게 아니었나 싶네요^^ 붓이든 만년필이든 손에 얼마나 힘을 어떻게 주어서 잡아야 하는 지 아는 사람에게는 부드러운 편이 쓰는 맛도 있고, 그만큼 잘 조절하기에 더 오래 쓸 수 있나봅니다. 단단하다고 무턱대고 힘을 주면 강철로 만들어도 남아나지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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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1 20:46:09
0 0
박종진 (118.XXX.XXX.47)
좋은 생각입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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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2 11:58:54
0 0
설후 (118.XXX.XXX.72)
펜도 붓도 알 수록 재밌고 공통점이 있네요!
생각 날 때 집에 있는 붓도 유심히 한 번 살펴봐야겠습니다;)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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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1 16:5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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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118.XXX.XXX.47)
자세히 보면 모르던 부분이 나올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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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2 11:5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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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 (115.XXX.XXX.142)
대나무로 만든 만년필이 있다던데 사실인가요? 대나무의 재질이 글쓰는데 도움이 될듯해서 구해 보고 싶습니다. 혹시 구입방법을 알려주실수 있는지요? 저는 drygin@naver.com을 이메일로 쓰며 010-9963-8247핸드폰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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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1 10:40:05
0 0
박종진 (211.XXX.XXX.243)
펜 대가 대나무인 만년필이 있습니다. 한 십년 즈음 전에 유행 했는데, 지금은 구하기 어렵습니다. 일본 야후 옥션을 검색 해 보시면 혹시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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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1 12:20:49
0 0
김봉현 (106.XXX.XXX.221)
초보자여서 엄두가 나지 않지만, 봉영이 긴 붓은 번쩍번쩍 아름다워서 탐이 날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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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1 09:5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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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211.XXX.XXX.243)
붓이던 뭐던 좋은 분은 탐이 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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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1 12:14:50
0 0
단석 (175.XXX.XXX.215)
붓에 대한 이해하기 쉬운 설명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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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1 09:22:02
0 0
박종진 (211.XXX.XXX.243)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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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1 12:14:04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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