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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디 차일드리스의 유산(遺産)
방석순 2023년 01월 27일 (금) 00:12:37

다보스의 말잔치가 끝났습니다. 지난 20일 폐막된 다보스 포럼(세계경제포럼; World Economic Forum)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지도자와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이 세상을 어떻게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을지, 근사한 말잔치를 벌였습니다. 코로나 대유행으로 3년 만에 다시 얼굴을 맞대고 열린 이번 포럼의 주제는 '분열된 세계에서의 협력', 그야말로 시대 상황에 걸맞은 구호였습니다. ​각 세션에서는 기후 위기, 세계 경제 침체, 우크라이나 전쟁 등 여러 현안들이 논의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의제에 관해서도 당장 실천 가능한 구체적 해결 방안은 도출해내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다보스 포럼은 말뿐인 잔치라는 비아냥이 뒤따랐습니다. 

   

포럼 의제에는 불평등과 양극화의 해소 문제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가뭄으로 더욱 어려워진 아프리카와 저소득 국가에 대한 지원 방안을 논의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도 물론 눈에 띄는 결론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다보스 포럼은 어쩌면 지구촌이 당면한 여러 문제와 위기의식을 두루 공감하는 데 더 큰 의의를 두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보스 포럼 폐회 직전에 보내온 세계 슈퍼리치(Super Rich) 205명의 공개서한이 오히려 크게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들은 "빈곤은 갈수록 악화되고 부(富)의 불평등은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 극단의 시대를 끝내야 한다.(End the age of extreme wealth.) 각국을 대표하는 여러분이 초부유층인 우리에게 지금 당장 세금을 부과하라(Tax the ultra rich)."고 촉구했습니다. 이들은 또 "세계 분열의 근본적 원인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분열된 세계에서의 협력'을 논의한다는 이번 다보스의 '글로벌 엘리트' 모임은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말로만 떠들지 말고 우리에게 부유세를 매겨라.’ 늘 못 가진 자들의 공격 대상이었던 이들의 신선한 반격이라고 할까요. ‘부의 99%를 부자 1%가 가졌다는 세상.’ 최첨단 과학 기술과 이를 응용한 산업을 극소수 엘리트들이 독점하는 세상에서 부의 편재는 어쩔 수 없는 현대 사회의 딜레마인지도 모릅니다. 슈퍼 리치들 스스로 "코로나19 팬데믹 첫 2년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10명은 자산을 두 배로 불렸으나 나머지 인류 99%는 소득 감소를 겪었다"고 말합니다. 국제빈민구호단체 옥스팜(Oxfam)도 “지난 2년간 창출된 새로운 부 42조 달러의 62%에 가까운 26조 달러를 상위 1%가 차지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래서 더욱 편재된 부를 나누는 배려와 지혜가 필요한 세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보스에서 세계의 유력자들이 탁상공론을 벌이고 있는 동안 미국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 일고 있는 선행의 릴레이가 최근 미국 언론에 보도되어 작지 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앨라배마주 헌츠빌에서 60마일 떨어진 제랄딘이라는 작은 마을 약국에 어느 날 나이 지긋한 농부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혹시 동네에 약값을 내기 어려운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약사 브룩 워커는 안타깝게도 가끔 그런 사람이 있노라고 답했습니다. 농부는 똘똘 뭉친 100달러를 맡기며 “누구든 약값이 없어 곤란한 사람이 있거든 이 돈으로 대신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면서 “돈이 어디서 나온 건지는 절대 말하면 안 된다”고 다짐을 두었습니다. 만약 누가 묻더라도 그저 주님의 축복이라고 말하라면서. 

농부는 다음 달 또 약국을 찾아와 100달러를 주고 갔습니다. 이후 매달 기부가 계속되었습니다. 지난 연말 그 자신이 만성 폐(肺) 질환으로 더 이상 기동이 어려워졌을 때까지 10년 동안이나. 기부금이 수천 달러 쌓이게 되면서 의료보험도 없고, 소득으로는 도저히 약값을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소리 없이 선행을 이어오던 그 농부는 올해 첫날 80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약사 워커는 비로소 그 작은 농촌에서 수백 명의 어려운 사람들 약값을 대신 내어준 착한 농부 호디 차일드리스의 선행을 가족들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차일드리스의 딸 타냐 닉스도 아버지가 죽기 직전에 털어놓는 바람에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타냐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평생 돈을 헤프게 쓰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마음속으로 써야 한다고 생각한 곳엔 지체 없이 쓰곤 했습니다. 누구라도 함께 식사하기로 했다면 서슴없이 밥값을 먼저 지불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매달 약국을 찾아가 100달러씩 맡기는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엄마가 병을 앓았을 때 약값이 무척 많이 들었어요. 아빠가 그때 일을 떠올려 그런 선행을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네요.”

공군 퇴역군인인 호디 차일드리스는 1973년 토네이도로 아버지와 아들을 잃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어디서건 그런 불행을 내색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헌츠빌의 록히드 마틴에서 제품담당 책임자로 일하면서 근무 시간 외 손수 농사를 지어 주위에 나눠주기를 즐겼습니다. 아내가 다발성 경화증에 걸려 걸을 수 없게 되자 그녀가 가고 싶어 하는 어떤 곳에라도 들고 안고 다녔습니다. 1999년 아내가 마침내 먼저 세상을 떠난 후 새 사람을 만났지만 아내에 대한 애틋함은 가시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워커의 약국에 한 싱글맘이 딸을 데리고 온 적이 있었습니다. 모녀 둘 다 약을 지어야 했지만 의료보험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워커가 차일드리스의 기부금으로 약값을 처리하고 선뜻 약을 내어주자 싱글맘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몇 달 후 싱글맘이 다시 약국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면서 약값을 내고 갔습니다. 워커는 ‘호디 차일드리스의 마음이 그녀에게 전달된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차일드리스가 매달 100달러씩을 맡기며 그 돈이 올바르게 쓰일 것이라고 믿어준 데 대해 워커는 자랑스러움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착한 일에 감염된 사람들의 공통된 느낌일 것입니다.

“그분의 친절이 내게 좀 더 사람들에게 배려하는 마음을 갖게 해 주었어요. 친절의 유산을 만들어 주셨지요. 이젠 차일드리스의 유산을 지켜가고 싶어 하는 제랄딘 사람들이 약국에 찾아와 기부금을 내놓곤 한답니다. 우린 그걸 ‘호디 차일드리스 기금’이라고 부르지요. 우리 마을과 호디의 가족들이 원하는 한 그 유산을 지켜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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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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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밤 (222.XXX.XXX.55)
참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도 차일드리스를 닮은 마음이
있을 겁니다.
감동적인 글로 그것을 일깨워주셔서 깊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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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28 11:15:57
0 0
방석순 (124.XXX.XXX.108)
착한 일을 하는 것에도 중독성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일단 그런 일에 한 번 참여하면 그 큰 기쁨을 잊지 못해 또 하게 된다는군요. 차일드리스의 선행에 감염된 마을 사람들도 그랬겠지요.
공감해 주신 데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23-01-28 12: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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