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찹쌀호떡집 부부의 조촐한 봉사
함인희 2023년 01월 20일 (금) 00:42:40

올해도 5일장이 서던 날 조치원 전통시장을 찾았습니다. 장날 전통시장에 가면 정말 ‘있어야 할 건 다 있구요 없을 건 없답니다.’ 가수 조영남이 부른 노래 화개장터 가사를 절로 흥얼거리게 됩니다. 발목에 빨강 러브마크가 예쁘게 장식된 양말도 장날 마련했구요, 밭일 할 때 안성맞춤인 몸뻬 바지와 뒷목 가리개가 달린 채양 넓은 모자도 장날을 기다려 사곤 한답니다. 어느 해 가을엔 긴 장대 끝에 주머니가 달려있어 감이나 대추 딸 때 요긴하게 사용하는 도구를 득템했답니다. 

장날 이 골목 저 골목 다니노라면 저도 모르게 숙연해질 때가 많습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계란 3판 10000원’이라 쓴 작은 골판지를 세워 놓고, 그 앞에 30개 한 판 달걀을 한 알이라도 깨질세라 조심스럽게 내려놓는 백발의 부부를 보며 오래도록 서 있던 적도 있습니다. 달걀이 불티나게 팔리길 기도하면서요. 

조치원 전통시장엔 명물이 많지만 찹쌀호떡집을 지나칠 수가 없네요. 호떡집 바깥양반인 최씨는 저희 농장의 반송 200여 주를 연기 밭에서 전동 밭으로 옮길 때 처음 만났습니다. 서글서글한 눈매에 붙임성이 남달랐던 최씨는 반송을 캐서 뿌리를 천으로 싼 후 옮기는 내내 구수한 이야기를 쉼 없이 들려주었습니다. “소나무 캘 때 삽을 어찌 대는지 보면 초짜인지 아닌지 대번에 알 수 있시유. 소나무는 이렇게 두어 번 옮겨주는 것이 좋쥬. 옮길 때마다 잔뿌리를 내려 흙냄새 맡을 중 알게 되면 2미터 넘는 것(반송)들 옮겨 심어도 절대 죽지 않어유.” 

최씨는 농사일로 아주 바쁜 철 아니면 소나무 옮기는 일을 ‘알바’로 하러 다닌다더군요. 본업은 따로 있어 농사도 웬만큼 짓고 2,000평쯤 되는 복숭아 농장도 갖고 있다 했습니다. 한데 진짜는 따로 있다면서 “시장 안 찹쌀호떡집 몰라유? 거기 유명한 맛집인디. 우리 마누라가 하는겨.” 하는 겁니다. 마누라가 찹쌀호떡집을 하는데 ‘엄청스리 얇고 바삭하게’ 호떡 부치는 솜씨가 좋다고 입소문이 나서 제법 손님이 많다고 자랑이 이어졌습니다. 호떡 부치느라 오른쪽 손목 인대가 늘어난 마누라를 위해 당신이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직접 호떡 반죽을 한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부지런히 일해서 모은 돈으로는 일 년에 꼭 한 번씩 내외가 해외여행을 다녀온다 했습지요. ‘가차운’ 동남아부터 시작해서 미국 서부도 가봤고 나이아가라 폭포 앞에서 기념사진도 찍었답니다. 유럽도 서유럽 동유럽 다 ‘댕겨왔고’ 중국도 만리장성 장가계 원가계 여기저기 유명하다는 곳은 거의 모두 가보셨답니다. 일본은 역시 온천여행이 가장 좋았다시네요. 

행복 바이러스를 뿜뿜 뿜어대는 최씨 특유의 공기 청정기 같은 미소의 비결이 부부 동반 해외여행이려니 했는데, 실상은 더 아름다운 사연이 숨어 있었습니다. 최씨 내외는 일 년에 두 번, 설과 추석이 다가오면 하루이틀 짬을 내서 찹쌀호떡 봉사를 다니신답니다. 농장에서 쓰는 용달차에다 호떡 굽는 데 필요한 난로와 불판을 싣고, 마누라는 호떡 재료를 챙겨서, 조치원 인근의 경로당이나 요양원을 찾아가 그 자리에서 직접 호떡을 구워 어르신들에게 대접을 하신다네요. 

뜨끈뜨끈한 호떡을 받아들고 활짝 웃는 어르신들 얼굴이 어른거려 거의 한해도 거르지 않고 봉사활동을 다닌 지도 10년이 넘어간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선거 나오려고 그러는 거 아녀?” 오해도 받았고, “호떡 한 조각으로 생색내지 말어유.” 핀잔도 받았지만, 지금은 진심과 정성이 통했는지 “최씨네는 복 받을겨.” “자랑스런 시민상, 임자가 최씨 아닌가유?” 덕담을 더 자주 듣는답니다. 

오늘도 시장 안 찹쌀호떡집 앞은 언제나처럼 제법 긴 줄이 늘어섰습니다. 처음엔 1,000원에 3장 하던 찹쌀호떡이 요즘은 1,000원에 2장으로 값이 뛰었네요. 뜨끈뜨끈한 호떡 옆에 따끈한 국물의 오뎅도 새로운 메뉴로 추가되었구요. 소소한 일상에 흔쾌히 만족하면서 작은 것이라도 함께 나누며 행복해하는 우리네 이웃, 최씨 내외 덕분에 마음이 따스하게 데워집니다.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구나.’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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