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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림(酒林)의 은둔고수
한만수 2023년 01월 03일 (화) 01:15:04

얼마 전에 초등학교 행정실에서 근무하는 조카에게서 충격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제 귀를 의심하며 들었던 말은 초등학교 1학년 중에 자기 손으로 급식을 못 먹는 아이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 말이 진짜냐?” 너무 충격적이어서 몇 번이나 반문했더니 한 학생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급식실 한쪽에 제 손으로 밥을 먹을 줄 모르는 학생들 자리가 따로 있어서, 점심 때마다 담임선생이 밥을 먹여 준다는 겁니다.

그 말을 듣고 나니까 군대 내무반에서 잠을 자던 신병이 엄마가 보고 싶다고 훌쩍훌쩍 운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신병이 울면 불침번은 지체없이 소대장이나 중대장에게 보고한다는 겁니다. 그럼 중대장이 자기 핸드폰으로 어머니와 통화를 하게 해준다든지(요즈음은 핸드폰 소지가 가능하다고 들었습니다) 맛있는 과자나 빵을 사주면서 사고 치지 말라며 달랜답니다.

초등학교 1학년에게 밥을 먹여 주는 교사나, 엄마가 보고 싶어 모포를 뒤집어쓰고 운다며 어머니와 통화를 하게 해주거나 맛있는 것을 사주는 중대장을 탓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인문학이 무너져 가는 현실을 비추어 볼 때 얼마든지 생겨날 수도 있는 현상이라고 봅니다.

제 친구 중에 두현이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9남매 중 늦둥이로 태어난 두현이는 지금도 덩치가 작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하기까지 가장 키가 작았습니다.
막내에다 덩치가 작아서 7살 때까지 엄마 젖을 먹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두현이 어머니가 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젖이 불어서 학교로 달려왔다고, 수업 중이던 두현이를 불러내서 젖을 먹이시고 다시 밭으로 가시는 걸 다른 학생들이 봤다는 겁니다. 결론적으로는 그때까지 집에서 젖을 먹었다는 말이 됩니다.
두현이 덩치가 워낙 작은 데다 급우들도 어릴 때라 그런지 두현이가 수업 중에 엄마 젖을 먹었다는 소문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저 또한 두현이와 지금처럼 친하게 지내던 사이가 아니어서 별로 궁금해하지 않았습니다.
두현이는 형제가 많아 형들은 군대에 가 있거나 사회에 진출했습니다. 바로 위 누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찌감치 서울에 있는 봉제공장에 취직했습니다.

집에는 나이가 많은 부모와 두현이만 살았습니다. 두현이는 내성적인 성격이라 말수가 없고 늘 혼자 지냈습니다. 고등학교 입학해서도 밖으로 나돌지 않았습니다. 또래 친구들은 방과 후에 꼴망태를 메고 꼴을 베러 가거나 논밭에 나가 일을 한다거나 가을 농사가 끝나면 산에 나무를 하러 다니기도 했습니다.
두현이는 도시 아이처럼 머리도 상고머리를 한 데다 늘 깨끗한 옷만 입었습니다. 논밭에 나가서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물어보니까 일을 도와주고 싶어도 어머니가 마당에도 못 나오게 했답니다.

도시 아이들과 다르게 시골 아이들은 공부를 잘해서 이다음에 대학에 진학하거나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꿈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일부 공부를 잘하는 학생 몇몇 외는 시험 때나 반짝 공부를 할 뿐이지, 평소에는 농사일을 도왔습니다. 부모님들도 "고등학교 졸업하고 취직 못하면 면서기나 하면 되지 뭐" 라며 자식들이 학교에 다녀오는지, 중간에 땡땡이를 쳤는지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어느 집에 가서 놀거나, 냇가나 둥구나무밑, 학교 운동장 같은 곳에서 밤이슬이 내릴 때까지 놀았습니다. 때로는 밤길을 이십 리 이상 걸어서 다른 동네까지 원정을 가서 놀기도 했습니다.

다른 동네로 원정을 가면 그 동네 아이들이 당연한 것처럼 술대접을 했습니다. 밤길 20리를 걸어오느라 지쳐 있는 중에 막걸리든 소주든 가리지 않고 취할 때까지 마시기 일쑤입니다. 두현이는 우리들과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도 귀한 시절이라서 밤에 집에서 공부만 하는 걸로 알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우리들과 다르게 술 같은 것은 입에도 안 대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허나, 나중에 알고 보니 근처에 사는 친구와 둘이서 한 되짜리 소주도 비운 적이 있다는 겁니다.

두현이는 장날 약장사 구경 같은 것을 할 때 덩치가 작아서 쉽게 눈에 띄지 않을 정도입니다. 소주가 아니라 물 한 대접도 못 마실 것처럼 작은 체구가 소주 반 되 분량을 마신다는 말은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눈치챈 두현이가 2탄을 날렸습니다. 4홉들이 소주 한 병 정도는 잠 안 올때 혼자 마신다는 겁니다. 나름 술 좀 마신다고 은근히 뻐기고 있던 저는 친구 5명이 4홉들이 한 병을 마시면 술에 취해 냇가로 몰려가서 합창을 하거나, 친구네 집 구석방에서 뻗어 버릴 정도입니다.

그때쯤이었을 겁니다. 두현이와 갑자기 친해져서 가끔 밤에 놀러 갔습니다. 두현이 부모님은 이미 환갑이 훨씬 지난 연세였습니다. 두현이는 바깥채에 방 한 칸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두현이 어머니는 가끔 4홉들이 소주 한 병에 김치나, 부침, 새우깡 같은 안주를 두현이 방에 넣어 주셨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짜리 아들에게 4홉들이 소주를 넣어주시는 이유는 "남자는 술 좀 마실 줄 알아야 한다"는 단순 명쾌한 명분입니다.
요즘 미성년자 아들에게 소주를 사주면 자녀학대죄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 시절에는 그런 죄목도 없었거니와, 주름살투성이의 두현이 어머니가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훗날 생각해 보니 두현이 어머니는 막내자식이 아이처럼 너무 덩치가 작고 내성적이니까 담력을 키워 주시기 위해 가끔 술병을 방에 넣어 주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현이가 주림(酒林)의 은둔고수라는 것을 담임 선생님이나 여러 선생님들이 아실 턱이 없습니다. 마냥 착하고, 말수 적고, 조용하고 침착하기만 한 두현이를 어여삐 보시고 농협에 추천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두현이는 3학년 2학기 때부터 농협 직원이 되어 민방위복 비슷한 농협 유니폼을 입고 다녔습니다. 두현이의 주력(酒力)을 모르는 급우들은 농협에 저금하러 들렀다가 창구에 앉아 있는 두현이를 보면 착하게 산 보람이 있다며 갈채를 보냈습니다.

여담으로 한마디 더 하자면 일찌감치 새치 염색하기를 포기한 두현이는 완전히 백발입니다. 그래도 얼굴이 동안이라 제일 젊어 보입니다. 술을 마셔 붉게 물든 얼굴에 하얀 백발을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은 귀엽기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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