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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學園)》과 나
김창식 2022년 12월 07일 (수) 00:00:51

지난달 8일 게재한 '《학원(學園)》, 글쓰기로 이끌어준 책'을 잇는 글입니다. 학생 잡지《학원(學園)》과 나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약속을 드렸지요. 자천타천 문청이었던 필자 역시《학원(學園)》에 글을 몇 번 투고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실린 글의 제목이 <사계(四季)>였어요. 봄‧여름‧가을‧겨울 사시사철 변해가는 풍광을 묘사하고, 사랑의 움틈과 별리를 당시 유행하던 감상(感傷)적인 필치로 적은 단상이었지요. 그 글이 ‘우리네 동산’ 코너에 수록됐답니다. 아직 일부 메모가 남아 있는 터에 기억을 더듬어 글의 대강을 지금의 필치로 재구성해 볼게요.

<사계(四季)>
봄의 잠 깨임.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다. 거리는 질척이고 작은 얼음조각이 발길에 차인다. 그래도 건물의 처마 밑 낮은 곳마다 이름 모를 싹이 움튼다. 두엄 냄새가 싫지 않게 코에 스밀 때면 먼 산에는 연기인지 아지랑이인지 모를 희뿌연 기운이 아른댄다. 우리의 사랑도 식물의 둥근 뿌리처럼 물이 오른다.
여름 물고기.
싱그러운 풀냄새가 끼쳐오고 바람이 일 때마다 가로수의 나뭇잎들이 차르르르 차르르르 소리를 내며 초록 물고기 떼처럼 반짝인다. 여름나무에는 물고기들이 산다. 특히 비가 오고 난 뒤의 나무에는. 우리의 사랑도 여름 나무처럼 푸르러 갈 것이다.
조락의 가을.
하늘은 잿빛으로 잠기고 포도 위 나뭇잎들이 신음하며 이리저리 뒤챈다. 창백한 빛을 흩뿌리는 키 작은 가로등이 고개 숙여 울음을 삼키고 있다. 우리의 사랑도 가뭄을 어렵사리 버텨낸 식물처럼 시들어 간다. 사랑이 기울고 열정이 잠자는 데 무슨 이유가 있으랴만.
겨울 변주(變奏).
허망한 바람이 일었다. 바람은 도둑처럼 숨어 있다가 야경꾼이 내는 호루라기 소리처럼 좁은 골목길로 사라진다. 시나브로 겨울의 긴 터널 입구에 들어섰다. 머지않아 손끝이 얼고 두 뺨이 얼고 눈물마저 얼어붙을 것이다. 이제 사랑은 뒷모습으로만 시린 가슴에 남으리라.

심사위원은 소설가 김동리 선생이었습니다. 선생은 선평(選評)에서 "‘글이 정갈하고 발상이 참신하며, 구성의 묘미가 있다"고 좋은 평을 해주셨어요. 동리 선생의 칭찬은 내게 뿌듯함과 용기를 주었고, 언젠가 나도 훌륭한 작가가 되리라 결심하는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김동리 선생 외에도 산문 부문엔 최정희, 안수길, 박영준 선생이, 시 부문엔 모윤숙, 박두진, 박목월 선생 등 일세를 풍미한 한국문단의 거목들이 중, 고등학생 작문 심사를 맡았으니 실감이 안 나는군요.

이제 나의 문학에 대한 관점을 이야기할 차례입니다. 글을 쓸 때 항상 염두에 두는 것은, ‘지금(jetzt), 이곳(da)’의 문제입니다. 사회적 이슈나 문화 현상, 일상의 체험이나 옛날의 기억, 추억의 명화, 오래된 팝 명곡을 다룰 때도 현시성(現時性)을 떠올립니다. 인간에게 내재한 원형의 정서, 더불어 사는 이웃에 대한 연민,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동경, 관계의 본질과 삶의 이치에 대한 깨달음도 짚어봅니다.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주제야말로 절박한 관심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인간성을 고양(高揚)하는 글, 지적인 성찰의 단초를 주는 글, 치열한 사유와 시적 서정이 어우러지는 글, 마음을 움직여 변화를 이끌어내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글쓰기의 효능으로 '소통'을 거론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소통'은 '결핍된 부분을 내보이고 그것을 서로 나누어 가지는 것'이에요.

2008년 말 수필로 등단해 글을 쓰면서 답답함과 목마름을 느껴왔습니다. 주위에서 접하는 글의 내용과 구성이 엇비슷해서입니다. 목가적인 자연예찬, 일상과 주변의 사소한 일, 오래전 농경시대의 추억담‧‧‧. 갈증은 고민으로 이어졌어요. 어떻게 하면 새롭고 깊이 있는 글을 쓸 수 있을까? 자유로운 발상과 깊은 내용에 더하여 절실함과 치밀한 논리로 직조된 글쓰기라면 좋지 않을까? 이를테면 카프카적인 삶의 부조리와 머뭇거림을 헤세류의 서정적이고 성찰적인 문체로 풀어낸 글쓰기라고 말할 수 있으려나요.

왜 글을 쓰는 것일까도 자문합니다. 처음에야 그럴 듯한 답변이 있었습니다. ‘삶의 숨은 뜻을 찾아서?’ ‘지나간 형적(形跡)을 더듬어 보려고?’ ‘방황하는 한 노력하니까?’ '주변을 위로하고 사회공동체의 일원임을 자각하며, 인간 영혼의 구원에 이르는 단초를 탐색하기 위해?’ 등등. 이제는 ‘그저, 대책 없이!’라는 표현이 더 와 닿는군요. ‘그냥, 절박하니까!’ 글 쓰는 것 자체가 본디 삶의 외곽을 더듬는 일이어서 글을 열심히 쓸수록 삶의 중심으로부터 멀어지는 것 같은 막막함도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글을 안 쓰면 불안하고 다른 일을 하면 초조합니다. 글 쓰는 일이 존재의 이유가 된 셈이에요. 글을 쓰지 않는다면 어떻게 산단 말인가요, 도대체!

고등학교 때 《학원》 을 통해 시작된 문학에 대한 열정이 작은 심지의 촛불처럼 머뭇머뭇 타오르는군요. 아직도 문학을 향한 길은 멀기만 합니다. 여러 면에서 턱없이 못 미치고 힘이 달리기도 하는군요. 하지만 앞으로 내게 문학적인 작은 성취라도 있게 된다면 절대적으로 어린 시절 《학원》잡지에 힘입은 것이라고 이 자리를 빌려 고백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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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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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211.XXX.XXX.243)
선생님 잘 읽었습니다. 생각나면 또 꺼내보고, 또 꺼내어 자주 읽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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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7 09:52:23
0 0
김창식 (211.XXX.XXX.88)
관심과 배려 무한 고맙습니다, 박종진 선생님.
답변달기
2022-12-07 16:10:03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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