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에 나섰다가 유모차를 밀고 오는 할머니와 마주쳤습니다. 유모차에는 예쁜 강아지 두 마리가 타고 있었습니다. ‘고놈들, 참 귀엽네’ 하는 입속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 놈이 앙칼지게 짖어댑니다. 아마도 낯선 얼굴에 겁을 먹었나 봅니다. “네, 이놈들! 사진 찍어 고발할 거야! 왜 지나가는 사람에게 겁을 주는 거야?” 하고 장난스레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댔습니다. 할머니는 안절부절 강아지들을 나무라며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강아지들은 할머니의 든든한 배경을 믿어서인지 더욱 기세등등하게 짖어댔습니다.

산책길에서는 여러 사람들과 마주치게 됩니다. 손을 마주 잡고 느릿느릿 걸어가는 노부부, 앞서거니 뒤서거니 술래잡기하듯 장난스럽게 뛰어다니는 젊은이들, 음악에 빠진 듯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느린 걸음을 옮기는 이들… 그런 중에 앞가슴에 큼직한 주머니를 매달고 걸어가는 아주머니들도 여러 번 보았습니다. 주머니 속에서는 예쁜 강아지가 머리만 빼꼼 내밀고 있었습니다. 아주머니에게는 운동이 되겠지만 강아지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아주머니보다 강아지에게 더 많은 운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인구 절벽이니 어쩌니 걱정이라는데 동물과 벗해 사는 사람들은 늘어만 갑니다. 어릴 때부터 개, 새, 물고기들을 키워 보아서 그들로부터 얻게 되는 정서적 안정감, 위로가 얼마나 큰 것인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과의 슬픈 이별이 마음에 걸려 앞으로는 어떤 동물과도 인연을 맺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있습니다.

북한 김정은이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선물한 풍산개의 관리 문제로 잠시 소란스러웠습니다. 개인끼리 개인 자격으로 주고받은 경우에야 시비가 없겠지만 나라를 대표하는 공인으로서 주고받은 선물은 곧 국가의 소유라고 하니 그 처리나 관리가 엄격해질 수밖에 없겠지요. 그러나 생명을 가진 동물, 그것도 사람과의 교감이 가장 깊은 개에 관한 일이라면 아무래도 일반적인 물건의 처리나 관리와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전엔 개나 고양이를 애완동물이라 불렀는데 지금은 반려동물이라 불러야 한답니다. 많은 여성들이 강아지를 품에 안으며 남들 듣는 데서도 서슴없이 ‘엄마’라고 자처합니다. 예전 같으면 “별 망측한 소릴 다 듣겠네.” 했겠지만 이젠 아주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어버렸습니다. 또 예전엔 “개 같은 X” 하면 가장 험한 욕설의 하나로 생각했었습니다. 개보다 못한 언행을 일삼는 사람들은 여전하지만 지금 그런 욕설을 쓴다면 개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난받을지 모르겠습니다.

개, 고양이 등 반려동물들이 가정생활, 사회생활 속 깊이 자리 잡으면서 관련된 예절이나 생활규범도 반드시 갖춰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큰 개든 작은 개든 목줄 없이 풀어 놓는 것은 개에게도 사람에게도 여러모로 위험한 일입니다. 목줄을 잡았다 해도 덩치 큰 맹견에게는 입마개가 필수적입니다. 보기만 해도 무서운 개를 이끌고 다니면서 “우리 개는 물지 않아요.” 하는 주인의 말은 아무런 위안도 되지 않고 안전하지도 않습니다. 소음 방지나 배변 관리는 너무도 당연한 의무입니다.

사람과 동물 사이의 넘치는 사랑이나 과도한 집착이 오히려 관계를 해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반려동물에 매달려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기피하는 사람도 있고, 주인 어느 한 사람을 독점해 가족의 접근조차 허락하지 않는 개도 있습니다. 반려동물로 인해 오히려 정서가 무너지는 경우입니다. ‘3번아 잘 있거라, 6번은 간다.’는 이야기처럼 가족관계가 허물어지는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과 반려동물의 바람직한 관계, 타인에게 위협이나 폐해를 끼치지 않는 관리 방법에 관해 반려동물의 교육은 물론 관리하는 사람의 교육도 필요해 보입니다.

어두워져 가는 어느 날 저녁 친구는 지하도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의 단추를 누르고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기 조금 전 젊은이 한 쌍이 유모차를 밀고 다가왔습니다. 친구는 당연히 어린 아기리라 여겨 앞자리를 양보했습니다. 엘리베이터에 타고서야 들여다본 유모차 안에는 강아지 한 마리가 앉아 있더랍니다. 친구는 멍해져서 아무 말도 못하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유모차를 유유히 밀고 가는 그들을 바라보기만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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