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54주년 개천절이 지났습니다. 단군이 고조선을 개국한 것을 기념하며, 대한민국의 근간을 밝히는 날입니다.
지난 문재인 정부 동안 대한민국의 개국 시점을 놓고 여야가 갈등했는데, 이번에는 별다른 잡음 없이 지났습니다. 문제가 해결되었는지, 수면 아래로 잠시 가라앉은 것인지는 불분명합니다. 다만 정치권에서도 대한민국 기원의 뿌리를 개천절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세종은 한반도의 역사를 명확하게,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조선 역사 독립’이라는 어려운 일을 중국과 잡음 없이 부드럽지만 확실하게 해냈습니다. 때론 선물공세로, 어떤 때는 비굴할 만큼 저자세로, 또 백성을 명나라에 넘긴 적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세종은 조선이 독립된 국가라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조선이 독립해야 한다.’는 목표는 불변이었고, 끝내 성공했습니다. 심지어는 한반도의 역사가 중국을 앞선다는 것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세종은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에 조선의 왕들을 다 모시도록, 중국과 전혀 다른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놀랍게도 고려 공민왕의 신주도 종묘에 모셨습니다. 지금도 종묘 정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있습니다. 이 사당이 한반도의 역사를 고려까지 확장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세종은 즉위하자 곧 “고려사에 공민왕 이하의 사적은 정도전이 들은 바로써 더 쓰고 깎고 하여, 사신의 본 초고와 같지 않은 곳이 매우 많으니, 어찌 뒷세상에 미쁘게 전할 수 있으랴, 없는 것만 같지 못하다.”며(세종 즉위년 12월 25일) 할아버지 태종의 명으로 수찬된 고려사를 고쳐짓게 하였습니다. 조선과 단절된 고려의 역사가 아니라 조선이 맥을 잇는 줄기로 정의했습니다. 고려가 한반도의 역사에 불변의 진리로 들어왔습니다.

고려사 개편을 두고 반발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세종이 명나라를 의미하는 하늘 천(天)이란 글자를 고려사에서 다른 글자로 바꾸도록 명령했습니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조선의 기개를 꺾은 것이라고 주장합니다만 명나라가 天자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고려한 것일 뿐, 조선 백성의 기개는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쫀쫀하게 굴던 황제의 뒤통수를 가렵게 만들었습니다. 발단은 건국 초기 태조 때 조선이 정성들여 만들어 보낸 선물을 두고 황제가 시비를 건 것이었지요. “안장은 사람이 타는 것인데 사람이 하늘을 타는 것이 가한가? 이것은 짐을 모욕한 것”이라며 온갖 정성을 다하여 만들어 황제에게 바친 말안장을 불태웠습니다. 조선이 화들짝 놀랐습니다. 왕은 말안장을 만든 신하를 순군옥(巡軍獄)에 가두었다가 처벌할 명분이 없음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조금 뒤에 석방하였습니다.(태조 6년 4월 14일) 이후 조선은 역사에서 하늘 천을 휘(諱)처럼 취급했고, 사용하기를 조심했습니다.

세종은 또 고구려 신라 백제 삼국의 시조 사당을 지어 제사 비용을 국비로 처리했습니다. 이조판서 허조가 “제사 지내는 것은 공을 보답하는 것입니다. 우리 왕조의 전장 문물은 신라의 제도를 증감하였으니, 다만 신라 시조에게 제사지내는 것이 어떻습니까.” 하니 임금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것을 버리고 저것만 취할 수는 없다.”며(세종 9년 3월 3일) 삼국 시조의 사당 건립을 승인, 제사를 지냈습니다.(세종 11년 7월 4일) 세종은 삼국 역사까지도 조선 역사의 뿌리로 편입시켰습니다. 세종은 먼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중국이 언젠가는 고구려 역사를 자기네 것으로 약탈하려 할 것이란 음흉함을 근 600년 전에 미리 알고 막은 셈이지요.

세종은 또 단군을 기자와 함께 있던 사당에서 빼내 독립사당으로 지었고, 따로 모셔 국비로 제사를 지냈습니다.(세종 7년 9월 25일) 이로써 조선 역사의 뿌리를 중국이 실존했다고 주장하는 하나라보다 앞세웠습니다.

세종의 한반도 역사 확장 작업의 절정은 훈민정음 창제입니다. 세종은 문자의 역사로는 한자보다 한글이 뒤지지만 문자(중국의 한자)보다 역사가 훨씬 먼저인 (훈민정)음을 지었습니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발표하고 죽을 때까지 명나라에 대한 망궐례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세종의 극중(克中) 완결판입니다. 중국은 훈민정음을 넘어서려고 고심 중입니다. 7만 자의 한자를 2,350자로 줄였고, 표음문자로 변환하는 것도 연구 중입니다. 28자 이하로 줄이려면 황하강이 몇 번이나 맑아져야 가능할까요. 세종은 경연과목으로 역사를 선택, 공부하고 극중을 실천했습니다. 최근 중국이 걸핏하면 온갖 분야에서 몽니를 부립니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차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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