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빌라촌에서 산 적이 있습니다. 집 주변은 온통 ‘쓰레기 천국’이었어요. 이사를 와서 며칠이 지나지 않을 무렵 짐을 정리하다 바깥으로 나와 잠시 쉬는데 강퍅하게 생긴 사내가 나타나더니 담배를 물고 아는 체를 해요. “이사 오셨수?” “아, 예.” 주위를 휘둘러보던 사내가 담배꽁초를 손가락으로 튕겨 내버려요. “여기 사는 사람들은 쓰레기를 함부로 버린다니까!”

쓰레기를 쓰레기로 덧씌운다고? 적지 않게 헷갈리더군요. “이것은 짬뽕인가 비빔밥인가?” 아니 아이러니(Irony, 反語)인가 패러독스(Paradox, 逆說)인가?” 필자는 헷갈리기 시작하면 안절부절 대책이 없습니다.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물론 찬물로 샤워하면서도 땀을 흘리는 성질머리인지라 버려두었던 낡은 사전을 끄집어내 두 개념의 닮은 점과 다른 점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우선 ‘문학비평용어사전’(이상섭, 민음사, 1976)을 들추었죠. 아이러니는 ‘겉으로 나타난 말과 실질적인 의미 사이에 괴리가 생긴 결과 또는 겉으로 하는 말이 내용적으로 의도된 뜻과 다른(정반대되는) 경우’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한편 패러독스는 ‘겉으로 보기에는 명백히 모순되고 부조리한 듯하지만 자세히 생각하면 근거가 확실하거나 진실된 진술 또는 정황’으로 주의력을 환기시키는 수사법’으로 설명하고 있어요. 좀 더 각개격파로 이해의 범위를 넓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엔 ‘철학용어사전’(오가와 히토시, 미래의 창, 2013)을 참고했습니다. ‘그리스어 에이로니아(eironeia)에서 유래한 아이러니는 상대방을 에둘러 비난하거나 언어의 표면적 의미와 함축적 의미의 차이를 교묘히 이용해 상대방에게 진실을 깨우쳐주기 위한 화법’이라고 하는군요. 나아가 무지를 가장하여 상대방에게 고개를 끄덕이게 할 만한 질문을 끈덕지게 계속하다 결과적으로 상대방의 모순을 꿰뚫어 가르침을 주는 소크라테스(Socrates, B.C. 469~B.C. 399))의 문답법을 소개합니다. “네 자신을 알라!”

당연히 패러독스도 찾아보았죠. ‘그리스어 파라독사(paradoxa)에서 유래하는 패러독스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견해에 반하는 명제를 말하며, 엘레아학파(Eleatic School)의 제논(Xenon, B.C. 495?~B.C. 430?)의 패러독스가 많이 알려져 있다’고 기술합니다. 나아가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경주‘를 소개하는군요. 아킬레스가 아무리 빨리 달려도 앞서 출발한 거북이를 추월할 수 없다네요. 뒤늦게 출발한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따라잡았다고 해도, 그 시점에 거북이는 조금이나마 앞으로 나아갔을 것이기 때문에.

소크라테스의 애 낳는 법인 산파술(産婆術, maieutike)이나 아킬레스와 거북이 경주 같은 얼토당토않은 궤변을 모르는 바도 아니고, 그래도 성이 차지 않아 놓친 것이 없나 포털사이트를 바꿔가며 인터넷 검색은 물론이려니와 공짜 지하철 타고 대형서점에 가서 온갖 책을 다 찾아보았지요. 그 또한 제각각으로 오히려 머리만 더 복잡해졌어요. 관점에 따라 아이러니와 패러독스를 구분하기도 하고, 패러독스를 아이러니의 하위 장르로 취급하거나, 때로는 둘이 교집합을 이룬다고 하네요.

‘이러한 구분 자체가 아이러니요, 패러독스인지도 모르겠구나.’ 에라 모르겠다 다 포기하고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졸다 깨다를 반복하는데 퍼뜩 한 생각이 떠올랐답니다. ‘궁즉통(窮則通)’이라 두 용어의 차이를 쉽게 구분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에요.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 모르겠지만, ‘말이 되는데 뜻이 안 되면’ 아이러니, ‘말이 안 되는데 뜻이 되면’ 패러독스. 아래 예를 볼까요? 그럴듯하지만 그냥 혼자만의 생각이라고요? 그럴는지도!

“너 참 잘났다. 차림새가 '증말' 독특하네!”(아이러니)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오, 죽으려고 하면 살 것이다.”(패러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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