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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잊으리, 참혹했던 일제시대
황경춘 2022년 07월 15일 (금) 00:00:02

중국대륙 동북부에 진출하는 제국주의 야망에 불타는 일본 육군 과격파에 의해 1937년 중일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중일전쟁 발발 다음 해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저는 전시 체제로 급변하는 모든 생활양식에 휘말려 희망에 넘쳐야 할 중학 생활은 처음부터 실망의 연속이었습니다.

보통학교에서 고등보통학교로 진학하는 입학식을 며칠 앞둔 1938년 4월 1일에 교육법이 개정돼 '보통학교'와 '고등보통학교'는 일률적으로 '소학교'와 '중학교'로 이름이 달라지고, 선망의 대상이었던 검은 학생모는 군대식 국방색 전투모로 바뀌었습니다. 구두도 군화로 차츰 바뀌고 얼마 가지 않아 국방색 복장의 각반을 착용하고 등교하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군사 교련 시간과 근로 작업 시간도 늘어났습니다.

학교 교문은 넓은 교정 남쪽 끝에 있어 교사로 가는 도중 동쪽에 일본 천황의 사진과 글이 들어 있는 '봉안전(奉安殿)'이라 불리는 조그만 신사 모양의 건물에 인사를 하고 교사로 오게 되어 있었습니다.

인구 3만의 소도시 남단에 기차역과 넓은 광장이 있어 한 달에 한두 번, 학년 교대로 학생들이 일본 일장기를 각자 손에 들고 학교에서 2km 되는 거리를 행진하고 갔습니다. 일본 군대에 소집되어 가는 일본 청년들을 환송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 외에도 농업학교, 여학교 등 다른 학교 학생과 일반 시민들도 많이 동원되어 왔습니다.

진주는 경상남도 서부에 있는 철도 종점으로, 근처에 있는 마을에서 모인 출정군인들이 집합하여 서울 등에 있는 일본 군부대에 입대하는 특별 장소였습니다.

1941년 12월에는 일본군이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고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연합군에 선전포고하여 전쟁은 확대되고 일반인들의 생활은 더욱 핍박받게 되었습니다. 남녀의 사랑과 청춘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유행가는 점점 밀려나고 소위 애국가요나 국민가요가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외래어를 추방하는 운동도 일어났습니다. 당시 일본에서 가장 대중적인 담배가 '골든배트(황금박쥐)'였는데 이 담배 이름을 '킨시[金鵄]'로 바꾸었습니다. 킨시는 일본 황족의 상징 중 하나로, 신화 시절의 일본 황족 시조인 덴무[神武]가 나라를 통일하여 제1대 천황이 될 때 도왔던 전설의 황금 새입니다. 일본 군인에게 수여되는 가장 자랑스러운 훈장 이름에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각 스포츠 경기 이름에서도 외래어 배척 운동이 일어나 야구, 배구, 농구 등에서 용어가 제대로 자리 잡은 것도 이때부터이며 야구의 경우 투수, 포수, 내야수, 유격수 등으로 불리게 된 것도 이때였습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 수험생을 위한 참고서나 잡지 발행으로 가장 인기가 있던 출판사가 회사명을 ‘歐文社(구문사)’에서 ‘旺文社(왕문사)’로 바꾼 것도 이때입니다. 이 출판사는 지금도 그때 개명한 한자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해방 전에는 우리말과 일본어 사이에 미묘한 발성 차이 때문에 오해를 산 적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입대하는 장정들을 환송하는 자리에서 가장 많이 부르는 노래 첫 구절에 나오는 “승리하고 돌아온다고 맹세하고 고향을 떠난 이상…”이라는 대목이 있는데 이 “맹세하고”를 일본어 원음으로 '치캇테'[誓(ちかっ)て]라고 뚜렷하게 발음하지 않고 '치갓테'[違(ちがっ)て]라고 발음하는 학우들이 많아 음악 시간이나 교련 시간에 꾸지람을 듣곤 했습니다. 이 노래를 그런 식으로 부르면 “잘못해 나라를 떠난 이상”이라는 정반대의 뜻이 되기 때문에 일본어 교사가 오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말과 일본어 사이에는 이렇게 미묘한 발음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에 본사가 있었던 롯데 재벌이 한국에 진출할 때 회사 이름 '롯테'를 '롯데'로 등록한 것이 지금까지 그대로 있고 이것에 이의 제기하는 사람은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일본어 ‘ロッテ’를 정확히 옮기자면 '롯데가 아니라 '롯테'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는 한글 학자 간에도 이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전쟁이 확대됨에 따라 일본인의 특권이었던 징병제도가 조선인에게도 적용되어 우리 중학 동기생의 태반인 갑자(甲子, 1924년)생이 징병 1기로 신체검사까지 마쳤으나 원자폭탄에 의한 일본의 항복이 빨라져 저를 포함한 극히 일부만 일본군에 잠깐 입대했다가 살아 돌아왔습니다. 전쟁이 더 길어졌으면 어떠한 참상이 우리 조선인들을 괴롭혔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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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운 (14.XXX.XXX.108)
선배님 글을 여기서 보게 되어 무척 반가웠습니다. 저 정대수는 진주고교 27회로서 국제신문기자로 서울지사에 있을 때 AP지사에 계시던 선배님을 뵌 적이 있었습니다. 그후 대학에서 정년 퇴임하고, 작가로서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필명 정다운, 대표작 평양 누아르) 연로하신 선배님의 건안을 빕니다. 휴대폰 번호를 다음 번호 010-6241-3089로 문자로 보내주시면 안부전화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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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0 16:3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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