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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사유상에서 '모더니즘'을 보다
이성낙 2022년 06월 14일 (화) 00:27:42

가깝게 지내는 친우와 만나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10여 년 전 어느 날의 국립중앙박물관(이하, ‘국박’)이 화제로 떠올랐습니다. 그러다 국박의 전시물 중에서도 <국보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젖혀진 발가락’ 얘기가 나왔고, 순간 필자는 거센 부끄러움이 밀려와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국보 83호 반가사유상, 6세기 신라,
높이 93.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필자에게 부끄러움을 안긴 친우는 다름 아닌 KBS 아나운서실장을 역임한 이규항(李圭恒, 1939~ )입니다. 근 30년 전에 반가사유상의 그 ‘젖혀진 발가락’을 본 이 실장은 범상치 않은 표현이라는 걸 직감하고 온갖 관련 문헌을 섭렵했을 뿐만 아니라, 저명 학자들의 미술사 또는 정신학과 세미나나 강연을 수도 없이 찾아다녔습니다. 그리고 국내 정신과학계 원로 이시형(李時炯, 1934~ ) 교수의 강의를 듣던 중 심리학에서는 보살님의 득도 순간을 ‘아! 반응(Ah Response)’이라 부를 수 있다는 걸 깨닫고, 그러한 생각을 저서 ⟪부처님의 밥맛⟫(동아시아, 2018)에 자세히 남겼습니다. 요컨대 신라 장인이 득도라는 극적인 그 찰나의 ‘아! 반응’을 반가사유상의 ‘젖혀진 발가락‘으로 절묘하게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필자는 ‘국박’이 용산으로 자리를 옮긴 2005년 이후 두세 달이 멀다 하고 방문했습니다. 그 이유는 잠시라도 반가사유상의 신비한 ‘아우라(Aura)’를 가슴에 담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렇게 자주 만난 반가사유상에서 필자는 미처 ‘젖혀진 엄지발가락’을 발견하지 못했고, 그 부끄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 후로 필자는 동양 문화권의 불상을 보면 우선 부처님의 발가락이 어떤지 살폈습니다. 또한 유럽의 박물관을 방문해 서양 미술 작품을 볼 때, 특히 르네상스 시대 이후의 화폭에서 맨발을 발견할 때면 혹시라도 그 ‘젖혀진 발가락’과 맥을 같이하는 표현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 긴장을 풀지 않았습니다. 결과는 그 비슷한 것조차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지난해 11월 12일, 국박이 ‘사유의 방’이란 새로운 전시 공간을 마련하면서 국보 78호, 83호 반가사유상을 나란히 한자리에 전시했습니다. 이 아름다운 ‘사유의 방’ 프로젝트는 국박에 민병찬(閔丙贊 1966~ ) 관장이 새로 부임하면서 기획한 것으로 국내 문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민병찬 관장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반가사유상 83호와 관련해 ‘굽어진 발가락’을 언급했습니다. [조선일보, <아무튼, 주말>(2021.12.04.), 허윤희 기자의 인터뷰 르포타주]. 필자도 이에 자극을 받아 <반가사유상, 그 ‘엄지발가락‘>(데일리임팩트, 2021.12.29.)이란 칼럼과 함께 <반가사유상, 그 심오함>(자유칼럼그룹, 2022.05.16.)이란 칼럼을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문광(文光) 스님이 기고한 <한국인이 세계에 던진 영원한 화두, 반가사유상>(불교신문, 2022.03.15.)은 불교 예술문화계에 또 다른 큰 울림을 던졌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미술 애호가들이 국박의 ‘사유의 방’을 줄지어 찾아갑니다. 그런데 유심히 살펴보면 국보 83호 반가사유상 앞에 방문객이 몰려 있습니다. 국보 78호 반가사유상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입니다. 방문객들은 그 ‘젖혀진 엄지발가락’을 가리키며 대화를 나눕니다.

국내 많은 미술 애호가들이 그 ‘젖혀진 엄지발가락’에 관심을 보이며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는 ‘발상의 전환’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한편, 영어권 학술지에 논문과 '논문급 칼럼(Letter to Editor)‘을 싣고 국내 다양한 언론매체에 기고하며 명칼럼니스트로서 자리를 굳힌 황건(黃健, 인하대 의대 성형외과학, 1957~ ) 교수는 특히 불교신문에 여러 편의 글을 올린 불심 깊은 동료입니다.

황 교수는 대한의사협회 기관지 의협신문에 <국보 83호 금동불상 엄지발가락은 왜 기형일까?>(2022.5.11.)라는 글을 게재하였습니다. 여기서 황 교수는 “국보 83호 불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왼쪽 무릎 위에 얹은 오른발 엄지발가락의 특이한 기형을 확인할 수 있다. 엄지발가락의 발허리발가락관절(중족지절관절)이 과신전(관절각이 180도를 넘은 상태)돼 있고 가락사이관절(지절간관절)은 굴곡돼 있다. 일반적으로 나머지 발가락이 중립인 상태에서 엄지발가락을 이 같은 자세로 앉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히면서 “승려의 엄지발가락이 기형이 된 이유는 오랜 시간 맨발로 걷는 수행 과정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라고 했습니다. 아울러 ”태국 북부에 거주하는 승려 208명을 대상으로 발 및 발목 상태를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발가락 기형에는 엄지발가락외반(14%)과 갈퀴발가락(4.3%)이 주종을 이뤘다“라고 덧붙였습니다.

필자는 이 글을 대하면서, 반가사유상이란 예술품에 대한 의.과학적 접근에 신선함을 보았지만, 왠지 어색함도 느꼈습니다. 대중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할 보살이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불구‘라는 사실이 왠지 생소했습니다. 그래서 불교에 정통한 지인에게 물어보니, 삼십이상팔십종호(三十二相八十種好)처럼 “부처가 인간과 다른 모습을 지닌다는 믿음 아래 부처의 형상을 표현한 32가지 모습과 80가지 외적 특징을 가리키는 불교 용어”가 많은 것을 시사하며, 따라서 반가사유상과 기형의 연관성은 희박하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단원 김홍도의 ‘씨름도’. 18세기 말 제작,
종이에 채색, 크기 27x22.7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과학자는 다른 위치에서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이 본연의 자세이므로 필자는 황 교수의 주장과 시각을 높이 평가합니다. 그럼에도 다음과 같은 관점을 펼쳐봅니다.

1) 우리나라와 태국의 기후는 매우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네 승려는 맨발로 보행할 가능성이 별로 없습니다.
2) 국내 법당에서 승려가 맨발로 불공드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3) 우리 사회에서는 맨발로 다니는 것을 극히 ‘혐오’ 또는 ‘조심’하는 풍습이 있습니다. 어릴 때 대청마루를 맨발로 거닐지 못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겨울에는 물론 여름에도 맨발은 금기 사항이었습니다.
4)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1745~1806?)가 남긴 풍속화
<씨름도>를 살펴보면, 두 씨름꾼이 짚신을 가지런히 벗어 놓고는 버선을 신은 채 격돌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맨발’을 얼마나 금기시했는지 짐작케 합니다.

필자는 미륵반가사유상의 ‘젖혀진 엄지발가락’을 문화예술의 기본인 ‘창작예술’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봅니다. 그 옛날 신라의 장인은 보살의 득도 현상을 조형물에 담기 위해 생각에 잠겼을 것입니다. 그리고 손가락의 섬세한 동작, 안면의 엷은 미소로는 너무 ‘모자람’을 느꼈을 것입니다. 장인은 조용하지만 역동적인 ‘득도의 순간’을 좀 더 극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생각하여 봅니다. 그런 맥락에서 예술적 비약, 이름하여 ‘발상의 전환’의 결과물로서 장인은 반가사유상이란 조형물에 ‘젖혀진 엄지발가락’으로 역동적인 득도 순간을 묘사했다고 필자는 해석합니다.

현대미술, 즉 ’모더니즘(Modernism)‘이 ’발상의 전환 정신‘에서 시작하였다면, 한반도에는 그 오랜 옛날 6세기에 이미 ‘발상의 전환’이라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 바로 반가사유상의 ’젖혀진 엄지발가락‘입니다. 가슴 벅찬 ‘역사의 편린(片鱗)’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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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해: 'KBS 한국어연구회' 회장을 역임한 이규항 전 실장의 고언에 따라 ‘굽어진 엄지발가락’이란 표현을 ‘젖혀진 엄지발가락’으로 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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