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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높이를 찾아라
김영환 2022년 05월 17일 (화) 00:00:40

‘국민 눈높이’란 말이 인플레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여야 정치인들은 주로 정권교체기에 장관급 이상의 인사청문회장에서 서로를 향해 인사가 국민 눈높이에 맞느냐고 다퉈왔습니다. 진정으로 존중한다면 나쁠 게 없지만, 과연 정치가 말하는 ‘국민 눈높이’란 뭘까요? 나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어떤 도덕적 수준’이라고 이해하는데요. 웹 사전에선 ‘어떤 사람의 사물을 이해하거나 파악하는 수준’이라고 풀이하면서 "어린이의 ∼를 맞춘 학습 교재"라고 예문을 듭니다.

“인사에 있어서 때때로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았다”, 연성 독재라고 비판받았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한 말입니다. 그는 취임 4주년 연설에선 “우리 인사청문회는 능력 부분은 제쳐두고 오로지 흠결만 놓고 따지는 무안 주기식 청문회다. 이런 청문회로 좋은 인재를 발탁할 수 없다”고 검증에 불만을 터트렸습니다. 민주당이 집권 후 내건 병역 면탈, 불법적 재산 증식, 세금 탈루, 위장전입, 연구부정행위, 성 관련 범죄, 음주운전의 7대 검증 잣대는 공허했죠. 위장전입은 2회로 횟수를 완화하기도 했습니다. 전과 4범이 대선 후보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검증 무시는 정권교체에 밑밥을 뿌렸습니다. 문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청문회에서 후보자를 강도 높게 검증하고 반대하는 것은 야당의 역할이지만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국민의 몫”이라고 했습니다. 임기 중 34명의 장관급을 야당 동의 없이 임명했으니 그가 말한 국민이란 본인이었던 건가요?

민주당 때 문재인 대표는 “야당을 무시한 인사 불통에 분노한다”고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더니 집권 후인 2018년엔 “인사청문회 때 많이 시달린 분들이 일을 더 잘 한다”고 검증을 경시했습니다. 민주당에선 홍영표 의원이 인사청문회 도덕성 검증은 비공개로 하자는 법안까지 발의했습니다.

최근 한덕수 국무총리 지명자의 로펌 52개월간의 고문료 20억 원이 너무 많다고 구 여당은 공격합니다. 한 지명자는 “국민 눈높이로 보면 송구하다”고 사과했습니다. 노무현 정부의 국무총리를 지냈고 국내 최대 로펌인데 그게 많은 걸까요? 우리는 시장경제 체제입니다. 대기업 임원들은 연봉 수십억 원이 흔하고 자사주 성과급을 수십억 원대로 받기도 합니다. 그보다 뭐 한다고 한 해 7억 원씩, 300명 국회의원이 프랑스, 일본, 영국, 독일 등 선진국에 비해 세금을 그렇게 많이 쓰냐는 국민 눈높이의 비판을 새겨야 할 것입니다.

인사청문회에서 많은 장관 후보자들의 자격 논란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건지, 새 야당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건지 헷갈립니다. 민주당은 미루던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처음부터 파헤칠 게 없자 자신들도 쓰는 ‘검수완박’ 용어를 모두발언에서 썼다고 힐책했습니다. ‘한00 영리법인’의 복지관 컴퓨터 기증을 후보자 딸이 기증한 거냐고 민주당 의원이 오인하자 후보자는 “내 딸이 영리법인이냐?”고 반박했죠. 한 후보 딸이 아닌 조카 논문의 공저자 ‘이 모 교수’를, ‘이모(姨母)’로 만든 해프닝이 일어나자 질문한 의원을 ‘이모’로 삼고 한국3M을 딸로 삼은 새로운 한동훈 장관 후보자의 가계도가 SNS에 떴습니다. 이게 하루를 넘겨 대통령 취임 당일인 새벽 3시 반까지 이어진 인사청문회였습니다.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윤석열 정부의 장관 후보자들을 줄줄이 낙마시키려 들면서 자신들은 국민 눈높이에 맞는 격식이 부족함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당은 갑자기 박완주 의원을 당에서 제명한 날 ‘성 비위(非違)’라는 아리송한 단어를 적용했죠. 성추행인지, 성폭력인지, 성폭행인지? 성적 일탈 행위의 정체를 뺀, 형식적인 사과로 국민 눈높이를 깔보았습니다.

국민 눈높이를 거스른 압권은 대법원의 ‘배 째라’식 늑장 재판입니다. 180일 이내에 끝내야 할 선거재판 126 건을 4·15총선 2년이 넘도록 한 건도 안 끝낸 건 대법원장 김명수의 눈높이입니까. 직무유기로 대법관 전원이 고발된 사건입니다. 사법부는 어떻게 민주적으로 통제를 해야 합니까? 독촉해야 할 선거관리위원회 역시 대법원에 신속한 재판을 촉구하는 공문을 발송한 사례가 한 건도 없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선거 수사의 최고 전문가였던 황교안 전 법무부 장관·전 국무총리는 "나를 부정선거 특검으로 임명하라"고 외칩니다. 단기간에 진상을 파헤쳐 가짜 의원들을 쫓아내 검수완박 법을 폐기하자는 것입니다.

‘조적조’, ‘문적문’, 집권 여부에 따라 표변하는 눈높이는 결국 발언자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오죠. "검찰 인사 관여는 악습", "선거법 일방 밀어붙이기 안 돼", "대통령도 피의자로 다뤄야"….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집권 이전에 한 말입니다.
무소속으로 위장 탈당했으면서 야당 아닌 여당 국회의원으로 행세해 국회선진화법 정신을 유린한 국회법 비위는 누가 민주적으로 통제합니까? 그러니까 좌파 체인의 부품처럼 움직인 국회의장이 배현진 의원으로부터 “당신이 말해온 민주주의가 이런 겁니까”라고 공격받는 거죠. 국회법은 의장이 눈높이입니까?
언론도 마찬가지죠.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권한을 분산하고 민주적 통제를 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면 허위 사실을 유포해 국민 눈높이에 안 맞는 공영방송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영혼을 잃은 부랑(浮浪)의 정치는 선진화한 국민 눈높이를 맞추지 못합니다. 모든 것은 사실을 기초로 합리적인 지성의 바탕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그 확실한 지표로 삼을 만한 게 여론조사, 수치로 공개된 국민 눈높이입니다.

이런 정도는 새 야당도 알고 움직여야 반지성이니 국정 발목이니 하는 비판의 소리를 안 들으리라 생각합니다. 국민 눈높이를 입에 올리려거든 여론조사를 중시하고, 중대한 사안은 국민 주권 행사의 가장 선명한 형태인 국민투표에 부쳐 물어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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