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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카네이션
한만수 2022년 05월 02일 (월) 00:00:33

5월은 계절의 여왕이기도 하지만 가정의 달입니다. 5월 8일 ‘어버이날’은 예전에는 ‘어머니날’이었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해마다 이날이 되면 생각나는 친구가 있습니다.

희준이라는 친구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6형제 중의 막내인데다 평소 말수가 적은 친구였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안 계셔 안됐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습니다.

희준이의 아버지는 5일장을 돌아다니며 쌀장사를 하셔서, 집에 계시는 날이 드물었습니다. 장날 파장이 될 무렵이면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팔다 남은 쌀을 가마니에 퍼 담는 모습을 종종 봤습니다. 어떤 때는 희준이 아버지는 안 계시고 형들이 와서 쌀가마니며 보리쌀이나 콩자루를 리어카에 싣고 가기도 했습니다.

5학년 때 어머니날이었습니다. 전교생이 운동장에서 ‘어머님 은혜’라는 노래를 합창하고, 6학년 여학생이 교단 위에 올라가 독창도 하는 등 이런저런 행사를 했습니다. 5월이지만 날씨가 더워서 모두 얼굴을 찡그리고 구경을 하거나,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땅바닥에 무언가 그림을 그리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갑자기 저희 반 학생 6명이 올라갔습니다. 모두 카네이션을 한 송이씩 들고 있었습니다. 그중에 희준이만 흰색 카네이션을 들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때 급우들이 했던 말을 기억합니다만, 가슴을 울컥 울리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희준이는 어머니가 안 계시니까 하얀 카네이션!”

다섯 명의 급우들이 하얀 카네이션을 들고 있는 희준이를 가리키며 합창을 하듯 똑같이 말했습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응, 나는 어머니 무덤에 하얀 카네이션을 갖다 놓을 거야.” 하는 희준이의 말이었습니다.

저는 7살 때 입학을 해서 11살이었습니다. 희준이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습니다. 희준이를 바라보던 11살짜리 시선이 담임선생님께 옮겨졌습니다. 뚱뚱한 담임선생님은 교단을 바라보며 잘하고 있다는 얼굴로 빙긋이 웃고 계셨습니다.

그때의 황당함, 분노에 이어 눈물이 터질 것 같은 슬픔이 가슴을 콱 메우는 것 같았습니다. 담임선생님을 바라볼 수가 없어서 고개를 숙이는데 눈물이 바짝 마른 운동장 바닥에 툭, 툭 떨어졌습니다.

그 후에는 괜히 희준이에게 엄청 큰 죄를 지은 것 같아서 얼굴을 마주 바라볼 수가 없었습니다. 특별하게 친하지는 않았지만, 가끔은 집에 갈 때 단둘이 가는 날도 땅바닥만 내려다보며 걸었습니다.

희준이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발소에 꼬마로 취직했습니다. 머리를 깎고 나면 쓰레받기에 머리카락을 담아 이발소 옆에 있는 가마니에 모으는 일, 손님들의 머리를 감겨주는 일, 담배 심부름을 하면서 세월을 보냈습니다.

중학생이 된 저는 희준이에게 머리감기기를 맡길 수가 없어서 다른 이발소에 다녔습니다. 어쩌다 길에서 마주치면 “너, 왜, 딴 이발소 댕기냐?” 하고 희준이가 먼저 묻기 일쑤였습니다. 그때마다 “느덜 이발소에 손님이 많아서…” 라는 등 어색하게 변명을 하기도 했습니다.

희준이는 방위로 병역의 의무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서 다른 이발소에 다니며 이용사 자격증을 땄습니다. 고향으로 내려와서 예전의 이발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가끔 고향에 내려가면 예전과 다르게 이발소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때로는 밤이 늦으면 사장이 퇴근한 뒤 친구들을 불러서 통닭 같은 것을 시켜 술을 마시기도 했습니다.

이발소 사장이자 희준이에게 이발을 가르쳐 준 이발사가 폐병으로 일찍 돌아가시자 희준이는 어엿한 이발소 사장이 됐습니다. 사람들은 서울에서 자격증을 딴 사람이라며 희준이 이발소를 많이 이용했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말수가 적었던 희준이도 손님들이 하는 말에 맞장구를 쳐주다 보니 점점 성격도 밝아졌습니다. 덕분에 결혼도 하고 작은 집도 마련하는 등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열심히 살았습니다.

저는 30대 중반에 소설을 쓰겠다는 어쭙잖은 각오로 직장에 사표를 내고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담뱃값이 없어서 1백 원짜리 환희를 사 피우면서도 천리안이며, 나우누리, 하이텔에 소설을 연재했습니다.

그즈음 희준이는 장날이나, 명절 때 등에만 이발소 문을 열고 포도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농사라는 것이 땅만 있다고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농약대며, 경운기나 각종 농자재를 사려면 돈이 많이 들어갑니다.

희준이는 이발소에서 정기적으로 나오는 돈이 있어서 금방 포도밭을 확장했습니다. 나중에는 이발소를 팔아 버리고 포도밭에 매달렸습니다.

어느 핸가 늦가을 저녁때였습니다. 우연히 포도공판장 앞에서 희준이를 만나 삼겹살집으로 갔습니다.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하얀 카네이션’이 생각나서 혹시 기억이 나느냐는 얼굴로 물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냐?”

희준이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서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저는 쓴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러냐? 하여튼 그런 일이 있었다.” 하며 더 이상 묻지 않았습니다. 아이러니한 상황이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어쨌든 희준이는 그 일로 트라우마를 겪고 있지 않다는 걸 확인했으니까요.

요즈음 희준이는 포도농사를 5천 평 정도 짓고 있습니다. 1천 평에 1천만 원 예상하니까, 일 년에 4개월만 농사짓고 5천만 원씩 버는 셈입니다. 그런 데다 마을 이장까지 하고 있어서 바쁘게 삽니다. 얼마 전에는 마을 자랑비에 새길 시 한 수 써 달라는 부탁이 왔습니다. 저는 기쁜 마음으로 시 한 편을 써서 보내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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