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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밥은 나무의 눈물인가
김영환 2022년 04월 22일 (금) 00:01:19

약 2년간 국민의 3분의 1 정도가 걸렸다는 코로나19에 민초들은 일상과 생업의 자유를 빼앗겼지만 무심한 자연은 시계처럼 돌아왔습니다. 거리두기가 풀리자 봄 구경 나온 사람들이 넘칩니다. 공항철도에는 해외여행 가방을 밀고 가는 풍경이 되살아났습니다.

   
  ◇지난 2013년 봄에 만개한 배나무꽃입니다.  

심하게 쳐내고 남은 가지에서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 터트리는 매실, 배, 사과나무의 꽃과 꽃망울들을 바라봅니다. 빚에 빚을 얻어 자신의 삶의 가지를 쳐내다 두 손 들고 삶의 둥지를 등진 자영업자들의 눈물과 기대가 중첩되는군요. 도심 외곽 가릴 것 없이 나붙은 ‘임대’ 안내문이 좀 줄어들까요.

과일나무는 가혹하게 쳐줘야 열매가 잘 달리는데, 물오르기 전에 전지하라는 말을 듣고 “아직 2월이니 쉬고 있을 테지” 하고 몇 년 전에 호두나무 가지를 처음 쳐봤습니다. 그러자 맑은 수액이 줄줄 흘러내렸습니다. 쉬는 게 아니었습니다. 겉보기와 달리…. 그래서 가을 전지를 권장하는 거죠. 봄의 산길에서 파는 수액은 나무의 생명수였습니다.

생명체인 나무의 전지는 쉽게 대들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냥 놔두면 규칙 없이 자라고 싶은 대로 자라죠. 식물 책을 보면 수형(樹型)을 염두에 두고 전지하라고 쓰여 있지만, 어느 가지를 고를지부터 난감합니다. 겹친 것, 꼬인 것, 말라죽은 것, 아래로 늘어진 것 등이 기본적인 정리입니다. 높지만 그다지 굵지 않은 가지는 긴 장대에 장착된 커터를 걸고 줄을 당겨서 아물리며 자르는 도구가 필요한데요. 고개를 들고 고지(高枝) 톱으로 흔들리는 가지를 자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나무 밑에는 강인한 찔레가 울타리를 치고 ‘나를 건드리지 마라. 찌를 거야’, 다닥다닥 붙은 가시로 위협합니다.

   
  ◇강화군 마니산 입구 주변의 한 나무가 Y자 형태로 전지되었음을 또렷하게 보여줍니다.   

도심 가로공원에서 전문가들이 굵은 나무 기둥을 타고 올라가 허리에 안전벨트를 걸고 긴 톱으로 가지를 자르는 광경도 보았습니다. 시골에선 포클레인의 바가지에 들어가 높게 솟은 뒤 자르기도 합니다. 반 고흐의 그림 중에 굵은 나무기둥에서 갑자기 가늘게 뻗은 잔가지들을 보여주는 그림이 있는데 역시 전지됐다는 거죠. 나무는 전지가 중요하다고 가끔 전문가들이 “관리는 이렇게 해 주세요”라는 휴대폰 문자를 주기도 합니다.

심야에 웹 사이트에서 손녀들이 사달라는 물건을 찾으며 뒤적이다가 해외 직구로 전기 체인톱을 샀습니다. 레고 완구의 몇 분의 일로 저렴하기도 했습니다. 며칠 후 겹쳐 자란 배나무 가지에 대봤습니다. 굵기가 손가락으로 만드는 동그라미만 한데 요란한 소리를 내며 속절없이 잘려 나갔습니다.

농부인 지인들은 스스로 과수의 가지를 차마 쳐내지 못한다고 합니다. 애지중지 길러온 자식 같다는 거죠. 남에게 부탁한답니다. 나무를 나처럼 멋대로 내버려두면 ‘대형사고’가 일어납니다. 몇 년 전 잘 자란 호두나무가 처음으로 가지가 휠 정도로 연둣빛 열매를 주렁주렁 달아 풍요롭기가 배를 불쑥 내민 만삭의 여인 같았습니다. 수령 10여 년이 지나 이제 호두를 좀 먹나 싶었는데 곧 태풍이 불어 그 큰 가지를 비틀고 찢어 놓아 매달렸던 열매의 껍질이 까맣게 썩어갔습니다. 쓰라린 마음으로 찢어진 부위에 보호해줄 페인트 같은 노란 약을 발랐습니다.

소나무도 밑동에서 영양을 많이 받은 가지가 너무 굵게 자라다가 그 무거움으로 말미암아 본 기둥에서 찢겨나갔습니다. 자식의 힘에 견디다 못해 놓아주고 만 거죠. 나무의 공백은 진흙으로 메울 생각입니다. 곁에는 씨앗에서 싹튼 앙증맞은 아기 소나무 한 그루가 자라납니다.

그냥 손톱질로 며칠 걸릴 일을 마침내 전기톱으로 몇 시간에 끝냈습니다. N분의 1로 돌아갈 영양분에서 분모의 숫자를 줄이면 열매로 영양을 몰아주어 더 커진다는 건 인간들의 수학이죠. 일본의 농부 기무라 아키노리(木村秋則) 씨는 농약도, 비료도 안 주는 자연농법으로 병충해에 강하고 열매가 잘 달리는 ‘기적의 사과’를 만들어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습니다.

작업복 어깨 위로 하얗게 떨어진 톱밥을 털며 박소란 시인이 쓴 <아현동 블루스>의 톱밥을 떠올렸습니다.

시의 화자는 아현동 웨딩드레스 거리에서 쇼윈도를 들여다보다가 문득 웨딩드레스 훔쳐 입고 천장지구의 오천련처럼 90년대식 비련의 신부가 되어 굴레방다리 외팔이 목수에게 시집이라도 갈까 꿈을 꿉니다. 신랑이 어줍은 몸짓으로 밤낮 ‘스으윽사악 스으윽사악’ 토막 난 나무를 다듬어 작은 밥상을 지어내면 나는 그 곁에서 시를 쓰며 주린 구절을 고치고 또 고치고, 신랑이 진종일 품삯으로 거둔 톱밥은 양식으로 내려 날마다 우리는 하얀 고봉밥에 배부를 것이라고요. 그러나 ‘아아 나는 비련의 신부, 비련의 아현동을 결코 시 쓸 수 없지. 외팔의 뒤틀린 손가락이 식은 밥상 하나 온전히 차려낼 수 없는 것처럼‘이라며 페시미즘을 노래합니다. (▶전문보기)

시인의 외팔이 목수는 톱밥으로 고봉밥을 만들지만 나는 왜 톱질을 한 걸까요? 독일에서는 양차 세계대전 때 밀가루에 톱밥을 섞어 빵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크게는 내 키의 세 배를 넘는, 십 수 년 자라온 나무들의 눈물 같은 톱밥을 털어내면서 가지가 잘린 나무들이 구슬펐습니다.
"사람 사는 곳에선 기고만장 하지 말라. 언젠가는 다친다"는 말은 전지와 무관할 텐데 그냥 연상이 되는 겁니다. 추사가 1844년 제주도에서 그린 세한도(歲寒圖)의 나무들처럼 지조를 지키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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