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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노예시장'은 외친다
이성낙 2022년 04월 18일 (월) 00:00:34

2019년, 유럽의회 선거가 치러졌습니다. 유럽연합(EU)을 구성하는 28개국 약 4억5,000만 명의 주민이 유럽의회의 751석을 놓고 격돌했습니다[*참고, 2021.1.31. 영국의 탈퇴(Brexit)로 현 의석은 701석]. 201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흥미로운 점은 어느 ‘나라 중심’이 아니라, 정치 이념 중심의 선거였다는 것입니다.
선거 결과 의회 진입 정당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보수 기독민주당(Christdemokraten) 182석, 진보 사회민주주의당(S&D) 152석, 진보 자유민주당(Renew Europe) 108석, 녹색당(Green) 74석, 극우 국수주의당(Nationalist) 73석 등 여러 크고 작은 정당으로 의회를 구성하였습니다.

여기서 괄목할 만한 사실은 극우 세력의 두드러진 결집 현상입니다. 이전 선거 대비 거의 50%(37석)의 증가세를 보였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현재 프랑스 대선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는 북아프리카 연안에서 몰려오는 아랍계 난민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근래 지중해 연안의 북아프리카, 특히 리비아,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 등 여러 나라의 아랍인들이 목숨을 걸고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 해안에 발을 딛거나, 이베리아(Iberia) 반도 연안(포르투갈, 스페인) 해협(海峽) 루트를 이용해 유럽 땅에 들어와 난민 신청을 합니다. 그 수가 한 국가에서 홀로 감당하기에는 물리적으로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런 가운데 유럽 땅에 발을 디딘 난민들은 한사코 독일에 정착하기를 갈망합니다.
독일 사회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현 독일 사회가 향유하는 국가적 이미지도 있지만, 이미 독일 땅에 살고 있는 터키인 거주자가 400만 명을 훌쩍 넘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터키인 이주자를 독일 사회가 껄끄럽게 생각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같이 ‘무슬림’이라는 점입니다.

   

이 같은 상황을 절묘하게 이용한 2019년 ‘유럽의회 선거’ 홍보용 포스터가 눈에 띕니다.
“유럽이 ‘유라비안’이 되지 않기 위해서!(Damit aus Europa kein ‘Eurabien’ wird!)”라는 포스터가 새로운 조어 ‘유라비안(Eurabien, Europa + Arabien)]을 등장시켰습니다. 아랍계 이민자들이 유럽을 물리적으로 점령하면, 유럽은 그 고유의 정체성을 잃어 결국 더 이상 유럽이 아닌 ‘유라비안'이 될 거라는 사실을 지적한 것입니다. 그래서 독일 극우정당 ‘AfD(Alternativ fuer Deutschland)’를 선택해달라는 내용입니다.
선거철이면 등장할 수 있는 슬로건이긴 하지만, 유럽인들의 불안해하는 속내를 보는 듯 싶습니다.

   
  Jean Léon Gérôme (1824~1904)
The Slave Market (1866)
Oil on canvus, 84,4 x 63,3 cm
The Clark Art Institute,(Mass., USA)
 

이 홍보물을 미술사적으로 살펴보면,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 ‘제롬(Jean Léon Gérôme, 1824~1904)의 작품 ‘노예 거래(The Slave Market, 1866)’를 패러디한 것입니다. 그림에서 ‘거래 장소’는 유럽 땅이 아닌 아랍 땅의 무슬림들이 모인 노예시장입니다. 그곳에서 유럽계 여인을 두고 흥정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랍의 노예시장에 유럽계 여성이 ‘거래물’로 등장한 것입니다.

그림에서 ‘구매자’는 노예의 ‘상품성’을 확인하려는 듯 여인의 입속을 들여다봅니다. 이는 ‘말[馬] 시장’에서 구매자가 선택할 말의 상품성, 즉 건강 상태를 점검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여기서 화가 제롬은 인간을 짐승처럼 다루는 노예시장의 야만 행위를 크게 질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랍 노예시장에 어떻게 유럽계 여인이 등장하게 되었을까요? 생각해보면 그 역사는 오래되었습니다. 지중해에 아랍계 해적선이 출몰해 연안국 여인들을 납치한 후 중동 여러 곳의 노예시장에 ‘거래물’로 내놓았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 시작은 1340년경 유럽을 휩쓴 흑사병(黑死病, Pest) 때인 듯한데,
약 4년 동안 당시 유럽 인구 중 30%가 사망하는 대참사를 겪었다고 의학사(醫學史)는 전합니다.

흑사병이란 그만큼 유럽 사회를 엄청나게 초토화했던 것입니다. 유럽 전체가 공황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지중해 연안 지역은 유럽의 변방이라는 물리적 조건으로 인해 겪어야 했던 고난이 더욱 컸다고 합니다. 아울러 아랍계 해적들의 노략질에도 쉽게 노출되어 많은 여인들이 납치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역사의 아픔을 화가 제롬은 화폭에 옮기면서 오늘의 우리를 고발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면서, ‘인간 노예시장’에서 오늘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전 세계적 현상입니다만, 근래 우리나라에서도 초유의 코로나19 바이러스(Corvid-19) 때문에 지난 2년여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음에 이르렀고, 얼마나 많은 소상공인과 저소득층이 경제적 곤경의 굴레에서 힘들어했는지 모릅니다. 최첨단 과학기술을 자랑하는 오늘날에도 인류가 중세나 다름없이 역병의 고통을 당하고 있으니 생각할수록 무거운 마음을 금할 길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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