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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쓸모는 없는 것
홍승철 2022년 04월 06일 (수) 01:43:09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하던 때, 그가 ‘어린 시절에 백과사전을 열심히 읽었다’는 글을 어디선가 보았습니다. 그 짧은 문구에서 게이츠는 주로 백과사전으로 학습했다는 선입견을 갖게 되었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이제 와서 잠시 검색해 보니 그는 독서광이며 “어렸을 때는 (여러 가지 책 중) 재미로 백과사전을 읽기도 했다”는 본인의 말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집에는 교과서 이외의 책이 거의 없었습니다. 중고등학교에서 학교 도서실의 책 빌리기를 즐기면서,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백과사전류를 접하고는 반가웠습니다. ‘아무 지식’이든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백과사전을 본격적으로 이용한 일은 대학 시절 영어 주간지를 읽으면서였습니다. 영어 서클(동아리)에서 기사문 독해를 했는데, 발표자는 번역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사에서 다뤄지는 내용에 대한 정보도 준비해야 했습니다. 다양한 문물에 관해 꽤 자주 도서관에 가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용하다 보니 크로스 레퍼런스(오늘날 인터넷 포털의 연관검색어와 비슷하지요)가 잘 구성되어 탄복하기도 했습니다. 그때의 기억 때문에 직장에 다니면서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구입하고 말았습니다.

학교에서의 전공 분야도 아니고 취미 활동과 직접 연관되지도 않는 백과사전을 좋아하게 된 일은 아무 지식이든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요 며칠 사이에는 이와는 약간 다른, 그러나 연관성이 있을 것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을 지낸 이건용 작곡가가 한 3년(2015년~2018년)에 걸쳐 신문에 게재한 칼럼을 몰아 읽었습니다. 과거에 그의 칼럼을 몇 번 읽으면서 재미있다고 여겨 이전 것도 찾아 읽어 보리라 마음먹었는데 이제야 실행한 것입니다. 서양음악을 전공한 그가 칼럼에서 다룬 소재는 전공 분야만이 아니라 국악, 일본 음악, 대중음악이 있으며 음악 현상을 통해 문학, 사회, 정치를 비롯한 인간사 여러 현상에 대한 본인의 이해(理解)와 견해로 생각을 확장하였습니다.

백과사전에서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재미있었는데, 작곡가가 음악이라는 한 영역에서 다양한 분야로 생각을 펼쳐 나가니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몇 가지 이야기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지키는 힘』이라는 글에서는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와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을 소재로 다루었습니다. 음악작품은 가사나 가락을 지키는 힘(반복)과 새롭게 나아가는 힘을 대결 또는 조화시켜 구성된다고 알려줍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다른 예술에도 이 원리가 적용되리라 믿으며 인류 역사도 이 두 가지의 계기로 이루어졌다고 이해한다”고 말합니다. 모르던 새로운 지식이었습니다.

『상대정의감』에서는 절대음감과 상대음감을 비교 설명하고는 절대음감을 지닌 사람도 나이가 많아지면서 음감의 변화가 생긴다고 알려 줍니다. 그러면서 정치계에 대해서 한마디 합니다. 그 세계에는 ‘절대정의감’보다는 ‘상대정의감’의 소유자가 많으면 좋겠다고 말이지요.

그런가 하면 『긴호흡』에서는 악곡도 기승전결로 구성된다는, 알고 보니 당연하지만 나로서는 이전에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여기서 한 음악학자의 이론을 소개하며, 이 기승전결의 구조가 음악의 작은 세부에서 큰 윤곽에 이르기까지 층층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 대목에서는 루트번스타인 부부가 쓴 책 『생각의 탄생(Spark of Genius)』에서 소개받은 ‘프랙탈’, 또는 ‘코흐 곡선’을 생각나게 해 주었습니다. 이 두 가지는 복잡해 보이는 자연 현상의 구조 중 큰 것(전체)에서부터 부분에 이르기까지 같은 패턴의 형상이 층층이 반복되는 현상을 이르는 말입니다.

다른 분야의 인물이 서로 통할 법한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이 재미를 더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음악 예술’을 다룬 글과 ‘창의성’을 다룬 글이 서로 통하는 점이 있는 일은 자연스럽다고 여겨집니다. 여기서 내 생각이 확장됩니다. 음악과 창의성 분야의 이야기가 물리학의 오래된 가설인 통일장이론과도 통할 수 있겠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게 하니 새로운 발견을 한 것처럼 즐겁기까지 합니다.

칼럼을 읽다 보니 머릿속 한구석에서는 “그래, 음악에서 시작해서 온갖 것까지 생각을 넓혀 주니 재미있네. 백과사전의 정보도 그래. 하지만 그런 게 지금의 나와 무슨 상관이 있어?” 하는 질문이 나오기도 합니다. 여기에 대한 대답이 될 만한 이야기도 이건용 작곡가의 글 속에 있습니다.

『사치』에서 오페라단과 같은 예술단체는 벌어들이는 돈이 운영비용에 훨씬 못 미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규모 있는 도시는 공연장을 만들고 예술단체를 운영합니다. 세상에는 돈을 아끼지 말아야 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라고요. 여행을 가는 일도, 가난한 이가 때로 무리해서 어머니에게 비싼 선물을 하는 일도 그런 일에 속한다고 말합니다. 생각해 보니 ‘당장 쓸모는 없는’ 글을 재미있게 읽는 일도 그런 맥락에 포함된다고 여겨집니다.

물질계에는 네 종류의 힘, 즉 중력, 전자기력, 강한 핵력, 약한 핵력이 있는데 서로 다른 체계로 작동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한 가지 체계로 통합할 수 있으리라는 물리학의 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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