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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정세영 회장의 지혜를 되새기며
이성낙 2022년 03월 16일 (수) 00:18:00

1980년대 말경 현대자동차 정세영(鄭世永, 1928~2005)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미국에서 열린 학회에 다녀와서, 미국 시장에서 현대 포니 평이 높더라고 전하면서, 현지 텔레비전 홍보영상물을 보며 가슴이 뭉클하였다는 필자의 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그에 덧붙여 디트로이트(Detroit) 지역 거주 교포는 보고 싶고, 사고 싶은 포니를 볼 수 없다고 아쉬워하더라는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필자의 말을 듣던 정 회장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디트로이트는 미국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인데, 자극할 일이 있나요? 먼 곳에서부터 기초를 다지는 것이 우선이지요.”라는 취지로 말씀하셨습니다. 절로 고개가 끄덕거려지며 ‘겸손보다 더 멋진 노련함은 없다(Kein Gewandt kleidet schoener als Demut.)’라는 독일 속담이 스쳐 갔습니다.

바로 그 몇 달 후 디트로이트지역에서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들이 일본산 자동차를 해머로 부수며 분풀이하는 장면이 외신을 탔습니다. 거대 미국 자동차 산업이 위기를 맞던 그즈음이었나 봅니다. 정세영 회장의 높은 식견이 더욱 크게 다가왔었습니다. 한 기업 CEO 역할의 무게를 실감 나게 느꼈던 것을 오늘도 되새기며 기억하게 됩니다.

그런 맥락에서, 근래 중국인, 중국기업, 중국국가의 굴기(崛起)가 점차 부담스러움으로 다가옵니다.

몇 년 전인 2015년 5월 9일, 중국의 한 기업이 여러 편의 전세 비행기로 회사의 종사자 6,400명을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프랑스 남단 니스(Nice) 해변에 풀어놓았습니다. 호화롭기로 이름난 불루바드(Boulevard) 거리가 중국 방문객으로 발 디딜 틈 없이 ‘꽉 찬 것입니다’.
당시 현지 언론은 환영하면서도 슬쩍슬쩍 “니스가 누렇게[黃色] 색칠되었다.”라고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이를 보도한 이웃 여러 나라의 반응도 비교적 냉랭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황화론(黃禍論)’을 다시 떠올렸을 것입니다. 필자도 한국전쟁 때 ‘인해전술(人海戰術)’의 다른 모습을 보는가 싶어 씁쓸했습니다.

   

왜 하필 ‘그 해변?’, 왜 그렇게 ‘떼로?’ 궁금했습니다. 필자는 그 모습에서 중국의 대책 없는 굴기를 보았습니다. 프랑스의 자존심이 크게 상처를 받았겠구나! 짐작했습니다. 왜냐하면, 니스와 그곳 현지 사람들은 분명 경악하며 분을 삼켰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뜨호뻬(Saint-Tropez), 칸(Cannes), 안티베(Antibe), 모나코(Monco)와 니스를 품고 있는 코트다쥐르(Côte d’Azur, 하늘빛깔 해변) 해변은 호화로운 ‘부(富)티’를 마음껏 뽐내고 있는 명소입니다. 그 정도를 상상키 어렵습니다.

필자가 중국인의 방문 바로 몇 년 전에 그곳 니스를 찾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경험으로 니스가 그동안 익히 들어왔던 초호화 명소임을 실감하였던 기억을 떠올려 봅니다. 코트다쥐르 해변 언덕에서 커피향을 즐기고 싶어 커피숍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커피숍 주차장에 즐비하게 세워진 수십 대의 초호화 ‘슈퍼스포츠카’를 보는 순간 ‘뒷걸음쳐’ 나왔던 것을 씁쓸하게 기억합니다. 커피숍 ‘문지기’ 손에 적어도 미화 100달러를 선뜻 건네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니스는 전세계에서 몰려드는, 내로라하는 부호, 그네들만의 초호화 휴식·안식처로 알려진 곳입니다.

그런 그곳에 중국 관광객이 하필 떼를 지어 몰려 쳐들어갔으니 그곳 사람들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쉽게 짐작이 갑니다. 중국 CEO는 보란 듯이 ‘정복의 쾌감’을 만끽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막무가내식 ‘중국의 굴기’에서 패권국(覇權國)이기를 바라는 심성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로 인해 어설프기 짝이 없는 촌극이 연출된 것입니다.

1960년대 초 아시아인에 대한 거부감이 유럽 사회에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필자는 매우 당혹해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 뿌리는 19세기에 거명된 ‘황화론[黃禍論, (獨) Die Gelbe Gefahr]’에 기인하였던 것도 차츰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엔 오래되고 깊은 음침한 뿌리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13세기 저 먼 몽골 땅에서 유럽의 문전(門前)까지 쳐들어온 칭기즈칸의 침략이었습니다. 그 사건이 유럽 정신문화의 지울 수 없는 DNA가 된 것입니다.

또 한편, 일본의 굴기도 생각납니다. 1991년 미국의 상징인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The Empire State Building)을 일본 기업이 사들였습니다. 마침 한국을 찾아온 미국 동료 교수와 엠파이어 빌딩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거대빌딩’을 일본으로 옮겨가겠냐며 웃어넘겼지만, 왠지 자존심이 상했다는 느낌을 필자는 어렵지 않게 감지하였습니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미국인의 마음에 새겨진 상징성을 생각하면 충분히 수긍이 가는 반응이었습니다. 당시 “도쿄 한 도시의 부동산값으로 미국 전체를 살 수 있다.”는 소문이 일본에서 들려왔습니다. 참으로 ‘막무가내식 이야기’를 듣는가 싶었습니다.

그러더니 미국발 ‘엔고(円高) 현상’이 나오고 일본경제는 잃어버린 30년으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클린턴(Bill Clinton) 미국 대통령이 작심하고 일본의 굴기에 마냥 좌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몇 년 전 미국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이 중국에 각을 세우기 시작하자 필자는 앞에서 말한 중국의 굴기에 쐐기를 박겠다는 생각과 먼 거리에 있지 않다는 생각을 자연스레 떠올렸습니다.

프랑스의 최고급 휴양지에 많은 근로자를 같은 날, 같은 시에 떼를 지어 보내는 그 생각 없는 중국의 CEO와 오늘날 중국 집권자의 패권국(覇權國)에 집착하는 ‘굴기증(崛起症)’은 궤를 같이한다고 생각합니다. 심히 걱정되는 대목입니다.

그런 현실에서, 오늘날 미국 시장은 물론 여러 ‘자동차 선진국’에서 차분하게 성장하는 ‘현대자동차의 늠름한 모습’에서 고 정세영 회장의 ‘겸손 경영 정신’을 다시금 경외(敬畏)로운 마음으로 돌아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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