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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 재해, '처벌법’보다 ‘방지법’ 먼저
이성낙 2022년 02월 09일 (수) 00:01:01

최근 광주광역시에서 한창 건설 중이던 고층아파트가 붕괴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여섯 명의 귀한 생명을 처참하게 앗아간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이제는 ‘중대재해처벌법(重大災害處罰法)’을 국내 산업현장에 적용할 단계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옵니다. 그 소식에 산업계가 당혹해하는 모습을 보며 여러 가지 단상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30여 년 전 어느 날, 필자와 독일에서 온 지인은 강풍이 몰아치는 추운 겨울인데도 밧줄에 의지한 채로 고층건물의 외벽에서 작업하는 근로자의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근로자는 몰아치는 강풍과 싸우고, 매서운 추위와 싸우느라 고군분투(孤軍奮鬪)하는 모습이 역력하였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독일인은 "한국인의 용맹하고 과감한 모습을 보았다"고 격찬하였습니다. 그런데, 필자는 이를 지켜보면서 안쓰럽기도 하고, 부끄러웠던 마음을 잊을 수 없습니다.

필자는 당시 왜 그 실외공사 현장에 규정 풍속(風速) 이상, 외부 기온 섭씨 영하 몇도 이하 또는 이상이면 작업을 금한는 지침 (Manual)이 적용되지 않았는지 의아해하였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근래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LH공사의 〈안전관리지침(2021.12.)〉을 살펴보았습니다. 
지침 3.11.12.에 따르면 “폭염시 외부작업: 일 최고 체감온도 35°C 이상 2일 이상 시 실외 작업 공사중단(13~15시) . 일 최고 체감온도 33°C 이상 2일 이상 시 매 시간당 10~15분 휴식 시간 운영”이라고 명문화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강풍, 폭설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안전관리지침〉으로는 큰 ‘구멍’이 있다고 지적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만일 위와 같은 여건에서, 몰아치는 강풍으로 인해 근로자가 추락사라도 했다면, 관리 감독을 소홀히 하였다고 현장소장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요? 아니면 공사를 시행한 회사에 책임을 따져야 하는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노동법이나 근로기준법 관련해서는, 전문성과 거리가 먼 필자이지만, 상식선에서 ‘근로 환경지침서’를 꼼꼼히 챙기지 않은 정부의 관련 기관이 일차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필자가 왜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를 일깨웠던 몇몇 사건이 생각났습니다.
1955년경 서울 을지로 입구 근처 현 롯데호텔 주차장 자리에 국립도서관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승만 대통령이 도서관을 방문·순시하다가 유리창 틀에 낀 먼지를 지적하였다고 합니다. 청소에 조금 더 신경을 써서 깨끗한 환경을 유지하라는 의미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언론에서 야단법석하며 관장에게 화살을 쏘아대던 행태를 희미하게 기억합니다.

그 몇 년 후 1965년 무렵 유학 시절, 독일 국철[國鐵, DB(Deutsche Bundesbahn)]에서 큰 열차사고가 연달아 발생하여 온 언론매체가 책임자는 물러나라는 빗발치는 여론으로 도배되었습니다. 특히 비교적 단기간에 세 차례나 사고가 발생하였기에 더욱 시끄러웠습니다.
그 무렵 필자는 담당 철도청장의 거취가 무척 궁금해졌습니다. 그런데, 청장이 자기가 청장 직을 떠나는 것보다 사고 발생원인 규명이 우선이라는 견해를 표명하자, 언론이 잠잠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논리적 접근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몇 해 전 서울도서관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필자가 정년퇴임할 무렵 무척이나 실감 나게 다가온 ‘명구’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사자성어화’가 될 만큼 흔히 쓰고 듣는 ‘대과 없이’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한 대학교의 의료원장은, 의료원이라는 특수한 조직체인 병원에 취업한 초년생 직원부터 원로 교수까지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는 조직원을 대표하는 자리입니다. 대략 천오백 명에서 이천 명에 이르는 인원이 함께 근무합니다. 그만큼 다양한 사고가 잠재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정년을 맞으면서 무탈하였던 것이 신기하기까지 하였나 봅니다. 우리 사회 근저에 흐르는 정서에 따르면, 어느 부서, 어느 한 직원이 사고를 내면, 조직의 정점에 있었던 필자가 책임을 져야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대과 없이’ 정년을 마칠 수 있었다는 것에 크게 축복받은 기분마저 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2015년 3월 24일 독일항공(Lufthansa) 소속 자매 항공사(Germanwings, 저가항공) 비행기가 스페인을 출발, 독일 뒤셀도르프(Duesseldorf)로 향하던 중 방향을 바꿔 프랑스 알프스 고산에 자폭, 탑승원 전원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원인은 놀랍게도, 주기장이 잠깐 조종실(Cockpit)을 나온 틈을 타서 젊은 부기장이 조종실을 안에서 잠근 후 갑자기 방향을 틀어 알프스산맥으로 몰고 가 자폭함으로써 발생한 대참사였습니다. 승객 144명, 승무원 6명 등 총 150명의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었습니다.

훗날 발표된 조사에 따르면, 당시 28세 부조종사 ‘L’씨는 정신병으로 치료받던 중, 비행금지령을 받은 상태인데, 교묘하게 비행기에 탑승하였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 어마어마한 참상이 발생하였는데도, 독일항공 대표는 물론 정부의 어떤 기관장도 책임 문제로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필자는 주목하였습니다. 즉 그 대형 항공사고가 발생하였는데도 책임 소재는 극소수 책임자만의 문제로 국한, 마무리 된 것입니다.

현 상황에서 위의 사고를 새삼스럽게 떠올리는 것은, 근래 거론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가지는 문제, 그것도 필자 같은 비전문가도 ‘처벌법’에 너무도 큰 허점을 간과(看過)할 수 없을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앞서 꼼꼼한 ‘중대재해방지법’을 먼저 마련하는 것이 국내 산업현장에 더 시급한 문제가 아닌가 싶어서입니다. 사고 후의 어떤 대책보다, 예방대책이 앞서야 한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주해. 바른사회운동연합(2021.01.19.)에 실린 글과 일부 겹친다는 점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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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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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용 (220.XXX.XXX.57)
공감이 가는 Column 감사합니다.
특히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앞서 꼼꼼한 '중대재해방지법"을 먼저 마련하는
것이 더 시급한 문제라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고후의 대책보다는 예방대책이 우선해야 된다는 만고의 진리에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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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09 17: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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