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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손맛이 스러진다
신현덕 2021년 12월 21일 (화) 00:00:03

전설처럼 된 김 '시스터즈'(김숙자 김애자 김민자 씨)가 불러 미국 연예계를 들썩이게 했던 ‘김치 깍두기’가 불현듯 떠오릅니다. 숙자 애자는 작곡가 겸 연주가 김해송(납북. 본명 김송규)과 가수 이난영의 딸, 민자는 이난영의 친정 오빠 이복룡의 딸로 셋은 내외종 간입니다. 그들이 미국으로 건너가 성공했다는 소식이 내외신을 통해 전해지곤 했습니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검색창에 ‘김시스터즈’를 치면 ‘하와이를 들끓게 한 김 시스터즈’(조선 1962. 7.25), ‘호화판 金시스터즈 1주일 수입 만5천불’(동아 1962.2.11), ‘미 연예계 정상을 달리는 코리어의 세 자매’(경향 1967.5.17.), ‘김 시스터즈에 감사 한미우의증진 공 커’(매경 1967. 11. 25) 등 3백 건('김 시스터스'로 검색되는 22건을 합치면 더 늘어남)이 훨씬 넘는 기사 목록이 떠오릅니다. 당시 국민 선호도를 현재와 단순 비교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BTS보다 못하진 않았을 겁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활동하던 그들의 노래가 라디오, TV에서 흘러나오면 가난에 찌들어, 기죽어 지내던 국민들은 공연히 우쭐했습니다. 부자 나라에서 성공했다니 많은 이가 그들을 뒤좇을 태세였습니다.

   머나먼 미국 땅에 십년 넘게 살면서 고국 생각 그리워
   아침저녁 식사 때면 런치에다 비후스텍 맛 좋다고 자랑쳐도
   우리나라 배추김치 깍두기만 못 하드라
   우리나라 자랑스러운 김치 깍두기 깍두기
   자나 깨나 잊지 못할 김치 깍두기

널리 알려진 가사였지만 실제 버전은 여러 개입니다. “우리나라 자랑스러운 김치 깍두기, 깍두기”를 “코리아의 천하 명물 김치 깍두기, 깍두기”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 곡 2절에는 천하진미 뚝배기의 된장찌개, 고추장과 3절에는 명태찌개가 등장합니다. 공연 때마다 즉흥으로 부른 실황 녹음의 가사가 전합니다.

이들이 못 잊어 하던 김치 깍두기가 어떤 맛이었을지 궁금해집니다. 이난영이 목포 출신이었으니 아마도 목포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재료로 만든 김치 깍두기가 아니었을까 추측해 봅니다. 목포에서 주로 담그던 김치를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찹쌀 풀, 게, 액젓, 젓갈 등’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도 어느 한 개인의 의견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김치는 집집마다 사람마다 김치에 넣는 재료와 방법이 제각각이고 맛도 다릅니다. 굴, 생태, 대구, 오징어, 문어, 갈치, 꽃게, 전복 등도 기호에 따라 들어갑니다. 새우, 황새기, 까나리, 멸치, 갈치 액젓 등으로 양념을 무칩니다. 어머니의 김치 맛은 들어간 재료에 따라 어머니의 손끝에서 버무려진 손맛이 더해져 각각 빚어진 예술품입니다. 다른 집 사람이 맛이 다르거나 모자란다 하더라도 각각에게는 어머니의 김치는 정성과 사랑이 담긴 걸작이었습니다.

유학시절 김치가 생각날 때는 독일인이 즐기는 자우어 크라우트(Sauer kraut)를 먹었습니다. 처음에는 입맛에 맞는 듯했지만 먹을수록 김치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어느 해 연말 파독 간호사로부터 작은 커피 병에 담긴 김치를 선물 받았습니다. 젓갈, 마늘이 들어간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끼느라 하루에 한 쪽씩만 먹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텅 빈 도시를 보며 맥주에 김치 안주로 향수를 달랬습니다.

영국 BBC 방송은 성인들이 그들의 부모와 결별하는 경우를 방송했습니다. 주로 양당정치에 물린 젊은이들이 양당정치를 옹호하는 부모세대에게 반기를 든 것이지요. 아버지의 가르침으로부터 손자들을 단절케 하는 방법이랍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자식이 부모의 정치 성향이 싫어 왕래를 뜸하게 하는 집안을 보았습니다. 여기에 어머니의 손맛을 거부하는 며느리의 반작용도 더해집니다. 올 가을 우리나라 인터넷 거래 사이트에 김치를 거래하겠다는 글이 종종 올랐습니다. “많아서”라는 주(註)나 댓글을 달았습니다만 실은 “맛이 싫은 것”이라고 실토하는 이도 있습니다. 어머니의 손맛이 집안의 전통인데 자식(며느리)들이 그걸 물리치는 겁니다. 지자체 곳곳에서 ‘전통 김치 담그기’를 했지만 전통의 손맛보다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선택한 곳이 대부분입니다. 전통을 뭉개는, 전통이란 이름으로 행하는 각 지자체의 행사를 반추에 반추를 거듭해 봅니다. 관계자들은 어머니의 손맛(전통)이 우러나는 김치를 생각하며 '향기나는 미끼 아래 반드시 죽는 고기 있다'는 말을 마음에 새겼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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