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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
임철순 2021년 12월 13일 (월) 00:05:29

고려 말의 문인·학자 둔촌(遁村) 이집(李集, 1327~1387)은 이름 원령(元齡)을 집(集)으로, 자를 호연(浩然)으로 바꾸고 난 뒤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들은 자기 몸에서 나누어진 것인데도 오히려 이름을 지어 그 기쁜 마음을 기록했는데, 하물며 나의 몸에 있는 일이겠는가. 지금 내가 이름과 자를 모두 고쳤으니 내가 다시 처음이 된 것이다.”

둔촌은 요승 신돈(辛旽, ?~1371)의 화를 피해 개성을 떠나 숨었다가 그가 주살된 이후 세상에 다시 나왔을 때 이름과 자를 고쳐 재초(再初)의 계기로 삼았습니다. 서울 강동구 둔촌동은 그가 한때 은거했던 곳입니다. 위의 말은 그와 절친했던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의 글에 나오는데, 이름과 자의 중요성을 알기 쉽게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오주(五洲) 이규경(李圭景, 1788∼1863)이 저술한 백과사전 형식의 책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이런 설명이 있습니다. “예로부터 사람이 처음 태어나면 소명(小名)을 지어 주게 마련인데, 이것이 바로 소자(小字, 유명(乳名)이라고도 함)이다. 장성해서 관례를 올리게 되면 소명을 버리고 다시 명(名)과 자(字)를 고쳐 짓는데, 이름은 관명(冠名), 자는 표덕(表德)이라 칭한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소명을 아명(兒名)으로 삼아서, 상대방이 장성한 뒤에는 아무리 부모라도 가끔 사용하다가 마침내는 아예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소명을 소중하게 여겨 당나라 시인 육구몽(陸龜蒙, ?~881)의 '소명록(小名錄)'처럼 이름을 모아 책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규경의 글에 나오는 표덕은 덕행을 드러낸다는 뜻으로, 자(字)를 가리키는 이칭입니다. ‘안씨가훈(安氏家訓)’의 “이름이란 그로써 체(體)를 바르게 하고 자(字)란 그로써 덕을 표한다[名以正體 字以表德].”는 문장에서 나온 말입니다.

    
필자의 졸필 ‘물춘물하(勿春勿夏)’. 임숙영(任叔英, 1576∼1623)이 18세 된 이해창에게 계하(季夏)라고 자를 지어 주고, 스스로 봄처럼 어리다거나 여름처럼 성대해졌다고 여기지 말고 정진할 것을 당부한 글이다. 70x205cm.  

​이름을 짓고 자를 만들어주는 것은 그 사람이 제대로 꼴을 갖추어 이 세상을 살면서 덕을 드러내기를 당부하는 중요한 일입니다. 집안의 어른이나 당대의 명사, 문장가에게 자를 지어주기를 다투어 청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죽음을 애도하는 글인 제문(祭文)과 인물의 행적을 기술하고 공덕을 기리는 신도비명(神道碑銘), 묘지(墓誌), 묘표(墓表), 묘갈(墓碣), 비문(碑文), 일생을 전기적으로 상세히 서술한 행장(行狀) 등을 표덕지문(表德之文)이라고 합니다. 호나 자를 지어주면서 써주는 자설 명설도 표덕지문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한 시대를 좌지우지했던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은 수없이 많은 표덕지문을 썼던 사람입니다. 사제관계였던 우암과 명재(明齋) 윤증(尹拯, 1629~1714)의 집안이 원수가 되어 노론-소론의 당쟁을 벌이게 된 것도 묘갈문 때문이었습니다. 우암은 친구인 명재의 선친 윤선거(尹宣擧, 1610~1669)의 묘갈문에 망인에게 욕된 내용을 썼습니다. 그리고 명재가 몇 차례 수정 요청을 하는데도 끝내 거부해 갈등의 빌미를 만들었습니다.

그 뒤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 1629~1703)이 백헌(白軒) 이경석(李景奭, 1595~1671, 삼전도비문 작성자)의 신도비문을 지으면서 백헌을 비난했던 우암을 올빼미라고 폄훼하자 우암 문파는 서계를 사문난적으로 몰아 핍박했습니다. 서계와 명재는 아주 가까운 동갑내기 친구였습니다. 명분과 의례가 세상의 전부였던 조선조 선비들은 이처럼 이름값을 하지 못하거나 이름이 더럽혀지는 것을 치명적 수치와 오욕으로 받아들였고, 따라서 표덕지문을 가문의 명예와 직결시켰습니다.

하지만 이름 자체가 사람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은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은 이름을 아름답게 할 수 있어도 이름은 사람을 아름답게 하지 못한다. 이름은 한결같이 사람의 뜻을 따라 부르게 되어 모두 사치하고 아름답게 할 수 있으니, 어찌 일찍이 서로 칭함에 거짓이 없겠는가? 예전에는 소자(小字, 아명(兒名))가 있어 태어나면 이내 이름을 짓고 좋든 나쁘든 도무지 고치지 않으니, 좋은 것이 사람을 돕지 못하는 것을 안다면 나쁜 것이 사람을 해롭게 하지 못하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러니 반드시 스스로가 이름값을 하려고 늘 자신을 검속하고 경계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성인이 되어 새로 명자설(名字說)을 받은 사람은 이름에 맞춰 살고자 날마다 그 뜻을 되새기면서 실천에 힘쓰고, 그에 맞게 살았는지 반성하는 것을 자기수양의 방편으로 삼았습니다. 이른바 고명사의(顧名思義), 이름(명예)을 돌아보고 의를 생각하는 삶입니다.

“명예를 가볍게 여기라고 책에 쓰는 사람도 자기 이름을 그 책에 쓴다." 로마의 철인(哲人) 키케로(B.C. 106~B.C. 43)가 한 말입니다. “아아 나의 이름은 나의 노래/목숨보다 귀하고 높은 것.” 이것은 청마 유치환의 시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에 나오는 명구입니다. 나는 이미 ‘이 세상에 불행한 글자가 없게’(2021.11.16.)라는 글에서 이름 이야기를 했지만, 아무래도 미진한 마음이 들어 추가로 이 글을 썼습니다. 이름은 목숨보다 더 귀하고 높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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