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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별세 서거 그리고 Die
임종건 2021년 12월 07일 (화) 00:00:04

전두환 대통령은 지난 11월 23일 90세를 일기로 별세했으나, 그의 죽음 훨씬 이전부터 누구나가 분명히 예상했던 일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그가 결코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없으리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국내의 어느 언론에서도 그의 죽음을 ‘서거’라고 표현하지 않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명확히 예측했던 사람은 전 대통령 본인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애의 마지막에 대해서 자서전에 이렇게 썼습니다.

“내 가슴 속에 평생을 지녀 온 염원과 작은 소망이 남아 있음을 느낀다. 저 반민족적, 반역사적, 반문명적 집단인 김일성 왕조가 무너지고 조국이 통일되는 감격을 맞이하는 일이다. 그날이 가까이 있음을 느낀다. (중략) 그 전에 내 생이 끝난다면 북녘 땅이 바라다 보이는 전방의 어느 고지에 백골로라도 남아 기어이 통일의 그날을 맞고 싶다.”

23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전두환 전 대통령 빈소에 영정이 놓여 있다

전 전 대통령도 인간인 이상 자신이 국가장법의 의한 ‘서거한 전직 대통령’으로, 국립묘지법에 의해 자격이 부여된 안장대상자가 되기를 희망했을 것이나, 5·18을 비롯해 그의 집권으로 비롯된 숱한 업을 씻기에 그의 생애가 짧았음을 스스로 알았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의 결정을 어쩔 수 없이 내린 것이라고 폄하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 결정은 나름으로 오랜 고뇌의 소산이었을 것이고, 타계한 어떤 전직 대통령도 그런 방법으로 생애를 정리한 분이 없다는 점에서 참신성도 인정할 만하기 때문입니다.

전방의 고지는 그가 초급장교였던 때 부대원들을 이끌고 오르내렸던 곳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가 염원했던 통일은 아직도 이루지 못한 민족의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북녘 땅이 보이는 곳에 재로 남고 싶다는 것에는 그런 회한과 염원이 함께 담겨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자신의 화장한 재를 대만해협과 홍콩 앞의 구룡반도 해상에 뿌리고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 간 중국의 작은 거인 등소평을 기억했을지도 모릅니다. 또 고향인 절강성의 양자강에 자신의 재를 뿌리고 간 중국의 주은래 총리를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두 사람은 최소한 생을 정리하는 방법에선 북경 천안문 광장 밑에 미라로 남아있는 모택동보다 컸습니다.

6·25전쟁을 일으켜 금수강산을 피로 물들인 북한의 김일성이 3대를 이어가며 씻지 못한 죄업을 안고 평양의 금수산 태양궁전에 아들 김정일과 함께 미라로 누워있는 것과는 비할 바도 없이 큽니다.

전 전 대통령에 대한 국가장과 국립묘지 안장을 거부한 현 정부는 화장한 재를 전방의 고지에 뿌릴 날을 기다리며 유해를 집안에 보관 중인 가족들이 유언을 실행할 수 있도록 도와야할 의무가 있다고 봅니다.

전두환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보도에서 예상대로 어느 언론도 ‘서거’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습니다. 28일전 노태우 대통령이 별세했을 때 유일하게 ‘서거’라고 썼던 신문을 포함 소수의 보수신문만 ‘별세’로 썼고, 중도, 진보, 공영 언론들은 대개 ‘사망’으로 썼습니다.

‘사망’으로 쓴 언론들은 전 전 대통령의 직함도 ‘전 씨’로 통일했습니다. 이 언론들의 경우 과거 특정 대통령들의 사망은 ‘서거’였고, 기사의 문장이 시작될 때마다 ‘고 000 전 대통령’이라고 썼습니다. ‘그’라고 써도 그만인 기사에 띄어쓰기를 포함해 11자의 직함을 꼬박꼬박 썼으므로 활자의 낭비가 컸습니다. ‘전 씨’로의 통일은 그런 낭비를 줄이는 효과 하나는 인정될 만했습니다.

​대통령 죽음의 표현이 이렇게 엇갈린 것은 사자의 생애에 대한 언론 나름의 평가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서거’는 높은 존경심을, ‘별세 또는 타계’는 보통의 존경심을, ‘사망’은 존경보다는 단죄한다는 의미였을 겁니다.

​사망은 죽음을 표현하는 가장 중립적인 용어입니다. 지체의 높낮이에 관계없이 누구든 죽으면 사망한 것입니다. 그러나 ‘서거’ 말고는 ‘사망’ 또는 ‘별세’로 써서는 안 되는 대통령이 있었습니다. 반대로 전 대통령처럼 ‘사망’ 말고는 ‘서거’ ‘별세’로 써서는 안 되는 대통령도 있었습니다. 어떤 대통령의 죽음은 임금의 죽음을 일컫는 '시해'로 표현됐습니다. 이처럼 대통령의 사망에선 ‘사망’조차 지극히 주관적인 용어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정부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공영매체들은 이런 경우 표현의 수준을 정부의 입장에 맞추곤 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선 정부의 입장이 비교적 선명했으므로 ‘사망’과 ‘전 씨’라는 표현을 쓰는 데 거리낄 것은 없었을 것입니다. 노태우·전두환 두 대통령이 다른 성향의 정부 시절에 타계했다면 공영매체들의 표현의 수준은 어떠했을까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인물이나 시대를 평가함에 있어 과도한 주관의 개입은 섣부른 것입니다. 중립적인 용어인 ‘사망’을 증오의 용어로 사용하면서, 그것을 마치 정의의 편에 선 것이라도 되는 양하는 것은 편협한 허위의식일 수도 있습니다.

‘서거’나 ‘사망’이 주관적인 개념으로 변질된 마당에 ‘별세’나 ‘타계’가 오히려 중립적인 어휘가 됐습니다. 앞으로 어떤 대통령이 타계하든 언론 보도 또한 그런 중립적인 용어로 통일됐으면 합니다. 국가장법의 용어 ‘서거한 전직 대통령’도 정권에 의해 선택적, 편의적으로 쓰일 거라면 ‘사망한 전직 대통령’으로 바꾸는 게 낫다고 봅니다.

국가장법에선 대상자를 '서거한 전직대통령'으로 해놓고, 국립묘지법에선 '사망한 전직 대통령'으로 간주하는 식의 법운용은 변칙적이기도 합니다. 아직도 두 분의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있고, 앞으로도 어찌될지 모르는 나라여서 이 문제로 인한 국민의 짜증이 지속되겠기에 하는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 부분에선 영어가 우리말보다 한 수 위인 것을 알게 됩니다. 영어에선 고관대작이거나 서민이거나 흉악범이거나 모든 죽음은 ‘죽다(Die)’로 수렴됩니다. 호칭 수식도 우리처럼 ‘아무개 전 대통령’이나 ‘씨’로 구분할 것 없이, 문장 처음에만 ‘왕 아무개’ ‘대통령 아무개’이지 다음 문장부터는 ‘그(He)’나 ‘그녀(She)’의 3인칭으로 통합니다.

​중립적인 표현이 보편적인 세상일수록 평등하고 절제된 세상이고, 사람들이 죽음 앞에 겸허해질 수 있는 나라가 성숙한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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