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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堂山) 마을의 쓸쓸한 김장 풍경
함인희 2021년 11월 30일 (화) 00:00:46

당산(堂山) 마을은 저희 블루베리 농장이 자리한 곳의 이름인데요, 해마다 11월 중순경이면 집집마다 김장 준비에 아낙네들이 유달리 분주해지곤 했습니다. 이 마을에선 김장 때 쓸 배추와 무 그리고 고추 정도는 직접 재배합니다. 손바닥 만한 땅만 있어도 철따라 상추 심고, 가지 따고, 호박 넝쿨을 올리는 분들이니까요.

김장철이 시작되면 월산리 이장님댁(한번 이장은 영원한 이장인가 봅니다) 김장을 시작으로 다음 날은 모퉁이 감나무 집 형님네, 그다음 날은 길자 아주머니네, 또 다음 날은 황씨 아저씨네로 동네 아주머니들 김장 품앗이가 이어집니다. “올해는 쌍둥이네 배추가 최고로 맛이 잘 들었구먼.” “바지런한 최씨 아줌마네 태양초 고추 때깔 좀 봐유.” 한마디씩 건네는 품평에 섞여, “농협에서 준 새우젓이 작년만 못한 것 같어.” “무에 바람이 들었나 허벙허벙하네.” 걱정 가득한 목소리도 들려옵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 만큼 솜씨 좋게 버무린 김장속을 배추 사이사이에 넣는 동안, 당산 마을 아낙네들은 자식 자랑에 신이 나고 사위 트집 잡느라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며느리 흉은 아예 사라진 걸 보니 이곳에도 ‘고부갈등의 시대는 가고 장서(丈壻)갈등의 시대가 왔나’ 봅니다. 그래도 압권은 역시 남편들 소싯적 바람피운 사연들입니다. 지금은 아무렇지 않은 듯 웃어넘기지만, 맺혔던 응어리를 배추속 갈피마다 욱여넣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 어린 시절 우리 집 김장 담그던 모습도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매해 100포기는 족히 담갔던 것 같습니다. 겨울이면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인지라 맛나게 익은 김치 하나면 훌륭한 반찬이 되었었지요. 지금도 기억나는 음식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라드를 큰 국자로 듬뿍 떠 넣고 끓인 김치찌개입니다. 검색을 해보니 라드(lard)는 ‘돼지비계를 식용으로 활용하기 위해 정제한 반고체 기름’이라고 하네요. 지금 같으면 “돼지 비곗덩어리를?” 하며 얼굴을 찡그릴 테지만, 그때 그 시절 라드 김치찌개는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바로 그 맛이었답니다.

또 하나는 대표적인 이북음식인 김치말이입니다. 1926년생 호랑이띠 저희 아버지 고향은 평안남도 강서랍니다. 해방되기 전 혈혈단신 남한으로 잠시 내려오셨다가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슬픈 사연을 안고 계시지요. 어느 해인가는 한 달 내내 '뜯어국'(수제비의 이북말?)만 잡수시다 그만 영양실조에 걸린 적도 있었다네요. 그런 아버지가 고향을 그리워하며 겨울이면 찾으시던 음식이 김치말이였습니다.

일단 마당에 묻어두었던 김장독에서 잘 익은 김치 한 보시기를 꺼내 송송 먹기 좋게 썹니다. 그 위에 살얼음이 얇게 낀 김칫국물 두어 사발을 붓습니다. 여기에 찬밥을 말아 참기름 깨소금 살짝 곁들이면 김치말이가 완성됩니다. 한겨울에 먹는 김치말이 덕분에 어릴 적부터 이열치열(以熱治熱)이 무슨 뜻인지 확실히 알았습지요. 부모님 고향이 이북인 친구들끼리는 김치말이를 먹어보았느냐 아니냐로 성분(?)을 나누기도 했답니다.

우리네 일상에서 김장 품앗이 풍경이 서서히 사라져 간 이유 중 하나가 아파트일 테지요. 아파트가 처음 들어서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 걱정거리 중엔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어찌 변기를 함께 쓸 수 있으랴’와 함께 ‘김장독 묻을 곳이 없네’가 우선순위에 들어 있었다 합니다. 김치 냉장고 기술이 아무리 빼어나다 한들, 땅 속에 묻었던 김장독 김치 맛을 따라갈 순 없지 않을까요?

한데 지난겨울에 이어 올겨울도 당산 마을에선 김장 품앗이 풍경이 사라졌습니다. 물론 코로나19가 주범이지요. “6•25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여. 전쟁 중에도 마실은 다녔었는데 코로나 때는 아무도 방에서 안 나왔으니까.” 당산 마을 최고 어르신인 이장님 모친이 종종 하시는 말씀입니다. 올해 김장은 어찌하셨는지 여쭈었더니 며느리 둘만 불러서 가족들 먹을 것만 “아주 쬐끔” 담갔다십니다. 김장 품앗이할 때 인사 깍듯이 드리면서 일손을 조금 보태면 맛이나 보라며 김장김치 두어 포기를 싸주시곤 하는 바람에, 이 집 저 집 김치를 골고루 맛보는 행운을 누리곤 했었는데, 작년에 이어 올해도 김치를 사 먹는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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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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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남 (220.XXX.XXX.155)
글로써 그린 한 폭의 민속화입니다.
잘 읽고 잘 보았습니다.감동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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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30 10:3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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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인희 (221.XXX.XXX.151)
늦었지만,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다시 읽어보니, 저도 가슴 한 켠이 뭉클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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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7 21:2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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