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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를 보고 안심했다(2)
-통일 전 동베를린을 다녀온 이야기-
신현덕 2021년 09월 10일 (금) 00:00:30

동베를린을 자유 여행하는 날 아침 불현듯 전날 운터 덴 린덴에서 보았던 동독 주재 북한 대사관의 인공기와 많은 유학생들이 연루되었던 동베를린 간첩단사건이 겹쳐 떠올랐습니다. 이제 말하지만 예상치 못한 사건이나 방해 때문에 혹시나 돌아 나올 수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동독(공산국가)의 겉모습이나마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
같이 공부하던 일본 학생 다나까에게 걱정을 털어놓았습니다. 그가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흔쾌히 “힘닿는 데까지 돕겠다.”며 나를 응원했습니다. 용기를 얻었고, 우리는 체크 포인트 찰리까지 데려다주는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아침 9시경인데도 많은 이들이 비자를 받기 위해 길게 줄 서 있었습니다. 다나까는 15분 만에 여권에 비자(자정까지 체류)를 받았습니다. 필자는 다른 이들보다 1시간 가량을 더 길게 기다려 별도의 백지에 찍은 비자(오후 5시까지 체류)를 손에 쥐었습니다. 우린 국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비자 발급비 5마르크 지불, 동독 방문객의 의무였던 동독 화폐 25마르크를 환전했습니다. 동독에게 경제적 이익을 주고, 서독에게는 동독을 포용하기 위한 것이었지요. 동시에 동독에게 어떤 경우에도 공짜 지원은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서독의 정책이었습니다.

다나까와 함께 간 장벽 동쪽은 서베를린과 딴판이었습니다. 경비병이 우리에게 접근하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낙서가 전혀 없었고, 탈주자 방지용 모래가 깔려 있었고, 총을 멘 경비병들이 수색견을 몰고 순찰을 돌았습니다. 두께 50㎝ 정도의 벽으로 갈린 양쪽이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유명한 브란덴부르크 문은 동서 어느 쪽에서 보더라도 차이가 없었는데, 마음으로 느꼈던 괴리감은 지금까지도 가슴 아픕니다. 서쪽은 한없는 자유, 동쪽은 입에 발린 자유란 이름의 통제. 정말 으스스했습니다.

우리는 11시 반경 그곳에서 헤어져 그때부터 각각 시간을 보냈습니다. 훔볼트 대학 박물관 방명록에 ‘한국에서 온 신현덕’이라 썼더니 직원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쳐다봤습니다. “한국 학생은 처음”이라면서 “괜찮겠느냐?”고 필자의 안위를 걱정했습니다. 그가 한국과 북한의 관계, ‘동베를린 간첩단사건’을 알고 있었습니다. 서독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여러 차례 보았답니다.
TV탑 전망대에서 15마르크를 주고 100% 은으로 만든 기념 숟가락을 샀습니다. 지금도 필자의 거실 함지박에 들어있습니다. 녹슬어 닦을 때마다 사라진 동독 정권을 떠올립니다. 당시 한국보다 국민 소득 수준이 더 높았던 동독이 무너진 원인을 생각해 봅니다. 철조망 너머로 조금씩 스며든 자유와 서독의 마르크화(경제)였습니다.

동베를린을 벗어나던 짧은 시간은 지금도 진저리가 쳐질 만큼 아찔했습니다. U-Bahn(전철)을 타고 서베를린으로 가려고 지하의 출국장에 갔지요. 비자를 보더니 반드시 체크 포인트 찰리로 나가야 한다며 여권을 돌려줬습니다. 오후 4시 40분경이었을 겁니다. 5시까지 도착할 수 있을지 겁이 덜컹 났습니다. 지도를 보며 무작정 뛰었습니다.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숨이 턱에 닿아 가까스로 시간 안에 도착하니 동서독 관리 모두가 “안심하라” 말했지만 제대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동베를린을 벗어나 찰리 검문소 앞에서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한참 후 터덜터덜 호텔로 걸었습니다. 우리나라 총영사관을 지나며 태극기를 보자 제대로 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이 고마웠습니다.(일부 내용은 졸저 '독일은 서독보다 더 크다'와 중복됨)

최근의 형세가 가슴을 무겁게 짓누릅니다. 문재인 정부는 대한민국을 적으로 삼았던 인사를 과거 일본에 항거했다는 이유만으로 애국지사로 추앙하는 행사를 몇 년째 했습니다. 대한민국을 멸망시키려던 중화인민공화국(抗美援朝)과 북한(6・25)은 시도 때도 없이 온갖 몽니를 다 부립니다. 우리 정부는 이들과 얽힌 외교 문제가 발생하면 비루 오른 강아지 범 복장거리 시키듯 합니다. 대한민국 등에 칼을 꽂았던 중국과 북한을 향해 일본에게 악다구니질 하는 것의 반만큼이라도 당차게 나서면 좋겠습니다. 북한 김여정과 김영철 등의 추악하고 험한 말, 중국 외교부장 왕이의 결례에 한마디도 못하는 외교를 언제까지 보아야 합니까. 6・25 전장에서 병사가 죽음을 무릅쓰고 지켜 낸 태극기가 자랑스럽지도 않습니까?

 
 
 
  사진설명: 보병 제5사단이 6・25전쟁 중 소양강, 인제지구 전투에서 적을 추격하는 중이다. 적은 태극기를 든 병사를 표적으로 삼아 집중 사격을 가해 거꾸러뜨리곤 했다. 하지만 일제 때 나라 없는 설움을 당했던 병사들은 앞다퉈 깃대를 잡았고, 절대로 태극기를 놓지 않았다.(종군작가 신의균 씨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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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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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회 (112.XXX.XXX.252)
태극기를 봤을 때 감격한 순간, 참으로 감격스러웠을 것 같습니다. (3)으로 이어질지요?
답변달기
2021-09-13 08:43:42
0 0
신현덕 (119.XXX.XXX.154)
태극기가 그때처럼 고마웠던 적이 없습니다.
그 태극기가 영원하도록 북한과 중국을 다스려야 합니다.
화해와 사과, 용서는 별개의 것입니다.
교역과 방위는 구분되어야 합니다.
답변달기
2021-09-16 13:52:15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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