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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모가디슈>와 아프가니스탄
권오숙 2021년 08월 25일 (수) 00:02:28

얼마 전 <모가디슈>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1991년 소말리아에서 내전이 발발했을 때 남북한 대사관 직원과 가족의 생사를 건 탈출 실화를 영화화한 것입니다. 대규모 인원을 동원한 생생한 내전 장면과 생사의 기로에서 오로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 그런 절체절명의 순간에 발휘된 이념을 뛰어넘은 동족애가 감동적으로 그려진 탓인지 팬데믹 4차 대유행 상황에 개봉했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개봉 영화 중 박스 오피스 2위(23일 기준 누적 관객 수 260만 명 이상 관람)를 기록 중입니다.

류승완 감독은 “너무나 강렬하고 극적인 상황 속에 고립된 인물들의 모습이 굉장히 극적이었다... 원래 사건 자체가 너무 드라마틱해서... 상상의 범주를 뛰어넘는 거였다....영화 속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향할 때 정부군과 반군 모두에게 오해받아서 공격받는 장면, 그리고 총알 세례 속에서 단 한 사람만 사망했다는 것도 믿어지지 않지만, 실제 사실이다. 이런 것들을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볼 때 너무 가짜 같지 않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인터뷰를 하였습니다(CBS 노컷뉴스 최영주 기자의 2021-08-20자 인터뷰 기사 내용 참조).

그러면서 소말리아 국영 TV 기자가 쓴 수기 내용 중 반군들이 시체로 바리케이드를 만들었다, 북한 대사관이 8번 약탈당했다 등의 믿기지 않는 참상을 소개하기도 하였습니다. 실제 상황이 너무 믿어지지 않아 오히려 작품에 개연성을 주기 위해 실상을 축소하기도 했다는 감독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영화 속 많은 내용이 과장된 허구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영화관을 떠났습니다. 물론 이때는 감독의 인터뷰를 읽기 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며 느낀 전쟁, 특히 내전의 참상이 아직 뇌리에서 사그라지지 않은 지난 15일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을 점령했다는 뉴스가 들려왔습니다. 이어서 대통령이 도망가고, 정부의 역할과 기능이 마비된 채 아수라장이 된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이 속속 전해졌습니다. 미군 수송기를 타려고 공항으로 몰려든 수만 명의 사람들, 수송기에 빼곡히 올라탄 사람들, 이륙하는 비행기를 쫓아 활주로를 달리는 사람들, 기체에 필사적으로 매달린 사람들의 모습 등 아비규환의 현장이 화면에 비쳤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이륙하는 비행기 바퀴에 매달렸던 사람들이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탈출을 시도한 영화 속 장면들이 비로소 실감 났습니다. 안타깝게도 딱 30년 만에 소말리아 내전과 똑같은 상황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다시 벌어진 것입니다. <모가디슈>를 본 관객들이라면 아프가니스탄 소식을 접하며, 필자처럼 믿기지 않는 영화 속 상황이 고스란히 현실에서 재현되고 있는 데 대해 놀랐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햄릿』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아버지의 유령으로부터 숙부가 아버지를 독살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복수를 맹세했던 햄릿은 특유의 신중하고 사변적인 성격 탓에 유령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해 보기로 합니다. 그래서 마침 덴마크 궁전에 도착한 유랑 극단에게 아버지 유령이 말한 것과 같은 독살 장면을 숙부 앞에서 공연하게 합니다.

이 극중극을 준비하면서 햄릿은 배우들에게 오버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연기하라고 당부합니다. 왜냐하면 햄릿이 생각할 때 연극의 목적은 “자연에 거울을 들어 보이는 것”(“to hold as 'twere the mirror up to nature", 3막 2장)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자연이란 이 세상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햄릿은, 아니 셰익스피어는 무대 위 연기는 곧 우리 삶의, 세상의 실제 모습을 담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영화가 셰익스피어 당시 연극과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는 현대적 장르라고 봤을 때, 영화 <모가디슈>는 전쟁(혹은 내전)의 참상과 그 안에서 느끼는 사람들의 공포를 잘 담아냈습니다. 그렇기에 영화 속 장면과 아프가니스탄의 실상 보도가 계속 오버랩된 것입니다.

같은 민족끼리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그런 가운데 무고한 희생자들이 발생하는 비극적 역사가 지구상에서 계속 발생하는 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특히 세계가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보며 주한 미군 문제를 들먹이는 상황에서 우리는 이런 상황에 대해 더욱 예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을 한반도 정세에 대입해 미군 철수 문제를 논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류승완 감독은 인터뷰에서 남북한 문제가 정치 도구화되는 것을 안타까워했습니다. 그의 입장은 어떤 정치적 노선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조금이라도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고, 행복하길” 바라는 소박한 마음이었습니다. 생사를 오고가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남한 측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비행기 탑승 기회를 거절하고 북한 측 사람들과 함께 탈출을 도모하여 해냈습니다. 이런 애틋한 동포애가 허구에 기초한 감상주의적 설정이었다면 신파조의 스토리텔링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는 허구적 설정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필자도 한반도의 상황에 대해 정치 현실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예술 연구자의 다소 소박하고 감상적인 심정으로 상상해 봅니다. 연극 혹은 영화가 현실의 반영이라면 <모가디슈>에서 그리고 있는 남북한 사람들의 끈끈한 동포애 또한 실제 우리의 정서 아닐까? 그리고 그런 동포애로 모두를 비극으로 몰아넣는 극한 상황을 우린 함께 피해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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