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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를 보고 안심했다(1)
신현덕 2021년 08월 23일 (월) 00:00:29

-통일 전 동베를린을 다녀온 이야기-

올해 광복절도 참 어수선하게 지나갔습니다. 대한민국 건국에 초점이 맞춰져야할 경사스러운 날이 국치(國恥)의 사후 처리 문제를 두고 서로 세력 자랑하듯(?) 으르렁댔습니다. 그럴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부끄러운 과거 돌아보는 날'이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북한이 우리 국가 재산을 돌더미로 만든 개성공단을 마치 과거의 동서베를린 관계처럼 이야기 하는데는 경악했습니다.

독일(동서독)은 미국을 상대로 맞장을 뜨다가 처참하게 부서졌습니다. 그 뒤 분단 되었을 때나, 통일 후에도 전쟁 패배, 분단 과오, 나치 과거 등을 깨끗하게 정리(승복)하고 오로지 '국민의 자유 보장'을 위해 전진했습니다. 지금까지 모든 (서독)통치자들은 분명하게 현재와 과거를 분리해 다루면서도 '자유와 안보' 원칙을 흩뜨리거나 잊지 않았습니다. 오롯이 독일 '국민의 이익'을 우선했습니다.

1980년대 초반 서독에서 공부할 때 이야기입니다. 겨울 학기 중 대학이 서독정부의 지원을 받아 외국 학생들을 서베를린으로 데려가 분단의 현장을 경험케 하는 프로그램에 참석했습니다. 비용은 개인 여행비의 10분의 1정도로 쌌고, 호텔에서 재웠고 식사는 물론 모든 관광비용까지 포함했습니다. 안내인의 설명에 따르면 모자라는 비용은 서독 정부가 지원했습니다.

떠나는 날. 학생들은 여행에 들떠, 언제나 그렇듯 소란스러웠습니다. 안내인은 동독 땅을 거쳐 서베를린까지의 긴 버스 여정을 설명했습니다. 단 한 차례만 휴게소에 들른다며 그때까지는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다며 준비하라 일렀습니다. 또 동독을 지나는 동안 서독 간행물은 물론 서방 모든 국가의 잡지, 서적 사진 등도 가져갈 수 없다며 지금 버리거나 파기하라고 강조했습니다. 학생들은 “자유”라며 당시 동독 방송이 내보내던 공익광고의 한 구절을 우스꽝스럽게 흉내를 내며 비웃었습니다.

서독 검문소를 지날 때 안내인에게 탑승객 수와 여행 목적을 묻고는 통과시켰습니다. 100m도 안되는 동독 땅에 들어서니 분위기가 확연하게 달랐습니다. 보기엔 군인 복장(군인이 아니라 제복이었음)의 여성 관리가 올라와 여권을 다 걷어갔습니다. 여권 확인이 1시간가량 소요되었고, 모든 학생들은 차안에 갇혀 있어야 했습니다. 안내인도 “내릴 사람이 아무도 없을 텐데 너무한다”며 “코미디”라고 어깨를 으쓱했습니다.

휴게소에는 주변에 감시탑이 즐비했고, 군견을 동반한 군인들이 눈을 번뜩였습니다. 매장에는 서독의 풍요로움에 익숙한 학생들이 구입할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고속도로는 표지판도, 안전시설도, 노면도 모든 것이 참 엉성했습니다. 멋있는 것은 속도위반을 잡을 순찰대 요원과 순찰차였고, 속도위반 자동측정 시설은 그중 첨단이었습니다. 아우토반의 속도 무제한에 익숙한 서독인으로부터 과속에 따른 범칙금을 더 걷기 위한 것이었지요.

첫날은 서베를린을 단체로 버스 타고 관광을 했습니다. 박물관, 널리 알려진 동물원, 쿠담 거리, 서베를린자유대학 등을 주마간산했습니다. 다음 날 오전은 서베를린에서 보는 분단의 상징인 장벽과 철조망이었습니다. 장벽은 한 치도 빈틈없이 낙서로 덮였습니다. “새들은 쿠담(서베를린)에서 운터덴 린덴(동베를린)으로 자유롭게 오간다.”는 구절이 가슴을 찡하게 울렸습니다. 소총을 메고 서베를린으로 탈출하는 병사의 사진도 붙어 있었습니다. 철조망 위에는 손으로 잡고 넘을 수 없도록 둥근 원통이 놓여있었지요. 안내인은 “동독의 악랄한 수법”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전망대에서 본 동베를린은 참 조용했습니다. 다니는 시민도 눈에 띄지 않았고, 건물은 대부분 장벽에서 200m이상 떨어져 있었습니다. 가끔 병사들이 군견을 앞세우고 장벽 너머에서 순찰을 돌았습니다.

​오후에는 널리 알려졌던 체크포인트 찰리를 지나 동베를린으로 갔습니다. 동독으로 들어올 때보다 더 삼엄한 경비 속에 인원 점검과 여권 심사를 받았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부르며 사진과 대조했고, 여권의 위조 여부도 감식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안내도 동독 관리가 직접 맡았습니다. 도중에는 그림엽서와 우표 등을 판매했습니다. 자유진영의 인쇄물은 아무것도 허용하지 않겠다던 그녀가 인심 쓰듯 서독 마르크화로 지불해도 좋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일종의 외화벌이였습니다. 동서독 간 거래 공식 환율은 1대1이었지만 암시장에서는 8배 이상으로 서독 마르크화가 강세였습니다. 서독 마르크화로 구입하면 동독에 8배 이상의 이익을 주었습니다. 서독이 동독을 지원하기 위해 채택한 불공정, 불평등한 환율제도였습니다.

​관리는 웃었지만 행동에는 전혀 성의가 없었습니다. 학생들의 질문에 제대로 답도 안 했고, 답변이 곤란한 체제 관련 질문은 아예 입도 떼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그날 남는 것은 모두가 큰 소리로 웃었던 “모든 것이 자유”라는 말이었습니다. 제복의 윗도리는 당시 서울에서도 잘 입지 않던 하얀 무명으로 지었습니다. 아래는 동독 군인들의 제복과 같은 미색이었습니다.

​다음 날은 동베를린 자유여행이었습니다. 자유여행을 앞두고 참 많이 망설였습니다. 서울에서 여권 발급 전 의무사항이었던 보안교육 때 공산국가 방문을 불허한다는 것과 북한의 납북 사례를 수차례 들었기 때문입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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