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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위협하는 '빨강 코로나'
허찬국 2021년 08월 09일 (월) 03:57:31

얼마 전까지 코로나 백신이 넘쳐나 부러움을 사던 미국의 사정이 델타변이가 빠르게 퍼지며 악화일로입니다. 아래 그림은 2020년 2월부터 2021년 8월 초까지 매일 신규 감염자 수를 보여줍니다. 올 1월 초순 25만 명 고점을 찍고 가파르게 하향 안정화되다 최근 빠르게 늘며 하루 약 1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미국의 코로나-19 신규 감염자 추세

이번 재확산의 주 요인 중 하나는 보수적 성향 공화당 지지자들의 백신 접종과 마스크 착용 거부라고 합니다. 공화당 정치인들이 백신과 마스크의 필요성을 평가절하하며 이를 개인적 ‘선택의 자유’ 이슈로 부각시켜 전염성이 강한 델타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치적 선동이 사람 잡는 형국이라 하겠습니다.

평상시 마스크 착용은 개인의 선택이겠지만 치명적 바이러스가 호흡기를 통해 전파되고 있다면 이는 방역의 문제이지요. 따라서 마스크 착용 의무화에 순응하는 정도는 바이러스의 전염성, 치명도와 반비례합니다. 하지만 코로나-19와 같이 새로운 병원체가 얼마나 위협적인지 실시간으로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발생 초기에 고령층을 중심으로 사망자가 다수 발생하자 강력한 사회적 격리 조치가 큰 저항 없이 시행되었습니다. 이에 따른 실업자가 급증하며 경제적 충격이 엄청났고 미국 정부는 이를 완화하기 위해 대규모 지원책을 펼쳤습니다. 일단 초기 충격이 진정되면서 문제가 꼬입니다.

작년 말 대선을 앞둔 트럼프는 최악의 상황이 지났다며 빠른 정상화를 주문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바이러스의 위력을 목격한 파우치 박사와 같은 공공보건 전문가들은 거의 공포에 휩싸인 듯했습니다. 그는 작년 4월 한 인터뷰에서 본인은 하루에 50번쯤 손을 씻는다고 했습니다. 선거를 앞둔 정치인이 정치적 득실의 관점으로 사안을 판단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현직 대통령에게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책무가 우선일 것입니다.

지난해 봄 이후의 트럼프와 지지자들의 행보는 좀 과장하자면 국가적 재난에 큰 굿으로 악귀를 쫓으려는 후진국을 연상케 했습니다. 호흡기 전파 경로를 알면서도 마스크 착용을 불필요하다고 큰소리 치고, 백악관 공식 행사에서도 마스크 착용, 거리 유지를 무시했습니다. 급기야 트럼프 본인이 감염되어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마스크의 정치 쟁점화는 올 봄 백신 접종이 시작되며 끝나는 듯했습니다. 백신 접종도 마스크 의무화 조치와 유사하게 공화당 장악 주에서 현저히 낮았지만 전체 접종자 수가 늘며 잠시 희망이 보였지요. 그런데 전염성이 강한 델타 변이가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작년 초 감염자 발생이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에 많았지만 특별한 지역적, 정치적 성향의 특색을 보이지 않았던 것에 비해 최근 델타 변이의 경우 매우 뚜렷한 패턴을 보이고 있습니다.

최근 매일 약 10만 명의 신규 감염자가 발생하고 있습니다(뉴욕타임스 8월 6일 자료). 주(州) 별 규모로 보면 플로리다(18,120), 텍사스(11,582), 그리고 캘리포니아(10,520) 순입니다. 인구 10만 명 당 감염자 수로 환산한 미국 평균값이 32명입니다. 이를 기준으로 순위를 보면 플로리다(90명, 2위), 텍사스(38명, 10위)이고 캘리포니아는 20위 밖입니다. 그런데 전체 50개 주 중 상위 15개 주 모두 플로리다와 텍사스처럼 공화당이 주지사와 의회를 장악한 남부에 위치한 곳들입니다.

10만 명 당 감염자 수가 99명으로 1위인 루이지애나가 특히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대부분 공화당 장악 주들은 12세 이상 대상 인구 중 2회 접종을 마친 백신 접종률이 전국 평균 50%보다 뚜렷이 낮습니다. 루이지애나의 경우 접종률이 37%, 다른 남부 주들도 대부분 접종률이 40%를 하회하고 있습니다. 마스크 착용에 적극적인 캘리포니아나 뉴욕 주의 접종률은 50%를 상회합니다.

영국의 주간경제지 이코노미스트지(紙)는 미국의 자료를 대상으로 개인의 어떤 특징, 성향이 백신접종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했습니다. 중요도 순으로 부정적 요인(즉, 백신접종을 기피하게 하는)을 보면 트럼프 투표자, 보수 성향, 흑인, 농촌지역 거주자, 저소득, 낮은 교육 수준 등이 있습니다. 이에 비해 긍정적 요인은 바이든 투표자, 진보 성향, 높은 교육 수준, 도시 거주자 등이 있습니다.

이코노미스트지의 분석은 앞서 본 州별 추세와 공명하는 듯합니다. 남부에 위치한 공화당 장악 지역 주민들의 특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흑인들과 저소득층의 낮은 접종률은 해당 집단의 관련 의료 정보 부족, 상대적으로 낮은 의료서비스 접근성 등의 별도의 문제로 보았습니다.

미국의 일부 언론은 최근 재확산을 공화당 상징색이 빨강임에 착안하여 레드 스테이트(Red state) 문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트럼트의 공화당이 작년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들이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벌였던 치명적 대선용 마케팅의 결과가 남부 지역 공화당이 장악한 주들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지요.

국내에서도 내년 봄 대선을 앞두고 무분별한 정치적 마케팅의 계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성공하면 제왕적 권력을 향유하고, 지면 책임질 일이 없으니 선동에 나선 정치인은 잃을 것이 없지요. 부질없는 바람임을 알면서도 이번에도 양식 있는 정치인과 분별력 있는 유권자들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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