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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불문 감지덕지 대북정책
임종건 2021년 08월 06일 (금) 00:01:39

남북이 7월 27일 오전 10시 판문점 통신연락선을 복원했다. 작년 6월 9일 탈북민 단체들이 대북전단을 살포한 것에 반발, 판문점 채널을 포함한 남북 간 모든 전화연락선을 일방적으로 끊은 뒤 413일 만이다. 작년 6월 북한은 개성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까지 폭파했다.

남북 간의 직통전화는 1971년 판문점 직통전화 개설 이후 남북관계의 온도에 따라 단절과 연결이 수없이 되풀이 됐다. 훈풍이 불면 연결됐으나, 찬바람이 불면 끊겼다. 연결은 둘이 합의로 했으나, 단절은 북한의 일방적인 조치였다.

남북관계는 늘 그랬다. 1972년 박정희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 간의 7·4공동선언을 비롯해 양측 정상이 합의 작성한 무수한 공동선언 공동성명 합의문 등은 북측의 일방적인 파기로 휴지화됐다. 가장 최근의 문서인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의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도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로 사실상 휴지로 된 상태이다.

또다시 속는 셈치고 믿어볼 뿐이지 전화선 하나 이은 것으로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어올 조짐이라고 말하는 것은 섣부르다. 냉전 시절 미국과 소련 간의 핫라인은 일촉즉발의 긴장상태 속에서도 끊지 않아, 우발 전쟁의 발발을 막았고, 지금도 그렇게 유지되고 있다.

북한이 남한에 대해 약속파기를 식은 죽 먹듯이 한 이유는 무엇일까? 북측이 만나자고 하면 그들의 도발로 인한 국민적 희생이나 수모를 잊어버린 듯이 감지덕지하며 받아들인 우리 측의 자세가 제일 큰 원인이다. 그런 자세는 보수, 진보정권을 막론하고 비슷했다.

북한의 무수한 대남 도발에 대해 우리 측에서 북으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받아낸 정부가 없다. 남북 대화에 성과를 내서 정권을 잡거나 유지하려는 시도만 있었다. 역대 정부의 그런 조급함이 남북대화를 지리멸렬하게 한 원인이다.

북측으로선 그런 도발로 손해 볼 일이 없었다. 남북관계가 긴장되면 내부를 단속하기 편하고, 남한에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세력이 나타나 남남갈등이 조성되는 일석이조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청와대는 이번 통신연락선 연결에 대해서도 남북 정상 간의 여러 차례 협의의 성과라고 했으나, 그동안 해온 과거불문 감지덕지 대화추구 정책의 되풀이라고 볼 수 있다. 북측이 통신선연결과 동시에 이달 실시되는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중단을 요구하고, 정부 내에서조차 찬반이 엇갈리는 정황으로 짐작되는 일이다.

북측이 남한에 대해 유화적 제스처를 보내온 배경은 내·외 두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북한 내부 요인으로는 오랜 경제제재에다 코로나19 사태가 겹친 북한의 심각한 경제상황이다. 외부 요인으로는 미국에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것과, 내년 3월 한국의 대통령 선거다.

북한의 경제문제는 미국과의 핵협상에 달려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핵정책이 트럼프 행정부 때의 일괄타결 방식에서 단계적 타결방식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비쳤으나 근본적으로는 같다. 북한의 명확한 비핵화의지의 표명과 실천이 없이는 경제제재 해제는 없다는 것이다.

2019년 트럼프 대통령과의 하노이 회담에서 김정은이 영변 핵시설폐기 카드를 들고 왔다가 퇴짜를 맞았던 터라, 바이든 행정부도 북한에 대해 영변핵시설 폐기 외에 플러스알파를 요구할 텐데, 그것을 들어 줄 용기가 있어야 북미 간에 의미 있는 대화의 진전이 가능하다.

문제는 내년도 한국의 대선이다. 현 정부는 정권의 재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남한 선거에서 북한의 최대 고려사항은 늘 어떤 정부가 들어서는 것이 그들의 체제 안정에 도움이 되느냐는 것이었다.

1997년 대선 때 총풍사건에서 그 일단이 드러났다. 당시 안기부의 공작원이 북한 공작원과의 접촉에서 북한은 야당의 김대중 후보보다 보수적 집권당인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당선을 바란다는 얘기를 듣고 시작된 것이 총풍사건이다.

북한 측이 휴전선에서 총 몇 발을 쏘면 남한 내에서 안보위기감이 조성되고, 그것이 이회창 후보의 당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을 남과 북이 공유했던 것이다. 그점에서 총풍사건은 남북의 합작품이었다.

남한에 친북정권이 들어서는 것은 북한이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권의 안정을 위해서는 친북정권보다 적대정권이 더 유효하다는 것이 북한 체제의 딜레마이다. 남북관계는 기본적으로 적대적인 공생관계의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시대라고 크게 변했을 것 같지는 않다.

북한으로선 남한의 보수정권은 ‘미제의 주구’니, ‘독재타도’니 하며 대결국면을 조성하는 데는 유용하다. 친북정권을 상대로 그랬다간 북한 내부에서도 회담할 때는 언제고 또 대결타령이냐고 의아해 할 것이고, 남한의 친북정권을 궁지로 몰 뿐이다.

문재인 정권 이후 북측은 대통령 개인에 대한 온갖 모욕적인 언어 공격을 가하긴 했으나, 연평도 포격과 같은 인명살상이 초래되는 물리적인 도발은 없었다. 현 정권은 이것을 대북정책의 성과라고 자평하고 있지만, 감지덕지 친북정책의 성과라고 하기엔 너무 사소하다.

그럼에도 통신연락선 재개통을 놓고 4차 남북정상회담 운운하는 것을 보면 김정은과 세 번의 정상회담을 포함해 네 번이나 만났지만 북핵문제에 관해 이렇다할 성과물을 만들지 못한 대북정책의 실패에 대한 반성이 없다.

대선을 8개월여 남겨둔 시점에서 현 정부엔 내세울 치적은 별로 없이 실패한 정책만 쌓여가고 있다. 대북정책은 치적거리로 삼을 가능성이 있는, 그래서 정권재창출의 돌파구로 삼을 거의 유일한 희망 프로젝트다. 4차 정상회담을 서울에서 여는 것은 문 정권의 오랜 소망이다.

김정은이 그렇게까지 하면서 문재인 정권의 재창출을 위해 협력할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북풍'에 대한 학습효과로 인해 정상회담이 선거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인지도 두고 볼 일이다. 정상회담이나 김정은의 서울방문이 성사된다 해도 문 대통령이 그에게 해야 할 말은 분명하다.

6·25 남침에 대한 사죄가 너무 오래전의 일이라면, 국민들의 뇌리에 생생한 국익과 자국민 보호에 관한 사건들, 이를테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한 사과와 서해상 표류 공무원 살해사건의 진상규명, 부당하게 장기 억류 중인 6명의 한국인의 석방을 관철하지 못할 것이면 만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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