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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텃밭을 갖고 싶다
노경아 2021년 08월 03일 (화) 00:02:23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한 대 처맞기 전까지는.” 나의 애초 계획은 이랬습니다. “주말마다 텃밭에 간다. 갓난아이를 키우듯 식물들을 잘 돌본다. 싱그러운 열매들이 주렁주렁 열린다. 지인들을 초청해 하하, 호호 이야기꽃을 피우며 채소 잔치를 연다.”

텃밭을 가꿔본 사람은 압니다. 계획한 대로 식물들이 잘 자라주지 않는다는 것을. 몇 년 전 경기 하남의 민영 주말농장을 (공짜로) 분양받아 다양한 씨앗을 뿌렸습니다. 상추, 오이, 고추, 가지, 토마토, 땅콩…. 복잡한 회사 일을 잊고 답답한 도심을 벗어나는 게 좋아 주말이면 무조건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는 행복한 상상은 싹이 날 때까지, 아주 잠깐뿐이었습니다. 주말에 이런저런 일이 생겨 한 주, 두 주 거르면서 밭은 금세 엉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잡초가 상추, 쑥갓 등 키 작은 채소들을 덮치고, 토마토는 벌레에게 먹혀 진물이 흐르고, 지지대를 세우지 않은 가지, 오이, 고추는 쓰러져 상처투성이였습니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농부가 부지런해야 식물이 잘 자란다는 뜻이지요. 특히 싹이 난 이후엔 한눈팔지 말고 정성을 쏟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밭이 농부와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가족이 채소 농사에 실패한 이유는 게으른 탓도 있지만, 그보단 텃밭이 너무 먼 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짜에 눈이 멀어 차로 2시간가량 떨어진 밭을 덜컥 받았으니 농사가 잘될 리가 없었지요.

올봄 꿈꾸던 텃밭에 다녀왔습니다. 경기 남양주시 B아파트 1층 뒷마당에 자리 잡은 텃밭입니다. 베란다 문을 열고 세 계단만 내려가면 바로 텃밭입니다. 빈티지한 연두색 철망엔 장미넝쿨이 피어오르듯 줄기를 뻗고, 그 아래 땅에선 로즈메리·바질·민트 등 갖가지 허브들이 향을 내뿜고 있습니다. 채소밭 옆 장독대에선 된장, 고추장, 간장이 익어가고 있고요.

텃밭 주인장 내외분은 텃밭에서 늘 하루를 맞이합니다. 텃밭에서 함께 차를 마시고, 책을 읽고, 그곳에서 자란 채소로 요리해 식사를 합니다. 밭이 가까이 있어 가능한 모습입니다.

텃밭을 아예 집 안으로 들인 이들도 있습니다. 요즘엔 집 안에서 채소를 키우는 게 유행이랍니다. 베란다는 기본. 거실과 주방 한쪽에 재배기를 설치해 식물을 키우는 ‘플랜테리어(식물+인테리어)’가 인기라네요. 식물은 보는 것만으로도 청량감을 주고 공기정화 효과도 탁월하기 때문입니다. ‘반려식물’ ‘반려채소’라는 말이 떠오른 이유입니다.

집 안에서든, 들판에서든 식물을 가꾸면 삶이 즐겁습니다. 초록 식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되고 생각이 넓어지잖아요. 영어단어 ‘culture(문화)’가 ‘재배·경작’이라는 뜻의 라틴어 쿨투라(cultura)에서 유래한 이유일 것입니다.

30년간 정원을 가꿔온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치료사인 수 스튜어트 스미스는 ‘정원의 쓸모’에서 “식물 기르기는 우울증과 불안증 등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면서 “정원은 우리를 생명의 기본적인 생물학 리듬으로 돌아가게 해준다”고 말합니다.

코로나와 더위에 지친 여름, 작은 텃밭을 가꾸며 자연의 리듬에 맞춰 지내는 건 어떨까요. 삶의 속도를 조금만 늦추면 우울함을 벗어던지고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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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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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타빈 (203.XXX.XXX.45)
타이슨의 주먹에 한 방 맞으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지요. ㅎㅎ

농사는 정말 끝도 없는 수양의 길입니다.
저도 아버님이 연로하셔서 매주 고향 포천에 가서 농사를 짖습니다만, 아버님이 평일에 대부분 잔일을 해 놓으심에도 불구하고, 쑥 자란 작물이며, 더 자란 잡초들을 대할 때면 매일 발걸음 소리를 들려 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더라구요.
사실 싹이 나기 전에도 비둘기들이 날아와서 흙 속에 심어놓은 씨앗을 귀신 같이 파 먹는 경우도 있어, 이미 밭을 갈 때 부터 농사는 시작이라고 봐야 합니다. (파종 후에는 새를 쫓아야 합니다.)

텃밭, 언젠가 필자님을 저의 작은 농장에 초대해 채소잔치를 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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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3 07:5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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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아 (116.XXX.XXX.129)
심신수양을 통한 먹거리 수확! 나이들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 같습니다. 선생님의 작은 농장에서 채소잔치 열 날을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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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3 14:3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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