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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을 허(許)한 추기경 이야기
이성낙 2021년 07월 06일 (화) 00:07:37

오래전 독일 쾰른(Koeln) 교구의 프링스(Josef Cardinal Frings, 1887~1978) 추기경에 대한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독일은 전후(戰後) 우리네 1950년대의 사회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나 봅니다.
특히 1946~1947년 겨울은 ‘굶주림의 겨울(Hungerwinter)’이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춥고 배고팠다고 합니다. 수십 년 만에 몰아닥친 한파(寒波)에 쾰른시를 지나가는 라인(Rhein)강이 꽁꽁 얼어붙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처럼 혹독한 추위에 시민들은 땔감으로 가로수를 베었는가 하면, 기차역으로 떼 지어 몰려가 운송 차량에 실린 석탄을 ‘약탈’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런 가운데 많은 사람이 성당의 신부님을 찾아가 ‘고해성사(告解聖事)’를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벌인 약탈 행위를 참회하며 용서를 구한 것입니다.

이때 프링스 추기경은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도적 행위는 용서를 받을 수 있다며 시민들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고 합니다. 그 후 ‘프링젠 (Fringsen)’이라는 새로운 단어가 독일어 사전에 등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단어엔 '곤경에 처하여 무엇인가를 훔치다(etwas aus der Not heraus stehlen'란 설명이 붙었습니다.

문득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게 됩니다. 1950년대에는 버스를 타고 가다 승객 중 누군가가 “쓰리요, 쓰리!”라고 고함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쓰리’는 소매치기의 일본 말입니다.) 그러면 버스 기사는 가까운 파출소로 차를 몰고 가서 경찰한테 소매치기를 찾아달라고 ‘요청’합니다. 승객들의 소지품을 뒤지는 진풍경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당시 우리 사회에는 이처럼 크고 작은 도둑이 극성을 부렸습니다. 부인할 수 없는 우리의 자화상이었습니다.

조선 왕조의 쇠망, 일제 강점하의 시달림, 거기에 이어 덮친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한국 사회는 극심한 빈곤에 허덕였습니다. 참혹하고 참담한 시기였습니다. 오죽했으면 1960년에 세계 최빈국이라는 별칭을 얻었겠습니까? 그만큼 우리 사회는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부끄럽다’는 표현이 사치스러울 정도였습니다.
독일 유학 시절인 1960년대에 그런 기억이 알게 모르게 콤플렉스의 잔재로 작용했던지, 필자에게는 프링스 추기경의 이야기가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일종의 면죄부라도 받은 양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사회상은 1950~1960년대의 험악했던 시대가 있었는지 의심이 들 만큼 탈바꿈했습니다.

그래서 시민 의식의 잣대로 삼을 만한 ‘작은 도둑’ 이야기를 생각하며 다시 확인해보았습니다. 또래 친지들(70대 후반, 80대 초반)과 소지품을 분실했던 경험담을 나눠보기로 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이구동성으로 일명 소매치기를 당해 소지품을 분실한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모두 한결같이 아주 오래전의 ‘에피소드’로 기억할 뿐, 근래 그 비슷한 일을 당한 경험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친지들은 예외 없이 무엇인가를 분실한 경험은 있었습니다. 친지들이 가장 흔히 분실한 품목은 핸드폰이 단연 으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핸드폰이 손에 없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몰려오는 ‘Black out’ 현상은 거의 같았습니다. 흔히 말하기를 연락할 ‘여보(如寶)’ 전화번호가 생각나지 않아 당혹스러웠다고 합니다. 잠시나마 정신적 혼란을 겪기에 충분합니다.

그럼 분실했던 핸드폰을 다시 찾았느냐고 물었습니다. 신기하리만큼 모두 되찾았다고 합니다. 택시나 전철에 두고 내렸음에도 말입니다. 택시 기사가 가족에게 전화를 걸기도 하고, 파출소나 전철 ‘유실물센터’에 보관 중이란 연락을 받기도 했답니다.
필자는 누구도 ‘영구 손실’을 당하지 않았다는 데 주목합니다. 이는 분명 작금의 우리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뿌듯하기 그지없습니다. 다시 말해, 세계 다른 나라의 상황에 비하면 우리는 가장 정직한 사회에서 사는 복을 누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외국인들이 한결같이 놀라워하며 진술하는 ‘토픽거리’와 맥을 같이합니다.

상기와 같은 생각을 돌이켜본 까닭은 근자에 필자가 책 한 권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9년 출판된 《반일 종족주의(反日種族主義)》 (이영훈 외, 미래사)입니다. 저자는 ‘거짓말의 나라’라는 제목이 붙은 프롤로그의 작은 제목 ‘거짓말하는 국민’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한국의 거짓말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2014년에만 위증죄로 기소된 사람이 1,400명입니다. 인구수를 감안한 1인당 위증죄는 일본의 240배나 됩니다. 허위 사실에 기초한 고소, 곧 무고(誣告) 건수는 500배라고 합니다. 1인당으로 치면 일본의 1,250배입니다.” 저자의 이러한 논조는 책의 말미까지 이어집니다. (이 책은 일본어로 번역되어 일본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로 크게 주목받았다고 합니다.)

필자는 사회학이나 법학 분야에 전문성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언급한 무고죄 관련 수치를 읽고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국민의 뿌리 깊은 ‘거짓 습관’에서 비롯된 결과가 아니라, 법조항의 ‘느슨한 운용’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아니면 말고’와 무관하지 않은 것입니다. 유럽에서는 무고죄에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벌금’을 부과합니다. 우리도 엄격하게 법을 운용한다면 아마도 경솔하게 고소할 엄두를 못 낼 것입니다.

이는 위 책의 저자가 주장하듯 우리 국민이 거짓말쟁이여서가 아니라 국민을 ‘거짓말쟁이’로 몰아온 법조계의 문제입니다. 아울러 주어진 여러 자료를 편향되게 해석하는 한 학자의 작태에 필자는 분노를 금할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뿐 아니라 자기 사회, 자기 민족을 폄하(貶下)하는 모습이 볼썽사납기만 합니다.

약탈을 허(許)한 프링스 추기경의 이야기가 되새길수록 큰 감동으로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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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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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은순 (211.XXX.XXX.103)
안녕하세요?
저도 박사님의 글에 항상 깊이 감동하며, 우리나라의 역사, 문화에 대한 박사님의 깊은 애정과 관심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오늘 글도 그렇습니다. 잘못에 대한 우리나라 법 조항들이 너무 가벼운 부분이 많다고 느끼는 것이 대부분 우리나라 국민들의 생각인 것 같은데, 그 부분이 왜 개선될 수 없는지 궁금합니다. 아마도, 법을 어기는 사람들이 힘세고 돈많은 사람들, 국회의원 자신이나 친척, 친구, 국회의원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듭니다. 조금씩 나아질 날이 오겠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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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06 10:4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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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명 (121.XXX.XXX.83)
항상 박사님의 글에 감동을 느낍니다. 오늘 글도 아주 시원한 내용이네요. 요새 한국 젊은이들이 세계 속에 드러내는 위상에 찬사가 터져나오는데 아직도 고루한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기성세대들이 걱정이고 문제죠.
답변달기
2021-07-06 09:3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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