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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편식증’과 다른 나라 문화재
이성낙 2021년 06월 04일 (금) 00:30:32

우리 사회는 몇몇 국가의 ‘명품 문화예술품’을 제외하고는, 다른 나라의 문화재에 관해 관심과 욕심이 없어도 너무 없습니다. 그 정도를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부끄러운 수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편향성이 염려스러울 정도입니다.

과거 타국의 문화재를 깡그리 침탈해온 나라로는 프랑스, 영국, 스페인, 벨기에, 독일, 일본, 미국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 나라의 공통점은 이른바 제국주의 국가로 식민지 수탈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들 국가의 식민지였던 나라들은 자국에 문화재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텅 빈 상태’입니다.

그 실상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있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의 큰 나라 나이지리아는 1960년 영국 식민 통치로부터 독립한 후 여느 국가처럼 국립박물관을 개관하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국립박물관에 전시할 문화재를 챙기려 하자 그에 걸맞은 자료가 없었다고 합니다. 식민 침탈의 참담한 결과입니다.

필자가 1989년 나이지리아 옛 수도 라고스(Lagos)를 방문해 국립박물관을 찾아갔을 때 일이 생각납니다. 박물관 규모가 생각보다 왜소할 뿐만 아니라, 전시된 유물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나이지리아는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 대륙의 종주국임을 자처하는 자존심 강한 나라인데도 말입니다. 

사진: 뛰어난 아프리카 조형예술품을 본다.
출처: 《Jacques Kerchache, Jean-Louis Paudrat, Lucien Stéphan, ART OF AFRICA, Harry N. Abrams, Inc., Publishers, 1993》

무엇보다 나이지리아의 민속 목각 예술품은 아프리카 예술문화를 대표합니다. 그만큼 세계 미술계가 주목하고 있는 민속예술품입니다.

그런데 정작 자국의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민속 예술품은 아주 초라했습니다. 박물관에는 전임 대통령이 정적에 의해 피살당할 당시 유혈의 흔적이 낭자한 차량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민속예술품’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전시 품목이라 의아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근래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는 모두 식민 통치의 결과라고 합니다. 식민지 시절, 식민 제국이 민속 문화재를 싹쓸이하다시피 가져간 바람에 신생국가의 신축 박물관에 전시할 품목이 남아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급기야 영국에서, 프랑스에서, 벨기에에서 대여 형식으로 예술품을 빌려와야 했다고 합니다. 이 소식이 유럽 지식인 사회에 알려지자 식민 시대의 약탈문화재 반환 운동으로 이어지기도 하였습니다.

필자는 약탈문화재 반환은 양과 질 면에서 크게 기대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런던, 파리, 베를린, 뉴욕의 박물관과 미술관이 ‘산더미’처럼 수장하고 있는 수려한 아프리카 민속예술품을 생각하면, ‘鳥足之血(조족지혈, 새발의 피)’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각날 뿐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뒤늦게 타국의 문화재를 국내로 반입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침탈이 아니라 사들이는 방법은 아직도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이 외국의 문화재를 한 점 한 점 구매해 수집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볼 만합니다. 국가는 그렇게 구매하여 들어오는 문화예술품에는 물납(物納)제도를 활용하여, 권장하면 더욱 뜻이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가 중동 지역에 진출해 수많은 대형 공사를 맡아온 지 이미 반세기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중동 또는 아랍 문화 관련 미술·박물관 하나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부끄럽게 여겨야 할 사항입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공사 대금’만 챙긴 결과라는 걸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문화국답지 않은 면모입니다.

우리 사회는 유럽이나 미국 문화예술을 제외하곤, 다른 대륙, 다른 문화권에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네 ‘문화편식증’의 한 단면을 드러내는가 싶어 마음이 무겁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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