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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온 셰익스피어 초상화
권오숙 2021년 05월 26일 (수) 00:00:05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요즘 “시대의 얼굴, 셰익스피어에서 에드 시런까지”라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이 전시는 영국 런던에 있는 국립초상화미술관(National Portrait Gallery)의 소장품들 중 76점을 선별 전시하고 있습니다. 국립초상화미술관이 2023년까지 리모델링 중이어서 그 사이 소장품들이 해외 나들이를 하고 있는 듯합니다. 아무튼 국내 미술 애호가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필자도 6년 전 영국을 방문했을 때 대영박물관, 테이트 미술관 등을 방문하고 너무 지쳐 결국 들르지 못했던 이 미술관의 컬렉션이 국내에서 전시된다는 소식에 자못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1856년에 설립된 국립초상화미술관은 세계 최초이자 최고 규모의 초상화 미술관입니다. 16세기부터 현재까지 5백 년 역사 속 유명 인물들의 초상화, 드로잉, 조각, 사진 등 총 보유 작품이 20만여 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미술관이 설립되고 가장 먼저 입수한 작품이 바로 셰익스피어의 초상화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 전시회 소식에 필자의 마음이 설레었던 또 다른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왕이나 여왕 등 최고 권력자가 아니라 작가의 초상화가 제1호 소장품이었다는 사실이 다소 의아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 미술관 건립에 기여한 세 사람 중 한 명이 “셰익스피어를 인도 제국과도 바꾸지 않겠다”(실제 칼라일은 인도 제국은 언젠가 사라지고 셰익스피어는 영원할 테니, 인도 제국은 없어도 되지만 셰익스피어는 없어서는 안된다고 말함)는 유명한 주장을 했던 토마스 칼라일임을 고려해 볼 때 셰익스피어 초상화가 1호 수집품이었다는 사실이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아울러 역시 셰익스피어는 영국이 내세우는 최고 문화 아이콘임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작품을 소유했던 3대 찬도스 공작(James Brydges)의 이름을 따서 '찬도스 초상화'로 알려져 있는 이 초상화는 셰익스피어 생전에 그려졌다고 알려진 유일한 초상화입니다. 당대 도색공 및 채색공 조합의 일원이었던 존 테일러가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셰익스피어가 작가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던 36세에서 46세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이것이 실제 셰익스피어를 그린 초상화인지는 입증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초상화는 셰익스피어 사후인 1623년에 출간된 최초의 셰익스피어 전집인 제1이절판에 실린 초상화의 기초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제1이절판의 초상화를 마틴 드루샤우트가 그려서 드루샤우트 초상화라고 하는데 셰익스피어가 사망했을 때 드루샤우트가 15세였고, 이 삽화를 의뢰받은 것은 21세 때였기 때문에 찬도스 초상화를 비롯한 이전의 초상화들을 참조해서 그렸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좌) 찬도스 초상화 (우) 제1이절판에 실린 드루샤우트 초상화

미술사학자인 탄야 쿠퍼가 2006년부터 3년 반 동안 셰익스피어의 초상화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여 『셰익스피어를 찾아서』(Searching for Shakespeare) 라는 저서를 발간했습니다. 그 책에서 그녀는 찬도스 초상화가 셰익스피어를 대표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림의 진위는 증명할 수 없다고 인정했습니다.


국립초상화미술관이 설립된 뒤 40년 동안 이 미술관에서 셰익스피어 초상화라고 구입한 것만 60개 이상이었다고 합니다. 아마 사후에 셰익스피어의 명성이 점점 높아짐에 따라 많은 화가들이 앞다투어 그를 묘사하는 초상화를 그렸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초상화들 중 정말 셰익스피어를 그린 것이라고 입증된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대부분 이전 그림을 기반으로 재창조한 것이거나 화가 자신의 상상력에 의존하여 그린 것들이었습니다. 진짜 셰익스피어 초상화를 둘러싼 논란은 셰익스피어 가짜설만큼이나 시끄럽습니다. 셰익스피어 개인은 참 여러모로 신비에 싸여 있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로 인해서인지 아니면 이른 시간이어서였는지 전시장은 한산했습니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한쪽 벽 전체를 뒤덮은 대형 셰익스피어 초상화가 반겨주었습니다. 전시는 ‘명성’, ‘권력’, ‘사랑과 상실’, ‘혁신’, ‘정체성과 자화상’이라는 5개의 주제로 작품을 분류하고 있었습니다. 그중 제1주제인 ‘명성’ 파트의 첫 작품이 셰익스피어 초상화였습니다. 오디오로 들은 작품 해설은 “명성이라는 말과 이만큼 어울리는 사람이 또 있을까요?”라는 질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셰익스피어 관련 책에서 수도 없이 보았고 필자의 강의 ppt에서 수도 없이 사용하여 너무 친근한 이 초상화가 전시장에서 보니 좀 달리 느껴졌습니다. 그동안 너무 익숙해서 간과한 탓일까요? 아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나 헨리 8세, 스튜어트 왕가의 제임스 왕자 등 권력자들의 화려한 초상화들과 한자리에 있어서였을까요? 그의 초상화는 너무 수수하다 못해 초라하다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에 뒤이어 생전에는 왕이나 여왕에 비해 한없이 초라한 삶을 살았던 일개 문인이 400여 년이 지난 지금에는 그 어떤 군주보다 찬란한 영광을 누리는 것을 보며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진부한 경구가 진리임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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