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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정신건강이 더 걱정스럽다
황경춘 2021년 05월 25일 (화) 00:00:03

긴 세월 살아오면서 딱히 몇 살 될 때까지 살아보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저 슬하에 있는 어린 아이들이 장성하여 독립할 때까지는 살아야지 하는 막연한 생각만 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90대 후반이 되었습니다.

어려웠던 세월도 있었습니다. 옛날에도 아이 여섯은 대식구였습니다. 이제 그 아이들은 다 대학을 나오고 독립하였습니다. 그 사이 한국인의 평균수명도 늘어나고 ‘인생 50’이라는 말 대신 ‘100세 인생’이라는 새 단어가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새 욕심이 생겼습니다. 이왕이면 나도 2~3년 더 살아 100세를 채워보자는 것입니다.

3~4년 전부터 척추관협착증으로 거동이 불편해져 휠체어에 의지하는 신세가 되어 혼자서는 외출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지병인 신부전으로 병원 신세를 지면서도 정신 상태는 같은 나이 노인들보다는 좋은 편이라고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작년부터는 전 세계적인 코로나 소동으로 어차피 외부 활동이 제한되니 집 안에서만 생활하는 데 큰 이화감은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금년 들면서 제 몸에 약간의 이상이 생기는 것을 감지하며 당황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몸의 순발력뿐 아니라 머리의 움직임이 현저히 둔화된 것을 경험할 때가 많아졌습니다. 그뿐 아니라, 과거에도 짧은 기간 몇 번 경험한 불면증이 이젠 상당히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30년 가까이 계속해 온 생활 스케줄이 혼돈을 빚게 되었습니다. 저녁 10시 반 취침하여 아침 6시에 일어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하룻밤에 두세 시간밖에 자지 못하는 날도 있게 되었습니다.

젊었을 때 기억력은 좋은 편이었습니다. 지금도 일제강점 시 초등학교에서 운동회 때 부른 노래를 외울 정도로 옛일은 많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에 반해 최근 사실에 관해 순발력이 아주 둔해지거나, 지적당하고 나서도 생각해 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생길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의 동네 이름을 들어도 그곳이 강남인지 강북인지 생각하는 데 좀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3개월에 한 번씩 가는 병원에서 조제해 주는 약을 하루에 다섯 번 복용하는데, 주로 두 딸아이가 전담하여 순서나 수량에 착오가 없도록 감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방금 전에 먹은 사실을 잊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서재 앞 벽에 걸린 달력의 날짜를 표시하는 빨간 테를 매일 아침 한 번씩 움직여야 하는데, 이것을 2~3일 잊고 지낼 만큼 시간 공간에 관한 관심도 낮아지고, 수면 부족으로 머리가 몽롱한 채 오전 시간을 보낼 때도 있습니다.

제 친구 중 노년에 치매에 희생되어 비참하게 인생을 마감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가정이나 병원에서 요양 중인 초기에는 병문안도 할 수 있었지만, 증세가 심해지면 아무리 친했던 친구의 가족이라도 환자와의 면회를 꺼려 결국 다시는 만나지 못하고 영영 이별한 예도 있었습니다. 요즘 코로나 환자 중 가족이나 친척과 면회 한 번 못 하고 영원히 이별하게 되는 중환자와 비슷하게 외로운 인생의 마지막 길을 경험하는 것이 치매 환자입니다. 이러한 비참한 인생의 최후만은 피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며 살아왔습니다.

몇 년 전 집사람이 떠난 뒤부터 홀로 살던 넷째 딸과 같이 살게 되었는데, 그녀가 직장에 출근한 후 요양보호사가 일하는 3시간 외에는 혼자 있는 시간입니다. 독서, 컴퓨터 일, 가벼운 실내 운동 등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녁은 아이들이 교대로 와 식사도 같이 하고 환담도 하고 갑니다. 제 건강상태가-특히 정신건강이-우선 목표로 하는 앞으로 2~3년을 견뎌낼지 걱정입니다.

이 나이에 죽음을 두려워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남은 가족들에게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남기는 일이 없이 조용하게 생을 마감했으면 하는 간절한 생각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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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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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형 (203.XXX.XXX.22)
선생님의 자그마한 바램이 꼭 이루어지기를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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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7 15:50:35
0 0
selosolgil (114.XXX.XXX.38)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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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8 16:49:10
0 0
goldwell (175.XXX.XXX.20)
선생님 글 늦게나마 잘 읽었습니다. 글 읽고나니 그와같은 전철을 자신도 밟고 있는 것을 느껴 실감이 납니다. 말씀대로 주변에 폐끼치는 일 없이 생을 마감할 수 있다면 그 이상 행복이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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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7 10:07:05
0 0
selosolgil (114.XXX.XXX.38)
예, 그렇게 이 샘 마감하는 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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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8 16:56:21
0 0
정재화 (49.XXX.XXX.215)
2~3년은 거뜬하게~~ , 100세도 충분히 건강하게 맞이하실겁니다. 오래오래 좋은 글, 많이 들려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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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5 11:52:00
0 0
selosolgil (114.XXX.XXX.38)
감사합니다.
건강에 더욱 조심하여
성원에 보답토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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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6 17:23:47
0 0
청평 (211.XXX.XXX.117)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오래오래 더 건강하게 지내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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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5 08:47:19
0 0
selosolgil (114.XXX.XXX.38)
고맙습니다.
더욱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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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6 17:20:05
0 0
임성빈 (203.XXX.XXX.45)
존경합니다.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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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5 08:21:16
0 0
selosolgil (114.XXX.XXX.38)
졸문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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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6 17:16:32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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