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號를 바꾼다고 시장 되나
김홍묵 2021년 04월 28일 (수) 00:00:07

“내가 호(號)를 하나 지었는데, 앞으로 이 호로 불러주게.”
“무어라고 호를 지었나?”
“평범한 건데 ‘여우(如愚; 같을 여, 어리석을 우)’라네.”
“그거 참 겸손하고 부르기도 좋은 아호(雅號)군. 축하하네.”
그날 이후 친구들이 “여우야” “여우야” 불러대는 통에 如愚는 몹시 언짢은 표정으로 난 여우[狐]가 아니라고 불평했습니다.
“여우를 여우라고 불렀는데 싫다니 그럼 이 아호는 어떤가?”
“뭔데?”
“불여우(不如愚).”……“?”

40여 년 전에 들은 우스개입니다.
민주당 안민석 국회의원은 최근 "도올(檮杌) 김용옥(金容沃) 선생님께서 보국(輔國)이라는 호를 선물하셨다"고 자랑했습니다. 동학(東學) 정신인 보국안민(輔國安民)을 실천하라는 뜻으로.
이보다 앞서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부산 시장 보궐선거에 나섰던 김영춘 후보(민주당)는 자신의 호를 가덕(加德)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출마 선언과 함께 밝힌 ‘가덕’은 끝내 민심이반을 뒤집을 만한 덕이 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가덕(假德) 아니면 감덕(減德)이 되었습니다.
호를 바꿨든 말든 부산 시민은 급조된 특별법에 따라 신공항 바람을 타게 되었습니다. 미래의 나라 걱정보다 코앞의 선거에 다급해진 야당 의원들도 신공항 건설을 들고 나섰으니까.

오(吳)씨 성을 가진 어떤 사람이 양반자랑 끝에 “우리 조상 중 가장 유명한 어른이 오성대감”이라고 자랑했다고 합니다. (오바마 대통령을 오 대통령이라고 하듯이.)
오성(鼇城; 큰 바다거북 오, 재 성)은 조선 선조~광해군 시절 도승지·병조판서·영의정 등을 지낸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의 별호입니다. 1618년 인목대비 폐모론(廢母論)에 반대하다 함경도 북청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졸(卒)했습니다. 귀양 길에 그가 남긴 시를 읽은 광해군은 눈물을 뿌렸다고 합니다.

철령 높은 봉에 쉬어 넘는 저 구름아
고신(孤臣) 원루(冤淚)를 비 삼아 띄웠다가
님 계신 구중심처에 뿌려 본들 어떠리

호는 이름이나 자(字)와 달리 아랫사람도 거리낌 없이 부를 수 있는 호칭입니다. 서재·정자·별장·주거지·출생지 등에 연유해 지은 일민(逸民 학문·덕행이 있으면서도 세상에 나서지 않고 파묻혀 지내는 사람)들의 아호·당호(堂號)가 그렇습니다. 사후에 받는 시호(諡號)와 별호(別號)·택호(宅號)·법명(法名)도 포함됩니다.
호에는 부끄럽지 않은 이름을 남기려는 자신의 염원과, 선대의 삶을 기리는 후손의 사숙(私淑)이 담겨 있습니다. 장난 삼아 다른 명칭을 빗대 부르거나, 이욕을 붙따르는 정치적 목적으로 호를 짓는 일은 명예를 지킨다는 작호(作號) 본연의 목적과 사뭇 어긋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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