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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색 만년필의 매력
박종진 2021년 04월 09일 (금) 00:39:05

당신의 컬러는? 심리테스트도 아니고 면접조사도 아닙니다. 저는 노랑과 초록입니다. 이파리가 돋아난 개나리를 생각하셨다면 땡입니다. 저랑 가장 친한 친구는 빨강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보라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검정일 겁니다.

실용적인 만년필이 등장한 지 약 30년 흐른 1921년, 지금으로부터 딱 100년 전 파커는 빨간색 몸체에 살짝 검은색으로 액센트를 준 ‘듀오폴드’를 출시하였는데, 이 만년필은 대히트를 쳤습니다. 그렇다면 그전엔 붉은 색 계열의 만년필이 없었을까요? 있었지만 검정색의 곁다리였습니다. 초창기 만년필들은 천연고무에 황을 섞어 만든 하드러버(hard rubber), 우리말로는 경화고무로 불리는 재질로 만들었는데 이 재질의 컬러는 화려하지도 다양하지도 않았습니다. 당시 컬러는 만년필을 고르는데 중요한 기준이 아니었고 대부분은 으레 검정색 만년필을 선택했습니다. 파커는 이런 관성(慣性)이 바뀔 때라고 생각했고 대대적으로 마케팅하였고, 이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파커의 성공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때까지 만년필을 선택하는 중요 항목은 바로 써지고, 품질 좋은 펜촉, 잉크를 편리하게 충전하는 방법, 잉크가 새지 않는 뚜껑 등 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당시 압도적 1등이었던 워터맨조차 1923년 빨강과 검정이 교차하는 리플러버(Ripple rubber)를 출시하였고, 좀 더 공격적인 셰퍼는 1924년 플라스틱으로 빨강의 보색(補色)인 초록의 제이드(jade)를 출시하여 만년필 세계는 불꽃 튀는 컬러의 전쟁이 시작되고 1927년엔 파랑과 노랑까지 참전(參戰)하게 됩니다.

1930년대 초반엔 1920년대 후반에 등장한 검정과 은백색이 혼합된 펄 앤 블랙(pearl and black)으로 시작된 대리석 비슷한 마블(marble) 문양으로 경쟁하였고, 중반부터는 빨강, 파랑, 초록의 바탕에 밝고 가는 가로줄 또는 세로줄이 촘촘하게 들어간 스트라이프(stripe) 만년필들이 유행했습니다. 1940년대~50년대에도 컬러의 전쟁은 계속되었습니다. 그 끝은 약 40년이 흐른 1963년에 뚜껑과 몸통 전체가 금속 만년필인 파커75가 등장하고 불멸의 라이벌인 셰퍼가 역시 금속 만년필로 대응해 컬러 전쟁은 끝이 나게 됩니다.

그렇담 까맣게 잊고 있던 애초부터 있던 검정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검정색 만년필은 계속 생산되고 있었습니다. 점잖고, 신뢰감과 안정감을 주는 것 때문에 스테디셀러처럼 어느 회사의 것이나 꾸준한 인기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아주 중요한 사실은 무엇보다도 검정은 그 어떤 색보다 금(gold)과 잘 어울린다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만년필의 펜촉은 금이란 점에서 검은색 만년필은 마치 운명처럼 끌리게 되어 있는 것이지요. 그럼 검정과 골드 조합을 가장 잘 이끌어 낸 만년필은 어떤 것일까요?

왼쪽부터 파커 Plexor, 워터맨 유리카트리지, 몽블랑 149
쉐퍼 밸런스, 파커 듀오폴드, 쉐퍼 플랫탑, 워터맨 14

답을 잠시 미루고 장님이 코끼리 설명하듯 순서대로 하나하나 말씀드리면 우선 손 안에 꽉 차는 대형이 되어야합니다. 두 번째 광택이 있어야 합니다. 숯덩이 같은 검정은 제외입니다. 세 번째 위와 아래가 가늘어지는 참치처럼 유선형이어야 합니다. 네 번째 당연하지만 펜촉은 커야 합니다. 답은 이 모든 조건을 다 갖고 있는 1952년에 첫선을 보인 현존 최장수 모델인 몽블랑 149입니다. 최장수엔 이유가 있는 법이지요. 그리고 위 조건 하나라도 부족할 경우 신기하게도 덜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파커 듀오폴드(사진 왼쪽 다섯 번째)입니다. 같은 파커사 유선형인 Plexor(사진 왼쪽 첫 번째)와 비교하면 덜 아름답습니다. 덜 아름다운 것은 만년필 세계에서 거래되는 가격으로 바로 알 수 있는데, 실제로 검정 듀오폴드는 출고 당시 정가는 같지만 옥션 등에서 거래 다른 색의 듀오폴드 보다 싸게 거래되고 있습니다.예를 하나 더 들면
사진엔 없지만 듀오폴드와 1987년 생 동갑인 펠리칸 M800도 녹색 보다는 검정이 낮은 가격에 거래되는데 펠리칸 M800 역시 유선형이 아닙니다.

​향수 샤넬 넘버 5로 유명 프랑스 명품회사 샤넬사의 창업자 샤넬(Gabrille Chanel 1883~1971)이 말한 것처럼 “검정색이야말로 모든 색을 품고 있으니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제가 덧붙이면 " 그 검은색에 골드가 더해지면 갖고 싶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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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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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빈 (203.XXX.XXX.45)
검정색이야 말로 정말 매력적이고 품격있으면서 섹시(?)한 칼라지요.
게다가 금장을 더한다면 소장님 말씀대로 "갖고싶다"입니다.
근 1998년부터 쓰고 있는 봉블랑 마이스터스튁 149...
자부심이 느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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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2 08:4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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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211.XXX.XXX.243)
1998년이면 정말 오래 쓰셨네요.^^ 정말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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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3 08:29:29
0 0
Nerie (175.XXX.XXX.208)
말씀하신 검은색이 날렵하고 아름다워 보이기에 현대의 격식있는 복장에도 애용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고금동서 금을 좋아하는 인류의 본능과도 잘 맞아서 오래 사랑받는군요. 오욕칠정을 흡수하는 마력이 검은색에 있는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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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9 12:4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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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175.XXX.XXX.42)
한마디로 패션과 본능의 결합이군요.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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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0 08: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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뺙뺙이 (218.XXX.XXX.232)
무난한 것이야 말로 질리지 않고 오랫동안 사랑 받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검정색이 오랜 시간 사랑 받는 것이구요.
오늘도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하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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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9 10: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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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175.XXX.XXX.42)
누구가 그러더군요 검정옷은 장례식장과 예식장 어디나 갈 수 있는 프리패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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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0 08: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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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준 (223.XXX.XXX.146)
만년필의 색이 다양해지고있는 것만 알고있었는데 소장님 덕분에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너무나 재미있고 유익한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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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9 08: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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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175.XXX.XXX.42)
수많은 색들이 뜨고 지고 했지만 검정은 계속 그 자리를 지켰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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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0 08: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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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토 (1.XXX.XXX.252)
글을 읽고나니 평소에는 무심했던 검정색 만년필이 달리 보이는것 같습니다. 항상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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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9 08:03:35
0 0
박종진 (175.XXX.XXX.42)
골드는 그 무심 속에서 더 빛나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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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0 08: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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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현 (106.XXX.XXX.239)
마치 짙은 색 정장에 넥타이나 브로치로 포인트를 준 멋진 사람을 보는 느낌입니다. 시대를 초월하는 기본을 보는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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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9 07:22:06
0 0
박종진 (175.XXX.XXX.42)
적절한 표현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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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0 08:12:01
0 0
단석 (175.XXX.XXX.94)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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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9 06:04:11
0 0
박종진 (175.XXX.XXX.42)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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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0 08:10:18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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