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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말로 하자"-수평어 클럽
정숭호 2021년 03월 17일 (수) 01:58:20

​존칭이 민주화되면 한국이 더 민주화된다고 믿습니다.

예를 들면,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 문재인’이라고 쓰자는 겁니다. 또 ‘대통령 문재인’이라고 쓴 후에는 ‘문 대통령’이라고 쓰지 말고 이름만 석 자 쓰자는 겁니다. 직함은 직함일 뿐인데 이름 뒤에 직함을 붙이게 하면 사람보다는 직함을, 존경하기 싫은 사람에게 존경을 표하라는 비민주적 강요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완장에 경례를 해야 한다면 민주 사회가 아니지요. 계급으로 움직이는 군대는 계급이나 직함으로 불러야겠지만 사회는 군대가 아니니까요.

한국에서 존칭이 비민주화된 건 언론 탓이 큽니다. 한국 언론은 거의가 직함이 있는 사람은 이름 뒤에 직함을 붙이고 그런 게 없는 사람은 이름 석 자 뒤에 ‘씨’자만 붙여 표기하고 있습니다. 직함 없는 사람 기분 나쁘지요. 직함 있는 사람 앞에 서면 자기가 못난 사람 같다는 느낌도 들고 …. 하지만 이것도 일관성이 없어요. 얼마 전 JTBC와 MBC는 대법원 확정 판결을 보도하면서 “전직 대통령 이명박 씨”라고 호칭했습니다. 형이 확정된 죄인이라고 해서 이렇게 표기한 모양인데, 다른 신문 방송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라고 썼더라고요. 언론은 취향과 성향대로 존칭을 쓰고 있는 겁니다.

​존칭을 민주화하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직함 뒤에 이름을 붙여 쓰면 직함 없는 사람들은 직함 없음에 주눅 들지 않을 것이고, 직함보다는 사람 됨됨이를 먼저 보게 될 겁니다. 나는 존칭 민주화라며, 예를 들어, ‘대통령 문재인 씨’라고 쓰는 것도 반대합니다. 젊은이나 학생, 어린이에게는 ‘씨’ 대신 군(君), 양(孃)이 호칭일 텐데 몇 살부터 ‘씨’를 붙이고, 몇 살까지 군이나 양을 붙여야 할지 애매모호하기 때문입니다.

​존칭이 민주화되면 국민들의 자존감과 행복지수가 올라갈 겁니다. 예를 들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아니라 ‘법무부 장관 추미애’라고 쓰는 게 "공무원은 아무리 높아도 나라와 국민의 심부름꾼-‘공복(公僕)’일 뿐"이라는 사실, "내가 그들의 지시를 받는 게 아니라 그들을 부리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효과가 클 거라는 말입니다. 국회의원도 직함 뒤에 이름을 넣어서 부르면, 예를 들어, ‘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아니라 ‘민주당 의원 박주민’이라고 쓰고 부르면 자기네가 국민보다 잘나서 의원이 됐다는 생각을 덜 하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 나는 이런 생각을 알리기 위해 칼럼에서는 직함 뒤에 이름을 쓰고 있는데, 어떤 매체가 내 의견도 묻지 않고 이름 뒤에 직함을 넣는 걸로 바꾸기에 그 신문 책임자들이 관존민비 사고에서 못 벗어났구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호칭을 민주화해야 한다는 나의 믿음은 ‘존댓말’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혔습니다. 호칭이 민주화되면 존댓말을 없애는 '언어 민주화'가 그다음일 텐데 내가 좀 배짱이 있기로서니 그것까지 하자고 할 ‘깡’은 없었습니다.

​잠깐, 2002년 월드컵 이야기 한 토막하겠습니다. 당시 대표팀 감독 히딩크는 '축구장 안에서는 선수 모두 평등하다는 생각을 가져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그게 안 된다. 존댓말 때문이다. 패스하는 순간에도 선배 눈치를 보고, 존댓말을 주고받으니 효율이 떨어진다. 우선 선수들끼리 반말을 하도록 해 필요치 않은 위계질서를 없애고 경기력을 끌어 올리겠다'고 마음먹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 결과가 월드컵 4강 진출로 나타났음은 널리 알려졌지요. 대표팀 주장 홍명보에게 새카만 후배 김남일이 식당에서 “야, 명보야 밥 먹자!”고 해 '명보' 얼굴이 굳어졌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히딩크는 호칭 민주화와 언어 민주화를 동시에 추진해 성공했지만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히딩크의 실험은 성공했으나 축구장 안의 작은 태풍이었을 뿐이었습니다.

​존칭 민주화의 추진동력이 존댓말이라는 장벽에 막혀 거의 꺼지려는 판에 응원군이 나타났습니다. ‘수평어 모임’입니다. 수평어는 ‘반말’입니다. 이름 나이 직업 성별 주소 … 이런 것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반말로 소통하자"는 사람들의 모임이 수평어 모임입니다. 후배가 반말로 선배들에게 할 소리, 안 할 소리 다 하면서 스트레스를 푼다는 ‘야자 타임’과는 다릅니다. 수평어 모임 회원은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고, 야자 타임에서처럼 반말을 쓰지만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예의 있는’ 반말이라고 합니다. 존댓말로 소통하는 수평어 클럽은 없습니다. 수직적 구조인 직장과 조직에서 존칭과 존댓말 사용으로 인한 '비민주적'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이겠지요.

​수평어 모임을 키워드로 검색했더니 학생들과 반말을 주고받는 교사를 소개한 동영상도 있더군요. 그렇게 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존댓말은 나에게 없는 권위를 있는 것처럼 만들어주는 것 같아서"라는 식으로 대답했습니다. 학생들과 서로 이름을 부르고 있는 이 교사가 존칭 민주화와 언어 민주화를 동시에 실현한 히딩크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여러 개가 활동 중인 수평어 클럽은 최근 새로운 SNS로 주목받는 ‘클럽하우스(클하)’ 때문에 더 늘어날 것 같습니다. 수평어로 소통하는 ‘클하’가 많기 때문입니다. 유명 정치인과 재벌회장, 연예인들이 주도하는 클하의 회원들은 '범접'이 어렵다고 생각했던 '높은' 사람들을 이름으로 부르고 반말로 대화하는 그 자체가 클하의 매력이기도 하다고 합니다. 물론 여기서는 예의 있는 반말을 하지 않으면 퇴출됩니다. 클하든 수평어 클럽이든, 수평어를 쓰는 사람이 늘어나면 일반적인 대화도 예의 있게 나누는 사람이 늘어날 것 같습니다. 쌍소리와 욕이 수시로 튀어나오는 저급 대화가 줄어들 거라는 기대입니다.

​이제 한국이 완전 민주화될 날 머지않습니다. 언어 민주화는 수평어 클럽에 맡기고 나는 존칭 민주화를 필생의 사업으로 삼을까 합니다. 여기까지 읽으셨으면 수평어와 클하에 대한 짧은 칼럼 한 편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며칠 전 한국일보에 실린 겁니다. 클릭해서 읽어보세요.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31113450003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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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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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 (121.XXX.XXX.95)
말의 민주화가 모든 민주화의 종결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말으 수평화엣 적극 찬성합니다. 그런데 반말이 아니라 모두 높임말로 수평화시키는 게 상호 존중이나 인권 신장에 좋지 않을가 ㅅㅍ습니다. 이건 제 주장이 아니라 100년 전 방정환, 김기전을 비롯한 어린이 해방 운동가 분들 주장이시고 그러헥실천하셨습니다. 저도 30여 년 교직에 있으면서 어린이들한테 높임말을 쓰면서 실천해보았고 지금도 가능한 다른 분들한테 높임말을 쓰기를 실천하고 있습니다.반말로 수평화하자는 모임에 가서는 반말로 합니다만 두가지를 다 해보니반말 평준화보다 높임말평준화가 좋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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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7 10:5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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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ut (58.XXX.XXX.166)
말의 민주화를 지지하신다니 내가 오늘 글 소재를 잘 잡은 것 같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나는 반말로 민주화를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고려대 국문과 신지영 교수가 ytn에 나와서 한 말이 내 생각과 많이 겹쳐 여기 옮기겠습니다.
◆ 신지영: 존댓말이 좋을지 반말이 좋을지 많은 사람에게 물어봅니다. 존댓말 반말에 대한 의식이 별로 없을 정도로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에요. 재미있는 건 나이가 어린 쪽은 반말로, 나이가 있는 쪽은 존댓말로 통일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합니다. 장단점이 있는데요. 저는 조금 더 평등해지고 말하기가 편해지기 위해선 반말로 통일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른들이 듣기 싫으시겠죠. 저는 저에게 반말을 해도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반말을 하는지 들어보면, 가깝고 친한 사람들이거든요. 속내를 다 이야기 하잖아요. 반말은 그런 기능이 있죠.

요건 한겨레 기사의 일부분입니다.
<“저기, 혹시 ○○아파트 205동에 살지 않아요?” 연하인 한 남성의 질문에 지나가던 여성이 답했다. “네, 그런데요. 왜요?” 그 남성은 “저도 같은 동에 사는데 괜찮으면 아침에 학교 같이 다니실래요?”라고 정중하게 물었다.
이 대화에 등장하는 남성과 여성은 각각 초등학교 4, 5학년이다. 서울 잠실에 사는 여학생 어머니 김은솔(가명)씨가 딸을 데리고 하교하는 길에 일어난 일이라며 들려준 이야기다. 김씨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존댓말 사용을 권한다고 한다. 김씨는 “예전 우리 어릴 때는 보통 ‘야’ ‘너’ 하며 반말하는 게 일상이었는데, 아이들이 서로 존댓말을 써서 놀랐다”고 말했다.>

이런 아이들, 애 늙은이 같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이러고 다닌다면 세상이 우중충해질 것 같다는 생각(지극히 개인적인)이 떠올라서 여기에 붙였습니다. 다시 한 번, 제 글에 의견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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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7 15:5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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