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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하며, 감시당하며, 분을 삭이는 사회
고영회 2021년 03월 10일 (수) 00:01:41

1.
예전에 어느 방송에 ‘한적한 시골길에 건널목을 만들고 신호등을 달고, 빨간 불일 때 자동차가 서서 기다렸다가 가는지’를 지켜보는 방송물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신호를 잘 지키는 운전자가 있으면 달려 나가 ‘당신 참 좋은 운전자’라고 치겨세워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부분 신호를 지키지 않고 지나는데, 꾹 참고 지키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니 본받으라는 뜻이겠습니다. 교통 신호등을 다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규칙을 지키는지를 시험하는 도구가 아니라, 안전하게 운전하게 하는 수단입니다. 차도 사람도 별로 다니지 않는 곳에 신호등을 달아 저어 멀리서 감시한다, 이게 교통 안전에 도움이 될까요? 그것보다는 깜박등을 달아주는 게 통행과 안전에 도움이 되겠지요. 만약, 방송제작진 대신에 감시장치가 지키고 있었다면 어땠을까를 상상하니 오싹해집니다.

2.
요즘에는 교통규칙을 위반하는지는 주로 기계장치가 잡아내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이른바 카파라치제도가 있었습니다. 시민이 교통규칙을 위반하는 것을 신고하면 포상금을 주는 것이었죠. 이게 돈벌이가 된다 하여, 증거를 모으는 방법을 가르치는 학원도 번창했습니다. 서초구청 근처 고속도로가 시작되는 언덕 위에는 고성능 사진기를 지닌 사람들이 진을 치고 먹이를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교통 위반 신고제가 교통안전을 위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일자리 만들기였을까요?

3.
최근에 일하러 5명이 외부로 움직인 적이 있었습니다. 점심때가 되어 한 음식점에 들어서면서 5명이라 하니, 주인이 기겁하듯이 손을 절레절레 흔들면서 나가라 합니다. 2명, 3명이 나눠 앉겠다고 했더니, 여기저기 자리가 충분한데도 안 된다고 합니다. 우리 5명이 들어오는 것을 여기 있는 사람들이 봤다면서(그런데도 자리에 앉히면 신고할 것이고, 그러면 나는 큰일이다. 이런 뜻이겠지요) 나가라 합니다. 그렇게 쫓겨 나왔습니다.
5명이 모이지 말라는 기준을 정한 목적은 무엇입니까?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하는 것을 막자는 목적이겠지요. 그렇다면 기준은 목적에 맞게 합리성 있게 정하고, 그걸 지키야겠지요.
저 주인의 몸짓은 방역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신고당해서 받을 불이익에 몸서리치는 모습입니다. 음식점에서 방역은 한 자리에 4명까지 앉게 하고, 자리끼리는 전염을 막을 만큼 거리를 두면 되겠지요. 방역보다는 신고하는 것이 목적이 된 현실에 더 몸서리쳐집니다.

4.
제가 사는 아파트는 한 동으로, 지하 1층과 지하 2층에 주차장이 있습니다. 각 층에는 장애인용으로 표시된 주차장이 있습니다. 최근 저는 구청에서 ‘장애인 등 편의법’에서 정한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며 과태료 고지서를 받았습니다. 구청은 어느 주민의 신고를 받고 주차위반임을 확인하고 과태료를 매겼다고 합니다.
지하 1층 주차장이 거의 찬 뒤에 지하 2층으로 내려가므로 지하 2층 주차장은 대개 여유롭습니다. 그리고 장애인용 주차장은 승강기 바로 앞에 있습니다. 지하 2층 장애인용 주차 자리는 대개 비어있고, 주민들은 짐이 있을 때, 급한 일이 있을 때 이따금 그 자리에 차를 세우기도 했습니다.
이번 과태료 받은 일로 동네가 시끄러워졌습니다. 우리 동네는 50여 세대가 모여 살고, 주차장은 주민을 위한 공동 공간입니다. 장애인 편의를 위해 주차자리를 따로 만들었으니 장애인을 배려한 것이고요. 주민 자치 공간인데 구청이 나서서 과태료 고지서를 날린 사실이 참 꺼림칙합니다. 잠시 차를 세운 것이라도 법을 위반한 것이니 죄값(?)을 물어야 한다면 할 말은 없죠. 법대로 하겠다고 하면 맞습니다, 맞고요.
이렇게 신고하고, 처벌받고, 누가 신고했는지 의심하고, 그러면서 이웃끼리 반목으로 갈 우려가 많습니다. 구청은 신고를 받았을 때, 관리실로 연락하여, 그곳에 주차하지 않게 미리 막는 게 더 나은 방향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게 주민 자치 정신에 맞고요.

5.
법이나 제도는 목적에 맞게 만들고, 목적에 맞게 운용해야 합니다. 수단이 목적이 되는 순간에 그 제도는 재앙으로 바뀝니다. 우리 국민들이 머슴인 공무원에게 비싼 돈을 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좋은 제도로 밥값하라는 뜻이지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국민에게 신고하게 하고, 거기에 그 대가로 보상금을 주는 짓을 보면 참 짜증납니다. 당신들 덕분에 웃으면 살게 해달라고 하진 않겠습니다. 그래도 분을 삭이며, 또 삭이며 살아야 하는 세상으로 만들지 말아달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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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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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라지 (220.XXX.XXX.74)
몇 년 젘 심야에 경비원의 동의 하에 장애인 칸에 차를 세웠었는데 구청이 사진을 찍고 과태료를 물렸죠. 주민자치의 사적 영역에 구청이 무슨 근거로 개입하는지 가관이었습니다. 안내면 재판 건닥 해 귀찮아서 냈죠. 그렇게 주차 영역에 개입할 거라면 그 무시무시한 권력으로 주차장을 늘려 주던가요. 그런가 하면 여러 도시 곳곳에 차로를 잡아먹는 주차장들은 뭔지요. 길을 만들었으면 차가 가게 해야지 무슨 근거로 길을 주차장으로 만들었는지. 상호 모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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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1 02:35:01
0 0
고영회 (112.XXX.XXX.252)
그런 일이... 분통 터졌겠습니다!
구청은 주민 자치에 맡겨 둘 것이지...
'버드라지'는 '아우라지'와 관련 있는 말인지요?
의견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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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1 08:40:34
0 0
파티파티 (211.XXX.XXX.175)
신고 정신 발휘하면 보상금 주는 무슨무슨 파라치 세상이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제도를 잘 못 알고, 또는 고의로 잘못을 했다 해도
선도라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파라치가 용돈벌이로 보상금 받아 생활하는 세상은 없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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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0 23:27:42
0 0
고영회 (112.XXX.XXX.252)
맞습니다.
신고하게 하고, 신고한 것에 보상금 주는 제도는 없애야 합니다.
의견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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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1 08:36:36
0 0
정병용 (121.XXX.XXX.133)
지나가는 사람도없고, 한적한곳에서 신호가떨어지도록 기다리는사람이
정직한 사람이 아니고, 융통성도없고, 오히려 교통체증을 일음키는 사람
이라고 생각됩니다.
원활한 교통흐름을 위하여 서행하며 지나가느것이 오히려 옳은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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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0 10:47:00
0 0
고영회 (112.XXX.XXX.252)
지적하신대로, 바로 그 부분인데요,
차도 사람도 없는데, 그것을 신고하면 처벌 받게 돼 있죠. 실은 신호등이 잘못 설치된 것임에도요.
말씀대로, 사람이 없을 때는 천천히 지나가도 되도록 규정해야 옳다고 봅니다.
읽어 주시고, 의견 주시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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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0 15:55:36
0 0
성빈 (203.XXX.XXX.45)
법대로 하지 않으면 특혜 의혹이 있을테니 공무원들의 고충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참 거시기 한 게 공무원들의 자세(물론 그렇지 않은 공무원들도 많지만요)입니다.
국민의 세금을 월급으로 받는 사람들의 자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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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0 09:11:48
1 0
고영회 (112.XXX.XXX.252)
법을 적용할 때, 그 결과에 이르게 된 사정을 잘라버리고, 남은 사실만으로 판단하여 결정하면 곤란하죠.
읽어 주시고, 의견 주셔서 고맙습니다.
답변달기
2021-03-10 15:50:01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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