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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가 불투명한 런던과 홍콩
허찬국 2021년 03월 09일 (화) 00:00:21

시차가 8시간인 런던과 홍콩은 지리적으로 먼, 세계 굴지의 도시입니다. 그런데 두 도시의 입지는 소속 국가의 정치적 선택으로 인해 흔들리고 있고 중장기 전망도 불투명합니다.

런던과 브렉시트
영국의 런던은 유럽 각지에서 온 젊은 사람들이 넘치고, 문화·예술·교육뿐만 아니라 금융과 법률, 회계, 세무 분야 등 전문 사업서비스의 세계적 중심지입니다. 런던의 인구가 9백만 명을 조금 넘는데 유럽연합(EU) 회원국 시민인 거주자 수가 약 백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0%가 넘습니다. 그러니 런던 입장에서는 영국의 EU 탈퇴(Brexit, 브렉시트)는 그야말로 아닌 밤에 홍두깨와 같았습니다.

시발점은 2016년 국민투표였습니다. 보수당 정부가 재집권울 위해 2015년 총선에서 내세운 공약에 따라 이듬해 ‘탈퇴’와 ‘잔류’ 중 택일하는 국민투표가 시행되었습니다. 예상을 뒤엎고 ‘탈퇴’가 다수 표(51.9%)를 얻어 브렉시트가 시작되었지요. 우여곡절 끝에 영국은 2020년 1월 말 공식적으로 EU를 탈퇴했고, 탈퇴 후의 관계 정립이 되지 않아 추가적으로 합의한 1년의 이행기간도 올해 초로 끝났습니다. 런던에서는 ‘잔류’지지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국민투표 후에도 브렉시트 반대 시위가 이어졌지요.

런던의 금융업과 사업서비업은 전체 영국경제에 상당한 부가가치와 일자리를 제공했습니다. 영국의 상품 수출 규모는 우리나라보다 작지만(2019년 기준 영국 4,700억 달러, 한국 5,422억 달러), 서비스 수출은 훨씬 큽니다(영국 4,053억 달러, 한국 1,076억 달러). 사업 및 금융서비스 수출은 전체 서비스 수출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데, 이 중 금융서비스 수출의 반 이상이 유럽 대륙국들에게 제공되었습니다.

두 해 전까지 런던의 금융사들은 EU회원국들을 대상으로 자국 내에서 영업하듯 금융서비스를 제공했었죠. 그런데 브렉시트로 이제 사정이 크게 어려워졌습니다. 상대하는 국가마다 허가가 필요하고 세금 등 추가 비용이 발생합니다. 런던을 본거지로 삼았던 대형 금융사들은 이제 암스테르담, 파리 등지로 금융자산과 사무실을 옮기고 있습니다. 런던의 사업서비스 분야 위축이 불가피합니다. 런던의 불운은 그간 런던을 부러워하던 유럽 대륙 도시들에게는 호재입니다.

브렉시트가 만든 장벽은 각종 음악회의 중심지 런던의 풍경도 바꿀 전망입니다. 최근 영국 일간 가디안紙에 한 영국 피아니스트의 좀 황당한 내용의 칼럼이 게재되었습니다. 2년 전 계약되었던 공연을 위해 스페인에 24시간 체류하려는데 브렉시트로 긴급 비자 발급을 위한 비용 600파운드(약 94만 원)가 새로 추가되었다는 하소연이었습니다. 이미 공연이 무더기 취소되는 코비드-19 충격으로 어려운 음악계에 악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 저명한 영국의 음악가들이 유럽에서 과거와 같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정부에 호소하고 있다고 합니다.

홍콩과 중국의 ‘1국1체제’
홍콩은 ‘무엇이든 되는 곳’이라는 긍정, 또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한 곳입니다. 과거 이곳은 정부의 간섭이 최소일 때 경제는 번영한다는 견해의 경제학자들이 대표적인 증거로 내세울 만큼 방임적인 자유도시였습니다. 그동안 홍콩이 자국 영토이나 한시적으로 다른 체제, 즉 ‘1국2체제’를 인정하겠다던 중국이 홍콩에서 ’1국1체제‘ 수렴을 서두르는 모습입니다. 그 결과 ’자유‘가 지워진 국제자유도시 홍콩이 향후 어떤 모습일지 오리무중입니다.

영국의 식민통치는 19세기 영국이 청나라와 벌인 아편전쟁에서 이겨 홍콩 섬을 99년 간 조차(租借)받아 자유무역항을 만들며 시작되었습니다. 20세기 들어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서기까지 중국 본토의 국공내전으로 피란민이 대거 유입되며 저임 노동력이 풍부해진 것이 초기 경제 발전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무역거래 관련 서비스업, 그리고 1978년 중국이 경제개혁을 시작한 이후에는 본토에 대한 직접투자의 거점으로 역할하며 금융 등 서비스업이 발달했습니다. 특히 아시아권 국가들이 상당히 엄격하게 자본 유출입을 단속하던 시절 완전히 개방된 홍콩은 독보적으로 세계적 금융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자유로운 경제활동에 힘입어 성장한 홍콩의 2020년 1인당 소득이 4만5천 달러가 넘어 과거 이곳을 식민통치했던 영국(약 3만9천 달러)을 추월한 지 오랩니다. 하지만 제주도의 약 3분의 2 정도의 땅에 7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밀집해 있고, 빈부격차 문제도 심각한 곳이지요.

일찍부터 영국은 이곳에 영어를 사용하는 영국식 교육 및 행정제도를 도입하였고, 시간이 지나며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는 서구 민주주의 제도와 관행이 뿌리내렸습니다. 이질적 체제의 고착화는 중국이 반길 일이 아니었지요. 영국과 중국의 불협화음이 이어지다 1984년 양국은 1997년 홍콩의 주권을 이전하는 것과 홍콩을 50년 동안 특별 행정구역으로써 자치권을 행사하도록 보장하는 협정에 합의합니다.

하지만 반환 후 점점 중국의 개입이 더 노골화했고, 이제는 중국의 개입에 비판적인 언론인·시민운동가 구금과 같은 관련 뉴스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1984년 협정의 1국2체제 시한인 2047년이 아직도 멀었으나 홍콩 정치시스템의 중국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실질적으로 홍콩의 자유도시 시대는 끝났다고 보아야 합니다.

자본, 금융·사업서비스 산업의 脫홍콩이 언급되면 싱가포르가 가장 유력한 수혜자로 거론됩니다. 이미 왕성한 금융·사업서비스 산업이 있고 영국식 교육, 의료 등 정주여건이 좋은 도시국가로 평가되기 때문입니다. 더위에 약한 필자에게 싱가포르는 적도의 콘크리트 도시라는 인상이 강합니다. 지나치게 획일적이라는 평가도 있어 대부분 脫홍콩 인력과 기업의 묻지마 행선지는 아닌 듯합니다.

서울도 脫홍콩의 잠재적 수혜자이지만 아직 그런 소식이 없습니다. 우리가 배 곯아 개발에 목마른 처지는 아니지만 청년들의 일자리 부족에 대한 아쉬움이 큽니다. 脫홍콩 기업과 창업가들을 유치하는 것도 한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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