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 연재칼럼 | 황경춘 오솔길
     
이 엄동설한에 수도가 얼어붙어...
황경춘 2021년 01월 14일 (목) 00:01:24

우리 일반가정의 행복지수를 다룰 때 수도(水道)는 흔히 저평가(低評價)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번에 이 문제를 다시 생각해야 할 귀중한 경험을 했기에 소개해 드립니다.

지난주엔 몇 십 년만이라는 극심한 추위가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를 괴롭히고 곳에 따라서는 큰눈도 왔습니다. 그런 어느 날 아침, 저는 평소처럼 6시경에 일어나 화장실에 가 소변을 본 뒤 스트레칭 운동을 하기 전 족욕(足浴)부터 하려고 수도꼭지를 틀었습니다. 이것은 20여 년 전부터 계속해온 저의 아침 식전 스케줄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연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수돗물이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당황한 저는 불편한 다리를 움직여 거실로 나와 그곳에 있는 화장실 수도꼭지를 틀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역시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처음 당하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수도관이 강추위에 얼어붙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래층에 사는 아들을 전화로 깨우고 조치를 부탁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건물은 4층 다세대 주택으로, 아들은 2층에 살고 있습니다. 조금 후 아들의 설명에 따르면 3층까지는 수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며 4층만이 문제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우리 건물 수도계량기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고 4층 수도만 고장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수도계량기 고장이 아니니까 소비자인 우리가 고장난 부분을 찾아내어 수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건물 상·하수도를 담당하는 단골 가게에 연락했으나 수도관 동파로 수리 부탁이 너무 많아 단시일 내에 응할 수 없다는 비관적인 대답이었습니다. 다른 가게로부터도 같은 반응이었습니다.

당장 아침식사, 아니 세수부터가 문제였습니다. 다행히 옥상에 있는 수도꼭지 하나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어, 여기서 물을 받아 거실, 화장실의 욕조에 우선 필요한 물은 확보했습니다. 식수는 마트에서 생수 큰 병을 여러 개 사왔습니다. 하루 5회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복용하는 데에도 생수가 필요했습니다.

아침식사는 평소처럼 우유와 시리얼 등으로 간단하게 마쳤습니다. 점심은 주말을 빼고 하루 3시간 근무하는 요양보호사가 준비해 주는데 수돗물이 나오지 않으니 당분간 죽을 사와 밥 대신 점심을 때우기로 했습니다. 제게 가장 큰 불편은 화장실 사용이었습니다. 수돗물이 나오지 않으면 수세식 변기는 저같이 거동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에게는 매우 불편합니다. 변기 바로 앞 벽에 안전 바가 설치돼 있지만, 수세식 변기에 필요한 만큼의 물 양을 일일이 들어올려 변기를 세척한다는 것은 여간 힘 드는 일이 아닙니다.

수돗물이 나오지 않아 불편을 느끼는 것은 이밖에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소동으로 손 씻기가 평소보다 더 강조되는 요즘 흐르는 수돗물의 편리함을 몇 번이고 통감했습니다. 흔히 “물 쓰듯이 쓴다”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수돗물의 귀중함과 편리함을 이번 수도관 사고로 새삼 느꼈습니다.

물이 나오지 않으니 세탁기를 사용할 수도 없고, 정수기와 식기 세척기도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우리의 생활에 수도가 얼마나 많은 역할을 하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수도관 동파사고가 무수히 일어났을 터이니 언제 우리 집 수도 수리 차례가 올지 가늠할 수 없는 채 막연히 기다림에만 의지하는 무력한 신세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만 사흘이 지났습니다. 일요일이라 평소처럼 가까이 있는 아이들이 모여들 것인데 걱정이었습니다. 경기도 광주에 사는 셋째 딸 부부도 무슨 도움이나 될 수 있을까 오겠다는 연락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얼마 있다 아들이 들어와 지금 단골 수도수리 기사가 와 작업 중이니 욕실 수도꼭지를 열어 두라고 했습니다. 얼마 후 수도에서 힘차게 물이 흘러나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와 넷째 딸은 함성을 질렀습니다. 드디어 수돗물이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광주에 있는 딸에게 올 필요 없다고 연락하고, 점심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나흘간의 불편이 일시에 사라지고 전과 같은 정상적 ‘수돗물이 나오는‘ 생활이 돌아왔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수도에 대한 귀중한 공부를 했습니다. 수도가 우리 생활을 얼마나 윤택하게 하는지를 새삼 깨달았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 자유칼럼(http://www.freecolum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칼럼의견쓰기(5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goldwell (175.XXX.XXX.20)
겨을에 오는 당골 손님은 수도관 사고입니다. 수도물이 남보다 절실한 터에
나흘간의 단수는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사태로 조심하고 있는 일상에 불의 일격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저도 수도계량기 동파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선생댁은 계량기 문제가 아니고 수도관이었나요?
저희 아파트는 계량기가 주방안에 있어 그런 걱정은 없는데 다만 관리사무소에서 베란다에 있는 세탁기를 사용하지 말라고 합니다. 세탁기를 사용하면 아래층에서 역류가 일어나 낭패를 본다는 것입니다. 날씨가 풀리거든 세탁할 것을 권하고 있으니 덕택으로 빨래감이 쌓여있습니다.
추운 겨울 빨리 지났으면 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답변달기
2021-01-15 16:43:27
0 0
차선우 (222.XXX.XXX.111)
좋은 글 감사합니다.
어르신께서 써주신 칼럼을 보고 많은 동감을 느꼈습니다.
평소 모르고 살다보면 그 대상이 그리 귀한 줄 모르고 지내지요
이럴때 사물에 대한 소중함, 귀중함, 필요성 등을 느껴가면서 생활의 지혜를 찾아 불편없이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답변달기
2021-01-14 10:25:43
0 0
오솔길 (114.XXX.XXX.38)
글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댓글에 담긴 좋은 생각 동감합니다.
건강하세요.
답변달기
2021-01-15 16:46:25
0 0
임성빈 (58.XXX.XXX.226)
이번에도 시골 아버님 댁 수도가 얼었습니다. 그 것도 온수라인이 말입니다.
추운 경기도 북쪽 지방이다 보니 몇 년에 한 번씩 있는 경우긴 하지만 그 때마다 그 동안 당연한 것처럼 느끼고 살았던 생활의 편리들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이 들곤 합니다.
요즘,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동경을 많이 합니다. 조금 불편하겠지만, 자연에 가장 근접하게 사는 게 몸에도, 건강에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추운 날씨, 건강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답변달기
2021-01-14 08:48:48
0 0
오솔길 (114.XXX.XXX.38)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코로나소동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답변달기
2021-01-15 16:57:13
0 0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 유출과 관련된 글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