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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혼란스러운 연출
홍승철 2020년 12월 21일 (월) 00:07:53

회사원이면서도 연출이라는 개념을 생각하게 된 계기는 뮤지컬 공연을 대하면서였습니다. 1996년에 내한 공연한 『레 미제라블』을 보면서 감동이 컸는데, 무대 연출의 힘에 감탄했습니다. 한 인물(여공 팡틴)의 인생 역정을 한 무대 위에서 단 몇 분 사이에 나타내 보인 일, 한정된 공간 안에서 시민군과 정부군의 전투 장면을 실감나게 펼친 것이 그 예입니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형사 자베르가 다리 위에서 물로 뛰어드는(자살하는) 장면이었습니다. 휑한 무대 위에 장치라고는 폭 2미터도 되지 않는 다리 난간의 일부만 있었습니다. 배우가 그 난간을 넘어 뛰어내리는 동작을 할 때 난간이 빠르게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자베르가 떨어진다고 느꼈습니다.

같은 해에 브로드웨이에서 『미스 사이공』을 보았습니다. 부두의 철망 문을 사이에 두고 탈출하려는 베트남인들과 막으려는 미군들이 밀고 당기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무대 안쪽에서 베트남인들이 관중석을 향해 문을 열고 들어서려 했습니다. 고조되는 음악과 더불어 어느 순간 베트남인들과 미군의 위치가 뒤바뀌었습니다. 탈출하려는 무리가 관중석에서 무대 안쪽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관객이 베트남인들과 한 무리인 양 가슴에서 격동을 느꼈습니다.

연출의 힘을 느끼다가 방송 드라마를 보면서 비판적 안목이 생기기도 합니다. 슬픔에 싸인 등장인물이 혼자서 독주(毒酒)를 병째로 들이켜는 장면을 여러 드라마에서 자주 보니 불편합니다. 지나치게 과장된 모습은 너무 쉬운 연출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회사 일에서도 연출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일이 생겼습니다. 경영 컨설팅 회사 맥킨지는 조직에는 일곱 개 요소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중 한 요소는 스타일입니다. 근무하던 회사에서 행동양식이라고 번역해 보았는데 딱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여섯 요소와 달리 이 스타일은 경영자의 그것을 가리킵니다. 경영자의 말, 행동, 관심, 시간 배분 등에 관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경영자의 언행은 조직원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잘 관리해야 합니다. 잘 관리하기 위해서는 연출이 필요합니다. 허위나 위선의 언행을 하라는 게 아닙니다. 경영자의 의도를 조직원들에게 정확하게 이해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지 못하는 경영자를 보았습니다. 이런 식이지요. 사장이 회사의 공식 스피치에서 품질의 중요성을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그가 한 해의 경영 실적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품질 항목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원가를 낮추어 이익을 높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조직원들은 사장의 메시지에 대해 혼란을 느낍니다. 그런가 하면 높은 목표를 제시하며 우량회사를 만들자고 전 사원들에게 호소하던 경영자가 사원 처우라는 대목에서는 명확한 생각을 말하지 않아서 사원들에게 실망을 안기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경영혁신의 대가인 톰 피터스는 1985년에 펴낸 『A Passion for Excellence(우량성을 향한 열정)』에서 문제에 대응하는 경영자의 행동을 소개합니다. 그중 하나는 이렇습니다. 미국의 퍼듀 치킨은 닭고기를 파는 회사입니다. 창업자이자 CEO인 프랭크 퍼듀는 팔려 나가는 닭고기의 날개에 평균 여덟 개의 잔털이 남아 있는 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잔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잉의 대형 항공기에 장착하는 제트 터빈을 도입했습니다. 그 결과 여덟 개의 잔털은 평균 두 개로 줄었습니다. 산술적으로는 혁신입니다. 그러나 그는 남아 있는 두 개의 잔털도 어떻게든 없애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의 행동은 연출도 아니고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는 행동으로 표출한 것입니다. 이런 회사 제품의 품질이 어떠할지는 의심할 바가 없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초기에 언론의 관심을 끈 사진 한 장을 기억합니다. 대통령과 비서진이 셔츠 차림으로 커피 한 잔씩을 들고 청와대 뜰을 거닐며 담소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두 가지 생각이 교차하였습니다. “참 훌륭한 연출이구나. 권위적이거나 관료적인 냄새를 다 털어버리는 인상이다. 그런데 어쩐지 작위적인 냄새가 난다. 일률적으로 하얀 셔츠와 커피도 그렇고, 저렇게 여러 사람이 동시에 한마당을 거닌다는 게 그래."

​대통령의 말과 시간 배분을 보면 보여주고 싶은 메시지는 있으나 다수 국민의 기대에 반하는 메시지가 많습니다. 그런 점을 고려하기나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벤트 연출 전문가를 채용하여 차별화하고자 하는 대통령의 연출이 너무 허접합니다. 거기서 읽는 메시지는 혼란스럽거나 의심스럽습니다.

최근에는 임대 아파트 방문 기사를 보았습니다. 13평 아파트에서 “4인 가족이라도 살 수 있겠지요?” 하는 발언은 “영화 『국제시장』에서 애국가가 울리니 부부 싸움도 멈추고 국기에 경례하더라” 하는 전임 박근혜 대통령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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