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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잇는 직업, 대물림하는 가업
정달호 2020년 09월 21일 (월) 00:00:22

얼마 전에 황석영의 최신작 '철도원 삼대'를 읽었습니다. 그의 명성에 걸맞은 훌륭한 작품으로서 작가는 이 소설을 한국의 노동자들에게 바치는 헌사라고 말합니다.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 노동의 현장과 노동자들의 삶을 절절하게 그려내면서 한편으론 노동 현장을 중심으로 싹트고 번져온 노동자들의 권리투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탈적 노동에 내몰린 식민지 민초들의 삶 속에서 철도원 삼대가 겪는 파란만장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철도원 직업은 조부에서 손자까지 3대로 끝나고 4대는 현 시대의 해고된 공장노동자로서 노동자의 권리투쟁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이 책이 '노동자들에게 바치는 헌사'일 만큼, 현장이 아니면 실감하기 어려운 노동의 무게와 존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5백 페이지에 가까운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노동에 관한 헌사를 넘어, 황석영은 역시 대단한 이야기꾼이란 생각이 듭니다.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된 서민들의 따뜻한 삶의 이야기가 노동자들의 처절한 삶과 얽혀 있습니다. 노련한 작가의 시선을 통해 잊혀가고 있는 그 시대의 삶이 더욱 절실하게 와 닿습니다. 황석영의 소설에 이미 여러 번 등장한 그의 판타지적 내러티브는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연상하게도 해 줍니다.

​책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소설책 한 권 읽은 감상을 토로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제목에 나오는 '삼대(三代)'라는 말이 흥미를 끌어 그 얘기를 하고 싶어서 소설을 끌어들인 것일 뿐입니다. 요즘 조부, 부, 본인 3대가 같은 직업을 갖는 것이 아주 희귀한 일은 아닙니다. 정치인, 법조인, 군인, 의사 등에서는 3대가 같은 직업을 이어오는 예가 적잖이 있지만 노동자에 속하는 철도원이란 직업이 한 집안에서 3대를 잇는다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죠. 할아버지는 철도공작창 직원이며 아버지는 당시 조선인으로서는 드문 철도기관사이며 아들도 아버지를 따라 기관사가 됩니다. 일제 때니까 남들이 부러워하는 철도원 직업 3대가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철도원 아버지가 아들이 철도원 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아들 또한 철도원이 되는 것을 희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르긴 해도 생활이 나아진 요즘 농업이나 어업에서도 3대를 이어 종사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을 듯합니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3대 돌돔잡이 어부'를 현장 르뽀로 소개하여 흥미를 가지고 보았습니다. 모든 어부는 그 일터가 험한 바다인 만큼 대부분 극한작업에 종사한다고 하겠습니다. 아들은 생업에 몸 바쳐온 어부 아버지의 가업을 도우다가 자연스레 어부가 되었으며 손자는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바다의 매력에 빠져서인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가업을 돕는 케이스입니다.

​그들이 돌돔을 잡아올리는 조업 장면을 보면 극한직업임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동이 트기 한참 전에 거센 파도를 헤치면서 그물 쳐놓은 자리를 찾아 항해하는 것부터가 힘들고 지치는 일입니다. 현장에 도착하여 영세한 장비로 팽팽한 그물을 끌어올리는 것은 매우 위험하기도 합니다. 돌돔은 깊은 바다 돌 사이에 서식하면서 전복, 소라, 게 등 갑각류와 새우 등 귀한 먹이를 찾아먹는 일종의 포식자로서 힘이 센 물고기입니다. 돌돔은 도미류 중 가장 상위의 어종이며 횟집에서는 고가에 팔립니다. 그런 보답이 있기에 어부 3대가 돌돔잡이에 매달린다는 점도 있겠지만 여하튼 극한직업에 3대가 함께 종사한다는 것은 드문 일이라 하겠습니다.

​딱히 3대가 아니라, 수 대를 이어 가업에 종사하는 좋은 예는 작은 식당처럼 먹거리 분야에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찾아보면 우리나라에도 대를 이어 먹거리 가업을 유지해오는 곳들이 있을 것입니다. 최근에 4대를 이어오는 떡집이 방송에 소개된 것을 관심 있게 본 적이 있습니다. 제각기 특별한 이유가 있겠지만 대를 이어 가업을 유지하는 것은 그럴 만한 매력이 있으며 나름대로 가업 발전에 대한 보람을 느끼기 때문일 것입니다. 1940년부터 3대를 이어 막걸리 양조장을 하는 집도 있습니다.

​수 대를 이어 가업을 승계해오는 식당이나 제과점 등이 일본에는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도쿄 등 대도시에는 2, 3백년 되는 우동집, 소바집, 오뎅집들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줄을 서서 기다려도 시간이 아깝지 않을 맛집들이겠죠. 10여 년 전 어쩌다 제가 가본 곳은 오사카에 있는 150년 역사의 고급 튀김요릿집인데 관록이 느껴지는 식당의 분위기에다, 완벽한 튀김요리를 내어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일본인 특유의 정성스러운 안내가 곁들여져 기분좋은 식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역사가 오래된 집은 단골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단골이란 오랜 거래를 통해 신뢰관계가 형성된 것을 말합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소가 오래갈수록 단골도 더 많아질 것이며 영업도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손들이 대를 이어 가업에 종사할 동기가 충분합니다.

​우리나라도 가업을 소중히 여기는 풍조가 생기면 좋겠습니다. 대물림하는 가업이 많을수록 생산자와 소비자 간 신뢰가 커져 전반적으로 사회의 안정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작금 소상인, 자영업자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났다가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사태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를 잇는 가업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지만 창의성과 차별성과 비상한 노력으로 창업을 하여 발전을 이루고 있는 곳들도 있습니다. 이런 업소들이 다 잘 돼서 대를 잇는 가업으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래야 소비자도 믿고 찾아갈 수 있고 소비의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가업을 잇는 작은 비즈니스들이 많을수록 신뢰, 안정이라는 사회적 자본이 꾸준히 축적될 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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