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 연재칼럼 | 이성낙 이런생각
     
증오심을 키우는 불매운동, 이젠 그만
이성낙 2020년 09월 18일 (금) 03:44:27

“증오는 의견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근래 우리 주변에는 너무도 다양한 증오심으로 가득한 비수사(非修辭)가 거리낌 없이 무엇인가를 대변하는 의견인 양 난무하고 있습니다. 어지러울 지경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지난해부터 이어진 일본 관련 불매운동이 차차 도를 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NO JAPAN,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국민적 공감대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불매운동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점에는 아마도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있을 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여주고 싶었던 ‘단합된 모습’을 충분히 입증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젠 달리 생각할 시점에 왔다고 봅니다. 감성보다는 이성에 더 기반을 둔 논쟁에 대해 말할 시점이 된 것입니다.

필자는 오랜 세월 독일에서 사는 동안 직간접적으로 ‘감정 쏠림’, 특히 ‘대중적 감정 쏠림’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보고 듣고 체험했기에 더욱 걱정스러운 시각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계 역사상 최악의 ‘인종 말살’이 먼 과거가 아닌 바로 80여 년 전에 일어났다는 사실에, 그것도 문명국을 자처하는 유럽 대륙 한가운데서 일어났다는 사실에 현기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엄청난 ‘사건’이 아주 작은 ‘불매운동’에서 시작하였습니다.

1930년대 뮌헨에서 나치 당원 유니폼 차림을 한 사람 서너 명이 유대인 상점의 진열장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손에 “독일 사람은 유대인과 거래하지 맙시다 (Deutsche kauft nicht bei Juden)”라는 문구가 어설프게 쓰인 나무판을 들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작은 시민운동’이 얼마 후 전국적인 ‘수정(水晶)의 밤(Kristallnacht, 1938. 11. 9)’으로 이어졌습니다. 순진했던 독일 시민들이 유대인 상점의 진열장 유리를 ‘수정체가 깨지듯’ 산산조각 냈고, 여기저기서 유대교회당(Sinagoge)이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실로 광풍(狂風)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광풍이 끔찍한 ‘인종 말살’이라는 희대의 ‘참사’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역사는 말합니다. 감정에 호소하는 선동은 결코 오래가서는 아니 된다고 말입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진행된 ‘대일본 불매운동’은 그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했다고 믿습니다. 이제 이를 멈추고 새로운 ‘사회적 용기’를 보여줄 시점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물론 국내에서도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특히 관광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분들은 생계유지가 곤란한 지경에 와 있습니다.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생존권 차원의 문제도 돌아볼 시점이 된 것입니다.

무엇보다 필자는 작금의 ‘대일본 불매운동’에 강한 증오가 내재한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다시금 이를 지적하는 것은, 증오심은 우리가 지키고 가꾸어야 할 인성(人性)을 짓밟아버리는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증오는 의견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됩니다. 그래서 사회학자들은 “어떤 비상사태도 오래가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부정적 반전이 온다는 것을 알기에 이를 경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홀로코스트(Holocaust, 불에 의해 희생된 제물)’를 경험한 유럽 곳곳의 유대인 학살 현장에서 우리는 “꼭 기억하며 용서하되 절대로 잊지 말자(Forgive but do not forget)”라는 문장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뉘우치지 않더라도 그들을 용서하라(Forgive Them Even If They Are Not Sorry)”라는 문구도 있습니다. 저주하는 감성 속에는 더 무서운 폐해 인자인 ‘인성파괴 괴물’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증오심을 키우는 ‘대일본 불매운동’, 이젠 종지부를 찍을 때가 왔다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NO JAPAN,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 대신 한국과 일본 양국의 미래를 여는 새로운 표어가 등장할 때입니다. 개인이든 국가든 증오를 품고 사는 것은 너무도 소모적인 일입니다. 증오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세계 역사가 이것을 증명합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 자유칼럼(http://www.freecolum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칼럼의견쓰기(8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김영식 (49.XXX.XXX.178)
말씀은 훌륭하신데 너무 이상적입니다. (일부이긴 하겠지만) 저자들은 아직도 군국주의를 찬양하고 한국인을 비하하며 진심으로 반성하지를 않습니다. 과거 서독 브란트 수상이 나치 독일에 학살당한 폴란드인 추모탑에서 눈물흘리며 무릎꿇고 사죄했죠. 일본 왕이 그 정도의 사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물론 그럴리 만무하죠). 일본과의 적대 관계는 우리 한민족이 영원히 감당해야 할 선천적 운명입니다.
답변달기
2020-09-21 19:07:35
0 0
이성낙 (183.XXX.XXX.36)
용서하자는 구호는 가해자 독일이 내건 표어가 아니고
Holocaust 피해자 측이 내민 주장이라는 점을 성찰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답변달기
2020-09-22 15:36:40
0 0
이중근 (203.XXX.XXX.2)
"그들이 뉘우치지 않아도 용서하라" 저는 그들이 수십년이 지난 뒤에도 홀로코스트 범인들을 잡아다 법정에 세우는 것을 보고 추호의 타협도 없이 단죄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다른 면이 있었군요. 많이 배웠습니다. 유의할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20-09-20 01:50:37
0 0
이성낙 (183.XXX.XXX.36)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20-09-22 15:38:27
0 0
김원국 (221.XXX.XXX.28)
좋은 생각 감사합니다. 치킨게임을 중단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단 한쪽에서 일방적인 러브콜을 보내기 보다는 양국에서 의식있는사람들이나 단체가 함께 이 일을 풀어 간다면 더욱 효과가 있을것 같습니다.
답변달기
2020-09-18 14:51:49
0 0
이성낙 (183.XXX.XXX.36)
약국 국회의원 친선회, 경제인 친선모임 등이 힘을 발휘하여야 된다고
믿습니다.
답변달기
2020-09-22 15:41:19
0 0
libero (58.XXX.XXX.51)
"과거를 기억하되 미래를 생각하라!" 깊이 공감합니다.
언제까지 과거에 묶여 살 것인지, 아픈 역사를 미래 발전의 디딤돌로 삼아야 할 텐데 권력 다툼의 도구로 쓰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하루 빨리 미몽에서 깨어나기를 바랍니다.
답변달기
2020-09-18 10:04:45
1 2
이성낙 (183.XXX.XXX.36)
근래 일본 사회가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면,
양국 간의 관계가 참 복잡하다는 생각을 새삼 다시 하게 됩니다.
일본 서점가에는 '혐한 코노'가 운영된다니 참으로 한심 스럽스습니다.
우리 서점에 '혐일 코너'가 없다는 사실에 문화적 긍지를 가집니다.
답변달기
2020-09-22 15:50:47
0 0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 유출과 관련된 글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