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 포토 |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하루일망정 화사하게, 물레나물처럼
박대문 2020년 08월 11일 (화) 00:00:10

 

   
  ▲ 물레나물 (물레나물과) Hypericum ascyron

[출처] ### 2020.8.11.(화) 풀지기 -물레나물 (비공개 카페)

틈만 나면 가능한 한 산을 찾아 나서고만 싶은 요즘의 심정입니다. 원래는 야생화를 찾아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만 올봄에는 팬데믹(pandemic)에 따른 사회적 격리라는 새로운 세상을 맞게 되다 보니 어쩔 수 없게 찾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쫓기듯 산을 찾게 되는 주된 원인은 바로 뉴스 공해로부터의 도피 및 탈출이 아닌가 싶습니다. 언론 매체가 쏟아내는 뉴스라는 것을 보고 들으면 정신이 혼미하고 짜증스럽기만 합니다, 새 소식의 대부분이 기껏해야 편 가르기, 내로남불, 치받아 되씌우기, 상대 비방, 철면피한 유체이탈 화법과 남의 탓 타령, 임의적 자기 잣대에 의한 공정과 정의의 개념 왜곡 등 뉴스 공해입니다. 어쩌다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이런 세상을 살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신문과 방송, SNS를 가급적 멀리하려고 해 보지만 사람 사는 세상을 떠나지 않는 한 피할 방법이 없습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부터 시작하여 전철 안, 버스 안, 찻집, 공중 장소의 대형 TV 광고판 등 쓰나미처럼 범람하는 뉴스 공해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를 피하는 방안으로는 산을 찾기가 가장 쉽고 무난한 듯싶습니다.

홀로 걷는 산길의 즐거움, 굳이 야생화를 찾는 산행이 아니어도 집을 나서서 산속 오솔길을 걷는 시간은 행복합니다. 번거로움과 심란함의 해소와 속리(俗離)의 자유로움을 만끽합니다. 물론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은 휴일이 아니고서는 그림의 떡과 같은 일이겠지요. 하지만 무정한 세월이 흘러 일을 할 나이도 아니고 딱히 할 일도 없는 무료한 상황에서는 나름 행복한 선택이 아닌가 싶습니다. 간혹 호젓한 오솔길에서 볼륨을 한껏 높인 휴대용 라디오나 녹음기를 자랑스럽게 켜고 산행을 하는 짓궂은 양반(?)들 땜에 기분이 상하는 일도 있지만 그래도 뉴스 공해보다는 나은 것 같습니다.

​예년과 달리 지루하게 긴 장맛비가 연일 기승을 부립니다. 날씨 예보는 많은 양의 비가 온다고 하는데 웬일로 날씨가 갠 듯하여 시내에서 가까운 둘레길 산행을 나섰습니다. 비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는 장마 중이라서인지 가파르지도 않은 산길임에도 등줄기에 땀이 흐르고 발걸음이 타박타박 둔해집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쉬면서 앞 비탈을 내려다보니 뭔가가 눈에 환하게 들어옵니다. 양지바른 비탈에서 환하게 미소 짓는 큼직한 꽃 한 송이가 보입니다. 그 순간은 산길을 오르는 고단함도 등에 흐르는 땀줄기도 잊게 했습니다. ‘곱다. 사치라 할 만큼 화사하구나.’ 감탄의 말이 절로 나옵니다. 바로 짙푸른 풀숲에 드러난 물레나물꽃입니다. 뉴스 공해를 피할 겸 찾아온 산행에서 기대하지도 않은 횡재를 한 듯한 기분입니다. 세상이 온통 즐거움으로 가득한 듯한 모습으로 반기는 화사한 미소를 봅니다.

  ▲ 물레나물 Hypericum ascyron                                       ▲ 망종화 hypericum patulum 

물레나물은 전국 각처의 산기슭이나 볕이 잘 드는 물가에서 주로 자라는 여름꽃입니다. 황색 바탕에 붉은빛이 도는 꽤 큼직한 꽃은 가지 끝에 한 개씩 위를 향하여 달립니다. 풍성한 수술에 덮여 있는 씨방은 조그마한 황금 항아리처럼 앙증맞습니다. 어린 순을 나물로 먹기도 하며 한방에서는 뿌리를 제외한 식물체 전체를 홍한련(紅旱蓮)이라는 약재로 이용합니다. 한국, 시베리아 동부, 중국, 일본 등지에 분포합니다.

한여름 뜨거운 햇살 아래 황금색 바탕에 붉은빛 도는 풍성한 수술을 지닌 꽃잎 5장은 선풍기 날개처럼 한쪽 방향으로 꺾어 굽어집니다. 휘어진 그 꽃잎의 모양이 마치 물레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 물레나물입니다. 물레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시골 농가에서 목화솜으로 실을 만드는 데 이용했던 간단한 재래식 기구입니다.

​물레나물은 꽃은 화사하지만, 하루 만에 시들어지는 일일화(一日花)입니다. 황금색 꽃잎과 금빛 수술의 조화가 화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혹서와 혹한을 견디며 살아야 하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뿌리에서 싹이 자라 2년째 되는 한여름에 피어난 꽃송이는 하루살이꽃을 피운 후 앙증맞고 이쁜 열매에 다음을 맡긴 채 장렬히 마침표를 찍고 미련 없이 한살이를 마무리한다고 합니다. 구질구질하게 버티지 않고 하루 동안 활짝 꽃을 피우고 자지러지듯 시들고 마는 화사하고 화끈한 꽃입니다. 단 하루의 짧은 시간을 위해 긴긴날, 덥고 추운 계절의 나날을 이겨내고 피운 물레나물꽃, 그 꽃잎은 또 왜 그리 꺾이고 굽어져 휘어진 모양을 하는지 그 신비감이 궁금한 꽃이기도 합니다.

물레나물은 우리 자생화입니다. 이와 비슷한 꽃이 시내의 도로 화단이나 강변, 공원 등에 심겨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간혹 이 꽃을 물레나물이라고 팻말을 붙여 놓은 곳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꽃은 중국에서 도입한 망종화(芒種花)입니다. 망종화는 꽃술에 붉은빛이 없고 꽃잎이 선풍기 날개처럼 굽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 꽃을 도심이나 공원 등에 심는 것을 보면 곱고 화사한 우리 꽃 물레나물보다 망종화가 도시의 환경에 더 적응이 잘되는 품종인가 봅니다. 우리 꽃 물레나물을 품종 개량해서라도 망종화 대신 주변 곳곳에 심을 수는 없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뉴스 공해가 싫어 산행을 나섰다가 뜻하지 않게 만난 물레나물꽃, 크고 고운 꽃을 피운 채 하루를 살망정 미련 없이 훗날의 참한 열매를 남기고 화사하게 생을 마감합니다. 볼수록 기특하고 알아볼수록 신비감과 깔끔함이 돋보이는 꽃입니다. 대자연의 순리와 질서 속에 깃든 맑고 순수한 야생화 세계를 들여다보면서 우리가 사는 사람 세상과 대비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야비한 권력과 사악한 개인 영달을 위하여 끊임없이 이어지는 추한 말과 행동이 난무하는 것이 작금의 우리 사회입니다. 소위 사회 지도자라는 위치와 지위에서 쏟아내는 뉴스 공해가 지겹기만 합니다. 가정맹호(苛政猛虎)라서 산속을 떠날 수 없었다는 고사(古事)처럼 ‘뉴스 공해’가 무서워 산으로 가야 하는 세태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기우(杞憂)이기를 바랍니다. 피하고 막을 수도 없이 밀려오는 뉴스 공해에 시달리는 일상을 벗어나고자 산으로 간다는 것은 서글픈 일입니다. 덕분에 하루일망정 화사하게 꽃을 피우고 깔끔하게 물러서는 물레나물꽃을 만났습니다만 앞으로는 꽃을 찾는 산행 길에서 더 고운 꽃을 만나는 날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2020. 7. 31. 남한산 자락에서)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 자유칼럼(http://www.freecolum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칼럼의견쓰기(2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허은순 (211.XXX.XXX.103)
선생님 안녕하세요?
오늘도 좋은 글과 예쁜 꽃 사진을 보며 잠시 세상의 시름을 잊습니다.
그런데, 이 홈피에서는 오늘 글이 다 잘 나온 것 같은데, 제가 받아보는 이 메일에서는, 물레나물 꽃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다가, 꽃 사진 바로 아래부터는 지난 번 게재되었던 타래난초 얘기로 바뀌어 마무리가 되었네요..
혹시나 모르고 계실 것 같아서, 아니면 수정이 가능할까 하여, 죄송함을 무릅쓰고 댓글을 씁니다. 이 페이지에서는 제대로 보이는 점이 이상하게 이 메일에서만 잘못 되었네요... ㅠ.ㅠ 참고해 주시고,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20-08-11 08:02:51
0 0
박대문 (221.XXX.XXX.194)
은순 님! 글, 감사합니다.확인해 보고 웹마스터에게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답변달기
2020-08-11 09:30:12
0 0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 유출과 관련된 글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