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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뒤흔든 한 시민의 참혹한 죽음
허찬국 2020년 06월 11일 (목) 00:42:09

‘살려고 지르는 길고 큰 비명,’ 인종차별 항의 시위
코비드 19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미국에서 백인 경찰이 위조 지폐 사용 용의자인 흑인 조지 플로이드씨를 대낮 공공장소에서 목을 9분 가까이 무릎으로 눌러 잔인하게 살해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5월 25일 미네소타 주의 미니아폴리스에서 벌어진 이 살인 영상이 퍼지며 전국적으로 시위가 확산되었고 열기가 식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 공영방송 PBS의 한 프로는 이 시위를 ‘살려고 지르는 매우 길고 큰 비명(a very long, very loud existential scream)’이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약탈 등 폭동 양상이었지만 점점 시위의 초점이 미국 사회 깊숙이 존재하는 제도화된 인종차별주의를 고쳐야 한다는 데 모아지고 있습니다.

흑인들에 대한 거의 무차별적이고 비인간적인 잔혹행위가 경찰, 백인우월주의자들에 의해 거듭되며 이전에도 지역적으로 항의 시위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양상이 다릅니다. 시위 참여자 인종이 다양하고 규모가 매우 큽니다. 여론 조사의 결과는 고질적 인종차별이 고쳐져야 한다는 인식이 광범위한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벌써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미식축구 경기 전 국가 연주 때 무릎을 꿇어 항의했던 선수를 징계했던 협회(NFL)가 자신들의 그때 결정이 잘못된 것이었고 향후 선수들의 항의를 허용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며칠 전 민주당은 의회에서 과감한 개혁 법안을 상정했습니다.

백인우월주의를 암묵적으로 부추겨온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대를 폭도 집단으로 규정하며 치안 유지에 책임이 있는 주지사, 시장들에게 시위가 더 계속되면 자신이 직접 군대를 동원해서 질서를 회복시키겠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1960년대 말의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 등으로 혼란스런 사회 분위기를 배경으로 대선 후보 리처드 닉슨은 자신을 법을 엄정히 집행해 사회의 질서를 회복할 ‘법과 질서(law and order)’의 지도자로 부각시켜 대선에서 승리했지요. 트럼프가 이를 따라 한다는 평가입니다.

TV 예능프로 출연자 같은 그의 비정상적 행보는 더 식상해지고 있습니다. 백악관을 둘러싼 시위대를 경찰과 주 방위군을 동원해 제압한 후 측근들과 인근 교회로 갔지만 교회에서 목사를 만나거나 묵상하는 시늉도 없었습니다. 건물 밖에서 성경책을 거꾸로 든 채 기자들이 사진을 찍도록 포즈를 취한 후 백악관으로 돌아가는 순전한 사진 연출 (photo op, 포토옾)이었던 거지요.

 
플로이드 살인 항의 시위 (주1)                               제임스 매티스 전 미국국방장관 (주2)
 

제임스 매티스의 비판 ‘힘은 통합에서 나온다’
종교계의 비판과 언론의 조롱거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 이벤트는 그간 잠잠하던 사자를 깨웠습니다. 2018년 12월에 시리아로부터 미군을 철수하려는 대통령의 결정에 항의하며 사임한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입니다. 그동안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나 정책에 대해 언급을 삼가는 신중한 행보를 보여왔지요. 그러던 그가 시사 월간지 애틀랜틱 최근호에 “In union there is strength(힘은 통합에서 나온다)”는 제목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신랄하게 비난하는 글을 실었습니다.

본인은 싫어한다지만 미친개(mad dog)라는 별명으로도 알려진 매티스는 해병대 대장 출신 역전의 용사입니다. 미국에게 나라 밖 애먼 곳에서 전쟁을 수행하는, 기동성이 높은 해병대는 국가 전력의 화신입니다. 병역 미필자 트럼프는 대선 후보 당시 강한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 ‘미친개’를 국방장관으로 발탁하겠다고 공언했고 당선 후 실행에 옮겼죠.

그런데 매티스는 미국인들의 필독서로 자신이 애독해온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추천하는 사려 깊은 덕장(德將)이었습니다. 야전 지휘관 시절에도 자기 성찰을 강조하는 그 책을 늘 지니고 다녔다고 합니다. 장관 재임 기간에 미국의 언론은 그를 경험이 없고 충동적인 트럼프가 엉뚱한 결정을 하는 것을 막을 성숙한 조언자라고 평했는데, 트럼프는 매우 불쾌해했다고 합니다. 결국 2018년 말 트럼프 대통령이 시리아에서 미군 철수를 일방적으로 결정하자 시기상조라 반대하던 매티스는 항의하여 사임하였죠.

그는 사임 후 <명상록>의 스토이시즘(stoicism)을 실행하며 침묵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몇 주간 벌어지는 일을 보며 크게 충격을 받아 공개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 부재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기에 이릅니다.

“나는 이번 주에 벌어지는 일들을 보며 화가 치밀었고 믿을 수 없었다”라고 시작하는 그의 성명은 트럼프 대통령이 군을 동원해 폭도들을 진압하겠다고 하는 공언에 대해 비난했습니다. “내가 50년 전에 군에 입대할 때 미국의 헌법을 수호하겠다는 선서를 했다. 나는 같은 선서를 한 군인들이 다른 시민들의 헌법적 권리를 침해할 목적으로 동원되리라 상상도 하지 못했다. 특히 군 지휘부를 대동한 대통령이 언론용 사진 몇 장을 찍기 위해 그런 일을 벌이는 것을 말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노르망디 침공을 앞두고 지휘부가 장병들에게 전달한 훈시는  ‘우리를 파멸하려는 나치의 슬로건은 분열시켜 정복하라’인 반면 이에 대한 미국의 답은 ’힘은 통합에서 나온다‘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작금의 정치 상황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단합하여 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는 내 일생 처음 보는, 미국 국민을 통합하려 노력하지 않는—그러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첫 번째 대통령이다. 오히려 우리를 분열시켜왔다. 우리는 지금 지난 3년 간 있었던 용의주도한 편 가르기의 결과를 목도하고 있다. 성숙한 지도력이 부재했던 지난 3년 간의 결과를 지금 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가 없어도 개명된 사회의 힘을 바탕삼아 단합할 수 있다. 지난 3년을 돌아보면 이런 단합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 동료 국민과, 건국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피를 흘린 과거의 세대들과, 그리고 우리 후세들을 위해 수행해야 하는 책무이다.“

(중략)

“새로운 길—실제로 우리 선조들의 건국 정신이 제시했던 원래의 길—을 가야만 우리는 다시 나라 안과 밖에서 부러움의 대상이자 존경받는 나라가 될 것이다.”

이번 위기가 독수리 그림의 미국 국장(國章) 속에 등장하는 ‘여럿이 모아 하나로(E pluribus unum)’라는 모토에 더 충실해지는 계기가 될지 두고 볼 일입니다.

주1) https://www.instagram.com/p/CBI5fS3nyN3/?igshid=angy4dr9yh0
주2) https://www.militarytimes.com/off-duty/military-culture/2019/06/22/shanahan- unveils-mattis-portrait-at-pentagon-before-relinquishing-defense-secretary-du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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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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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건 (222.XXX.XXX.210)
친구들과의 얘기 중에 매티스 외에 콜린 파웰, 콘돌리사 라이스, 미트 롬니 등 공화당 출신의 고위 공직자들 얘기가 나왔지요. 트럼프가 망쳐 놓은 미국이지만 공화당 출신들이 트럼프에게 반기를 들고, 심지어 대선에서 그를 찍지 않겠다고 공언할 수 있는 것이 미국의 힘이라는 거였죠. 옳고 그름이 아니라, 내편이냐 아니냐가 판단의 기준이 돼 있는 이 나라 꼴과는 차원이 다르죠. '여럿이 하나로'의 미국 모토는 유지될 걸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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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1 16:4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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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찬국 (14.XXX.XXX.230)
코멘트 감사합니다. 저도 낙관적인 전망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미국에도 나라꼴 염두에 전혀없이 코앞의 권력, 편견, 탐욕, 종교적 광신 등에 포획된 정치인들과 골빈 추종자들이 의외로 많아 보여 기대를 좀 낮추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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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2 13: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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