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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의 조용한 반란
정달호 2020년 04월 24일 (금) 00:10:46

우리나라 지하철은 쾌적하고 능률적인 것으로 이용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을 뿐 아니라 외국에서 오는 관광객들도 만족해하고 부러워하기까지 합니다. 노선에 따라 편차가 있겠으나 최근에 건설한 노선들은 승강장이 넓고 편리하며 역사(驛舍)의 공간들이 전반적으로 깔끔하게 장식돼 있습니다. 최근의 노선 하나를 건설하는 책임을 맡았던 한 지인으로부터 그 노선을 잘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들였는지를 직접 듣기도 했습니다. 그런 노력과 정성이 투입되었기에 최근 노선들이 훌륭하게 건설되었음을 더욱 잘 알 수 있습니다. 아무튼 우리나라 지하철은 매우 우수한 대중교통 수단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하철 이용에 있어 몇 가지 문제점도 있습니다.

지하철에 오르면 우선 시야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핑크색 임산부석입니다. 그 자리는 거의 비어 있고 임산부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한 객차당 4~6개 정도가 있는데 가끔 사람이 앉아 있기는 하지만 임산부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다른 이들만큼 눈치를 덜 보는 연세 있는 아주머니들이 요새 무슨 임산부가 있다고 아까운 자리를 비워 놓나, 하면서 망설임 없이 그 자리에 앉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분들 말이 맞습니다. 초저출산 운운하면서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데도 출산율이 증가되기는커녕 하락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임산부 보호, 크게는 출산장려의 일환으로 임산부 배려석을 만들어 놓았으며 이를 매우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습니다. 어떤 역사 앞에는 '임산부석 비워놓기' 배너를 세워놓고 캠페인을 합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착상을 참신한 아이디어라고 내놓았을 것이며 여성 인권 향상이란 좋은 생각도 작용했을 것입니다. 일곱 개 좌석 중 양 끝을 핑크색으로 구별해 놓은 것에서 더 나아가 그 앞 공간도 온통 핑크빛으로 칠하고 그것도 모자라 아기 인형까지 올려 놓았는데 때가 꼬깃꼬깃 묻어 미관상으로도 위생상으로도 좋을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 걸 바라보면서 정작 앉고 싶은 사람들이 못 앉는 이런 왜곡된 현상이 우리의 후진성을 나타내는 것 같아 안쓰럽습니다. 특히 출퇴근 시간에도 승객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아까운 자리를 비워 놓고 있는 것은 불합리해 보입니다.

현실에 맞지 않고 상식에 맞지 않는 것은 오래 못 가는 모양입니다. 언제부턴가 그 핑크색 금단의 자리에 아무나 앉는 현상이 생기고 있습니다.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주변에 임산부가 없다 싶으면 크게 눈치를 보지 않고 그 자리에 앉습니다. 물론 임산부가 타면 언제라도 양보하겠다는 마음일 것입니다. 어느 날 한번은 양쪽 끝 자리 임산부석에 남성 하나, 임산부가 아닌 여성 하나가 각각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귀에 못이 박이도록 흘러나오는 임산부 배려석 비워놓기 방송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자리에 앉는 승객들이 지하철 당국의 정책에 반기를 든 것입니다. 맞지 않는 일을 자연스레 바로잡는 조용한 반란입니다.

 
 

우리 사회의 시민의식이나 교양 수준으로 보아 그런 특별 배려석이 없다고 하더라도 임산부를 보고 자리를 양보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이번에 큰 난리를 겪고 있는 코로나 19 사태에서 드러난 우리 국민의 시민의식이라면 드러나게 임산부석을 만들어 놓고 방송이나 캠페인을 하지 않아도 임산부에게 스스로 자리를 양보하는 문화가 자리를 잡은 것으로 봅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 정도 캠페인을 했으니 이제는 그만해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차량당 한두 석 정도만 남겨 놓고 나머지 좌석은 다 일반석으로 환원하는 것이 합리적이며 현실적이라고 봅니다. 지키지 않아도 되는 규율을 유지함으써 오히려 준법의식이 흐려질 우려가 있음도 고려해야 합니다. 승객의 자연스러운 반란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우수한 지하철 시스템이지만 승객의 편의를 위해 한두 가지 더 지적하고자 합니다. 지하철을 타고 난 다음에는 내릴 역을 바로 알고 내리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가끔은 지하철 객차에서 바깥을 내다보며 역 이름을 확인하려는데 역 이름이 잘 보이지 않아 당황하다가 내릴 역을 놓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릴 역은 방송으로도 나오고 요즘은 디지털 안내판이 좋아서 굳이 바깥을 내다보지 않아도 알 수 있게 돼 있지만 차 안이 매우 혼잡하면 방송도 안 들리고 디지털 안내판도 잘 볼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바깥에 써 붙여 놓은 역 이름을 보고 확인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데 외국의 경우에 비해 역사 내 역 이름 표시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지하철 당국은 승객의 입장에서 모든 역을 꼼꼼히 살펴서 역 이름 표지를 더 보강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 밖에도 내려서 출구를 찾아가는 데도 혼선이 있을 수 있습니다. 크고 복잡한 역에서는 꽤 많이 걸어야 바른 출구를 찾아서 나갈 수 있는데 중간중간에 표지가 안 보여 당황하거나 다른 표지가 끼어들어서 혼선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지하철을 많이 이용하다 보면 표지의 글자들이 비교적 작다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역사 내 제반 표지는 멋지게 보이는 것보다 승객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므로 실용성을 앞세워 이 부분을 더 개선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필자의 경우 고속터미널역과 서울역에서 해당 출구를 잘 못 찾아 당황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늘 이용하는 사람들은 역사 내 지리에 익숙하므로 안내표지 문제로 불편을 느끼지 않겠지만 가끔 이용하는 사람들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더 신경을 써 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문제점은 대강 그 정도로 하고, 전보다 크게 개선된 점을 하나 들라면 저는 지하철 역사의 청결 상태, 특히 화장실의 청결을 들겠습니다. 백 퍼센트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대체로 어느 지하철 역사의 화장실에 들어가도 항상 깨끗하게 유지돼 있어 기분이 좋아지곤 합니다. 어느 날 밤 11시쯤 어떤 역사의 화장실엘 들렀는데 그때까지도 물과 세제로 깨끗하게 씻어내는 아주머니들이 있었습니다. 아, 이렇게 열심히 청소를 하니 화장실이든 역사 내 다른 공간이든 깨끗하지 않을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 이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분들뿐 아니라 지하철이라는 대중 교통시설이 잘 돌아가게끔 운행하고 유지해주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갖습니다. 우리나라 사회가 지하철 역사의 청결을 유지해주는 분들만큼 각자가 책임감을 가지고 자기 일을 성실히 해나간다면 일등 선진국이 될 날이 머지않을 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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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6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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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수 (211.XXX.XXX.180)
100% 공감입니다.
저는 족저근막염이 있어 발바닥이 아픈데도 임산부석에는 눈치가 보여 앉지 못하고 서서 갑니다.
핑크색 안내가 없었을 때도 임산부가 타면 주위 승객들이 자리를 비켜주었어요. 안내가 없어도 비켜주는 시민이 더 성숙한 시민 아닐까요?
옛날에는 지하철에서 새치기 말라는 안내를 했지만 지금은 안해도 시민의식이 성숙해졌기에 언제나 줄을 잘 서듯이 임산부 안내표시는 우리스스로 시민의식이 덜 성숙했다는 것을 외국인에게 광고하는 것 같아 부끄러워요

다음은 역이름 관련입니다.
저 역시 방송이 안들려 밖을 보려해도 역이름이 안보여 지나간 경우가 몇 번 있어요.
역이름이 어느 칸에 있더라도 잘 보이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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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27 09:32:27
0 0
벽동 (14.XXX.XXX.61)
좋은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오랫만에 편견이나 아집이 없는 노년의 신사 모습을 본 듯한 느낌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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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25 14:00:39
0 0
최재범 (122.XXX.XXX.131)
임산부석은 비워놓아야 함니다.
꼭 배가부른 임산부만 있는것이 아님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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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24 23: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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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221.XXX.XXX.20)
선생님의 칼럼을 늘 관심을 가지고 읽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문제점으로 지적하신 임산부 배려석은 평소 저의 생각과 같아서 크게 공감했어요. 그에 관해 썼던 제 글 한 편을 여기에 소개해도 될까요?

임산부 배려석


전철은 꽤 붐비었다. 출입문에서부터 떠밀려 서고 보니 분홍색 좌석 앞, 이른 바 임산부 배려석이었다. 가방만 내려놓고 그대로 서 있었다. 아직 다리가 아프지 않기도 했지만, 언젠가 들었던 말이 그날따라 뚜렷이 귓전에 맴돌아서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자도 임신을 하고 여자들도 나이에 상관없이 애를 갖는 것 같습디다.”
눈에 띄는 분홍색 자리에다가 ‘임산부 배려석’이라는 표지가 있는데도 태연하게 앉아있는 사람들을 가리켜 P선생이 한 말이다.
마침 팔십 줄에 들어서 보이는 고운 할머니 한 분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와 거기에 앉으려 하기에 재빨리 가방을 들어 올렸다. 특별한 자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듯, 후유 숨을 내쉬면서도 표정이 마냥 편한 눈치가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렇게 비좁을 때 비워놓는 건 아까운 일이에요.”
“그런데 왜 안 앉았소?”
나는 멈칫거리다가 귓전에 맴돌던 말을 그대로 전하면서 한 마디를 더 보탰다.
“그 말이 생각나서요. 비트는 말인데도 표현이 익살스럽지 않은가요?”
둘이 함께 웃었다.
전철을 타면 칸마다 양쪽 끝에 노약자석이라는 게 마련되어 있다. 거기에도 임산부 그림 표지가 있다. 현실의 돌아가는 모양이야 어떻든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어온 나라에서 그 정도의 미덕은 갖추고 있는 게 마땅한 일이라 여긴다. 헌데 언젠가부터 돌연 전철 출입문 바로 옆자리에 분홍색을 입히고, 더러 ‘임산부 배려석’이라 써 붙인 데도 있고, 아니면 발이 놓일 바닥에 분홍색 동그라미나 네모를 그려서 특별한 자리임을 일깨우고 있다.
나는 거의 매일 전철을 이용하는 편인데도 그 자리에 배부른 여인이 앉아있는 걸 본 적이 없다. 늘 누군가가, 아닌 게 아니라 임산부와는 거리가 먼 이들이 앉아 있거나, 아예 비어있었다. 주저앉을 정도로 피곤한데도 서 있어야 하는 날은 그 빈 자리가 못내 야속하게 여겨질 때도 있었다. 나와 똑같은 생각에서인지 모르지만, 어떤 때는 남자 어른이 태연하게 앉아 있고 때로는 나이 불문하고 건강해 보이는 여자들이 앉아있다.
“이렇게 따로 마련하지 않아도 배부른 여인이 타면 누구나 자리를 내주지 않을까요? 아무리 세상이 달라졌다 해도 저는 우리 모두에게 그런 정도의 예의와 따뜻한 마음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다시 말을 꺼내자 앞자리의 할머니가 말을 받았다.
“아직 배부르지 않은 여자들도 있을 것이구먼.”
“하지만 우리 여성들의 일반 정서로 볼 때 임신 표시가 나지 않은 사람이야말로 이 자리에 앉을 것 같지 않은데요. 굳이 남의 시선을 끌려 할까요? 임산부 배려석은 지나친 친절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듣고 보니 허긴 그렇구먼!”

이즘 젊은이들이 어른을 몰라보느니 예의가 없느니 하지만, 허약한 사람이나 노인, 그리고 어린아이를 위해 도움을 청하면 언제든 자리를 양보할 마음을 갖추고 있다고 믿는다.
바로 어제 일만 해도 그렇다. 전철을 타고 무심히 서서 가는데 다음 정거장에서 내 바로 앞자리가 비었다. 내가 막 앉으려고 하는데 그 자리 옆으로 나란히 앉았던 아가씨 둘이 눈 깜짝할 사이에 수평이동을 해 차지해 버렸다. 짐짓 태연한 표정으로 정황을 살펴본즉, 한 아가씨가 분홍색 좌석에 앉아있었던 것. 불편해서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던 모양이다. 허나 서 있는 나를 의식했는지 벌떡 일어서며 자리를 양보했다.

노약자석이 거의 모든 칸에 이미 마련되어 있는데, 임산부 배려석을 굳이 따로 만들 필요가 있을까?
모두 그러지 않겠지만 ‘7포 세대’라고 자조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면서 결혼하지 않으려 하고, 또 결혼을 한다 해도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한다. 그러니 늘어가는 노년인구와는 달리 출생률 저하로 심각한 인구문제가 발생할 것은 뻔한 일. 임산부 배려석은 이러한 현실을 걱정하는 당국의 고육책에서 나온 것이 아닐는지?

두두룩해진 배를 두 손으로 감싸고 느긋하게 앉아 가는 임산부를 가끔이라도 볼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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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24 10:11:20
2 0
정달호 (175.XXX.XXX.65)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20-04-24 16:15:49
0 0
숨은 배려 (59.XXX.XXX.68)
고속도로 달리면, 오른쪽 옆에 갓길이 있습니다. 바쁘고,분주할때 왜 비워두느냐 하면, 응급환자발생시, 교통사고 발생시에 비상적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 남겨 놓은 안전장치입니다....젊은이들 생각 짧은거..물질만능주의에 매몰되는 현실이 안타깝고, 사람교육이 안되어 있는 문화 현상.. 낸돈가지고 내가 쓴다는 천민자본주의의 결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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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24 13:34:03
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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