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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홍승철 2019년 12월 02일 (월) 00:04:31

“눈을 뜨기 힘든 가을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 좋아.”
이제는 계절이 바뀌었지만 지난 시월에 자주 들려왔습니다. 갖고 있는 CD는 한 번도 틀지 않았는데도 말이죠. 방송에서, 유튜브에서, 결혼식장에서 그랬습니다. 이 노래를 들으면 소리 내지 않고도 따라 흥얼거립니다. 그때마다 마음 한구석엔 작은 짐이 생깁니다.
여러 번 불러보아도 시작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눈을 뜨기’의 뜨기에서 음정이 4도 도약(솔에서 도로)을 합니다. 힘찬 곡이라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8분의 6박자에 메조피아노(약간 여리게) 정도의 부드러운 선율입니다. 4도 도약하더라도 기 소리가 부드럽게 나야 하는데, 튀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래도 이 부분은 얼마큼 신경을 써서 그런대로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곧 이어지는 ‘보다’는 6도나 도약(파에서 높은 레로)합니다. 여러 번 불러보아도 다 소리는 거칠게 났습니다. 그 다음 ‘하늘이’의 이 소리도 6도 도약(미에서 높은 도로)입니다. 첫 네 마디가 그런데 뒤의 네 마디도 비슷하게 진행합니다. 똑같은 멜로디를 2절에서 반복해야 합니다. 아마추어로서는 노래 맛을 살려 부르기 어려웠습니다.
음정 도약의 문제는 그렇다 치고 가사에 어색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2절의 시작입니다. “가끔 두려워져. 지난밤 꿈처럼 사라질까 기도해.” ‘사라질까 기도해’가 이상했는데 사라지지 않기를 원하는 거라고 쿨하게(?) 이해해 버렸습니다. 문제는 ‘지난밤 꿈처럼’을 ‘지난밤 꿈에서처럼’으로 읽은 데에 있습니다. 그러다가 10여 년 만인 지난 시월에 몇 차례 듣던 중 어느 날 놀랐습니다. “아니, 나는 왜 그렇게 읽었지?”
‘꿈에서처럼’ 그대가 사라질까 걱정한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잠 깨면 사라지는 꿈처럼’ 이 행복한 현실이 행여 환상이 아니기를 바란다는 뜻이었습니다. 글 읽을 때, 남의 말을 들을 때,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가끔 겪는 자신의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내면의 어떤 특성이 발현되어 전체를 헤아리지 못하고 편협된 판단을 한다는 말입니다.
며칠 전에 지인들과 만나 맥줏집에 갔을 때도 그랬습니다. 일행 중 한 명이 나를 벽에 붙은 안쪽 자리에 앉으라고 했습니다. “왜 나를 구석에 앉히려고 그래요?” “담배 때문에요.” “안 피우는 사람이 구석에 앉으면 담배 피해를 더 입는데?” “담배 피우는 사람이 들락날락해야 하니 서로 불편하지 않게 해야죠.” “아이쿠!” 식당이나 주점 안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다는 사실을 잊고서 잠시나마 불필요한 대화를 했습니다.
다른 사례도 있습니다. 유튜버가 되어볼 요량으로 지난달 서점에 가서 안내서를 뒤적이다가 세 권의 책을 후보로 정했습니다. 제목 메모를 하는 대신 표지를 사진으로 찍어 두었다가 2, 3일 더 생각한 뒤에 두 권을 주문했습니다. 책을 좀 보다가 무언가 부족해서 다시 서점에 갔습니다. 세 번째 책이 보이지 않아 직원에게 물었습니다. 어느 매대에 있다고 알려 주는데 내가 이미 찾던 곳이었습니다. 다시 가 보니 책은 있었습니다. 표지 색깔이 문제였습니다. 파랑 표지의 책을 찾아보았는데 실은 연보라였습니다. 사진을 다시 보고도 색을 잘못 기억하다니.
앞뒤가 맞지 않거나 엉뚱한 짓을 한 경험은 많습니다. 최근에도 겪었지만 과거에도 그랬습니다. 신입사원 2년차엔가 3년차 때의 일이 기억납니다. 화장실에 가서 바지 앞쪽을 열고 소변을 보려는데 소변기가 너무 높았습니다. 발돋움을 해도 높이를 맞출 수 없었습니다. 몇 차례 시도하다가 소변기가 아니라 세면대 앞인 걸 깨닫고 깜짝 놀랐습니다. 다행히 화장실에는 혼자뿐이었습니다.

학생 때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중 『모르그가의 살인』이 각별했습니다. 두 친구가 파리의 길을 대화 없이 걸었습니다. 꽤 긴 시간이 경과한 뒤 한 친구는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맞혀 냅니다. 그는 같이 걷기 시작할 때쯤 상대의 어떤 몸짓을 눈여겨보면서 상대의 생각을 추정합니다. 이후 계속 관찰하면서 생각의 흐름을 따라간 것입니다.
그 시절 학교 친구들과 대화하다가 간간이 “우리가 지금 왜 이 엉뚱한 화제를 다루게 되었지?”라는 자문(自問)을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생각의 고리를 거슬러 30분 전 또는 1시간 전의 무슨 이야기에서 시작했는지 발견해 내곤 웃어댔습니다. 혼자 있을 때도 생각을 거꾸로 추적해 보곤 했습니다. 재미있었을 뿐더러 나름 두뇌가 잘 작동하는 증거라고 여기기도 했습니다. 포의 소설 속 인물이 상대방의 생각을 좇아가는 사고방식과 통하는 면이 있다고 여기며 흐뭇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기억까지 떠올리는 이유는 자신의 사고가 비정상적이지는 않은 거라는 변명장이 심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부족하거나 불합리한 판단과 행동을 하는 것인가가 의문입니다. 학생 때 하던 지능검사나 적성검사를 지금 한다면 결과가 그때와 사뭇 다르게 나올지도 모른다는 염려 아닌 염려도 마음 한구석에 있습니다. 또는 내 속에 지닌 어떤 특성들을 과거에는 모르다가 이제야 인식하게 되었을지 모른다는 의심도 있습니다.
심리학자나 뇌과학자에게 진단받지 않고는 이유를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누구를 찾아갈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지금부터라도 불이 난 것과 같은 다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판단과 행동을 늦춰 보자고 다짐해 봅니다. 늦추기만 해서는 안 되겠지요. 다면적으로 상황을 고려해야 하고 상대가 있을 때는 그의 의도를 더 헤아려야겠습니다. 결론 내리고 보니 너무나 당연한 일을 제대로 해 오지 않았다고 자책하게 됩니다. 이 정도만으로는 화장실 사건 같은 일은 막을 수 없을 터입니다. 그래도 시월의 어느 멋진 날 덕분에 요만큼이라도 왔다고 자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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