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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江湖)를 꿈꾸다
김창식 2019년 08월 05일 (월) 00:22:26
 
  *<군협지> 표지(네이버 이미지)   
 

한 신문에 현 정치 구도를 무림에 빗대 쓰는 연재 칼럼이 있어 흥미롭습니다. 요즘은 ‘잠룡편’으로 예비 대권주자들을 조명합니다. 무림지존, 절세 고수, 독문무공, 공안초식, 무림서열록, 공전절후(空前絶後), 동귀어진(同歸於盡), 아생후살타(我生後殺他) 같은 조금은 촌스러우면서도 낯익은 무협용어들이 등장해 향수를 자극하는군요.

근데 요새도 무협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있느냐고요? 무슨 ‘AI가 풀 씹는 소리’도 아니고. 그런 매니아층이 있습니다. 필자도 그중에 한 사람이고요. 낙일서생(落日書生)이라는 별호로 강호(江湖)를 소오(笑傲)하며 영웅 협객들과 교분을 나눈 적도 있습니다. 강호란 저잣거리 속세를 떠난 관념 속 시공간이지만 우리 사회의 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강호는 음모와 괴계(怪計)가 난무하는 곳이지만 의와 협, 호연지기가 숨쉬는 곳이기도 합니다.

돌이켜보면 무협소설 바람이 몰아친 것은 1960년대였어요. 무협물은 특히 청소년들 사이에 대세였죠. 기념비가 될 작품들을 살펴봅니다. 1960년대 초 <정협지(情俠誌)>가 효시입니다. <검해고홍(劍海孤鴻)>이 원 제목인 대만 작가의 단편을 김광주 선생이 3권 분량으로 각색하였습니다. 다음 순서는 1960년대 중반 우리나라에 소개된 대만 작가 와룡생의 <군협지(群俠誌>입니다. <옥차맹(玉釵盟)>이 원작인, 일세를 풍미한 이 소설은 무협소설 붐의 기폭제가 됩니다. 그 시절 젊은이들 사이에 주인공 ‘서원평’과 자의소녀 ’차소소’의 비가(悲歌)를 모르면 이야기가 통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10여 년이 지나고 1980년대에 들어서며 무협 열기가 시들어질 무렵 홍콩의 언론인이자 걸출한 작가인 김용이 등장합니다. 김용의 <영웅문(英雄門)>은 물경 수백만부가 팔리며 역사무협 장르의 새로운 장을 열었죠. <영웅문>의 원제는 <사조영웅전(射雕英雄傳)>이며 <신조협려(神鳥俠侶)>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로 이어지는 사조삼부곡 시리즈 중 첫 번째 작품입니다. 신필(神筆) 김용에야 당근 못 미치지만 그 무렵의 또 다른 유명한 무협 작가로는 양우생(<백발마녀전> <칠검하천산>)>과 고룡(<초류향전기> <영웅호접검>)을 들 수 있겠죠.

무협소설은 88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퇴조의 길을 걷습니다. 정부의 스포츠, 레저활동 장려시책, 무협물에 대한 사회적 폄하 시선에 더하여 대본소에 불어 닥친 만화(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 등) 열풍을 이유로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렁저렁 끝나나 싶던 무협소설의 DNA는 뜻밖에도 우리 작가들의 창작무협소설에서 빛을 발하는군요. 1980년대부터 작품을 써온 금강(<절대무존>), 야설록(<표향옥상>), 검궁인(<독보강호>), 사마달(<대도무문>), 서효원(<대자객교)> 등이 무협 1세대입니다.

이후 1990년대 초 용대운(<군림천하>)과 좌백(<대도오>)이 나타나 다시 한 번 무협물의 번창에 불을 지핍니다. 두 사람은 소위 구 무협과 신 무협의 가교 역할을 떠맡은 출중한 작가들이지요. 지금도 무협의 맥은 대여점(구 대본소)을 통해 굳건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활동이 활발한 작가들로는 설봉(<사신>), 한수오(<신검마도>), 백야(<무림오적>), 오채지(<백가쟁패>), 허담(<십이천문>) 등을 눈여겨볼만 합니다.

이상이 간략히 살펴본 무협소설사입니다. 그나저나 강호를 꿈꾼다고(夢江湖)? 지금이 어느 때라고 창칼이 난무하고 피 보라가 흩뿌려지는 도산검림(刀山劍林), 시산혈해(屍山血海)의 상상 속 험한 세상을 노니느냐는 의문이 들 수 있겠네요. 무협물에 이런저런, 그것도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 있어서입니다. 무협소설의 효능과 이점은 다음 칼럼에서 자세히 다루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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