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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다 알아서 한다
정숭호 2019년 07월 31일 (수) 00:20:35

꽃게찜과 꽃게탕이 기가 막혔던 충청도 서쪽 바닷가 횟집 주방장 겸 여사장님은 내 연배였다. 들락날락 서비스할 때 말투가 내 고향 쪽 말이었다. 동향 사람 만났다 싶어 물었더니 울진이란다. 경북 북부 내륙인 내 고향 안동에서도 쉬 가기 어려운, 강원도와 가까운 동해바다 항구다.

그날 밤 숙소에 누워서 그 여사장 생각을 했다. 어떻게 해서 고향에서 ‘천리타향’인 이곳으로 시집을 왔을까, 친정어머니와 형제자매들 보고 싶을 땐 그 눈물을 어떻게 참았을까, 친정 나들이는 자주 했을까, 어떻게 갔을까, 자기 차가 없으면 여기서 대전으로 나간 후 대구로 가서 안동이나 포항을 거쳐 울진으로 갔겠구나 …, 등등을 생각했다.

내 어머니 생각이 났다. 내 어머니는 울진보다는 가까운 영덕에서 안동으로 시집오셨다. 그래도 멀었다. 요즘에야 차도 좋고 길도 좋지만 어머니 다니실 때는 낙동강 상류 아슬아슬한 비포장 벼랑길을 돌아 버스를 타고 하루 종일 걸렸던 곳이다. 어머니 마흔 초반에 친정어머니 –내 외할머니- 돌아가신 후 그 길 안 가셨지만 아흔 넘어 세상 뜨실 무렵 친정 이야기를 더 자주 하셨다. 친정어머니 이야기, 친정집 툇마루에 들던 겨울 햇볕 이야기, 그 겨울에 소달구지 뒤에 타고 학교 다닌 이야기, 그때 친구들-이름은 하나도 기억 안 되는 -이야기를 하시곤 했다.

영덕에서 안동까지 혼인하러 나오신 게 대단하다 싶어 여쭤보면 “중매쟁이 할마이가 안동에 좋은 신랑감 있다고 너 아배 사진을 외할배에게 보여줬다카이!”라고 그걸 또 묻냐면서도 아부지 만난 이야길 또 해주셨다. 입가에 살짝 미소가 어렸다. 아부지 처음 봤을 때도 그랬을 거다.

“횟집 여사장도 중매쟁이 꼬임으로 이 멀리 시집왔나, 그 중매쟁이 발도 넓다, 충청도 남자를 경상도 오지 처자에게 중매하다니!” 이런 감탄도 하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해장도 그 식당에서 했다. 여사장이 또 왔다갔다한다. “그래 그 멀리서 시집와 친정 식구들 많이 보고 싶겠네, 한번 가려면 참 힘들겠소.” 간밤에 궁금했던 거 물어볼 겸 말 건넸더니 “아이고, 친정 가기 쉬워요. 신랑 출항 갈 때 따라가면 돼요, 지난달에도 갔다 왔어요, 나는 차를 타면 멀미나요. 배 타고 친정 가는 게 훨씬 편해요, 신랑도 옆에 있고, 호호호!” 내 어머니까지 등장했던 동병상련, 허접한 페미니즘이 한 칼에 무너졌다.

여사장 남편은 고기잡이배 선주 겸 선장이라고 했다. 남편이 배 타고 나가서 잡아온 고기를 내다 팔기 전에 제일 좋은 걸 남겨놓으면 여사장이 그걸 회 치고 토막 내고 탕 끓여 식당을 하는 거다. 그러고 보니 식당 바깥에 햇볕과 바닷바람에 그을린, 큰 키에 멋진 구석이 남아 있는 사내 모습이 보였다.

들은 것에다 짐작 약간 보태면 이런 이야기다. 젊은 선장이 배를 몰고 동해로 출항을 간다. 울진 포구에 배를 대고 묵었다. (태풍 경보라도 있었겠지.) 울진 시내 구경 나섰다가 예쁜 처자가 눈에 띄었다. 처자 눈에도 충청도 청년 선장이 멋있었다. 눈이 맞은 둘은 두 마리 바닷새처럼 사랑의 희롱을 주고받는다. 선장은 이제 태풍이 안 닥쳐도 울진 포구로 들어온다. 둘은 못 헤어진다. 젊은 선장은 무서울 것 없는 ‘뱃놈’답게 처자의 남은 생을 책임지기로 하고 처자 부모 허락을 받아낸다. 결혼식을 하고 자기 배에 태워 충청도 바닷가로 데려온다. 아내가 된 처자가 친정 가고 싶어 하면 닻줄을 푼다. 저 멀리 처가 있는 쪽으로 뱃머리를 돌린다. 망망대해로 나가는 것도 아닌데 그까짓 것, 뭐 어렵겠소?

정착 농경민의 후예인 나는 뱃사람, 바닷사람, 뱃길 위의 거칠고도 달콤한 풍속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거다. 다른 사람들의 삶을 내 식으로만 해석하고 상상했던 거다.

사람들은 다 알아서 한다. 벌써 여러 해 전, 그 여사장님과 짧은 대화를 하면서 내가 다시 배운 ‘진리’다. ‘사람은 다 알아서 한다. 누구도 남의 삶을 멋대로 상상하지 마라, 그 사람 삶에 개입하지 마라.’ 이런 걸 주제로 글을 쓰고 싶다. 그게 자유주의, 시장경제라고 쓰고 싶다. 너무 나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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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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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관찰자 (175.XXX.XXX.167)
글의 전개가 재미있습니다. 깊은 뜻도 숨어있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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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31 10:31:05
0 0
trout (218.XXX.XXX.214)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더 재미있고, 뜻도 깊은 글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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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1 05:51:14
0 0
김형근 (1.XXX.XXX.179)
사람은 다 알아서 한다, 넘 좋은 책 제목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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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31 09:02:14
1 0
trout (218.XXX.XXX.214)
예, 고맙습니다. 날씨는 궂지만 즐거운 날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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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1 05:52:32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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