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우리말 표기 뭐가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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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우리말 표기 뭐가 문제인가

황경춘

2008년 02월 13일 (수) 00:35:57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새 정부 영어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세상이 시끄러운 가운데 이번에는 이경숙 위원장의 영어 우리말 표기법을 획기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발언이 보도되었습니다. 40 년 이상 영어로 밥벌이해 온 필자의 관심을 끄는 기사였습니다.

이 위원장의 이 발언은 인수위에서 열린 영어교육에 관한 공청회에서 한 참석자가 영어발음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말에 이어 나왔다고 합니다. 사실 영어, 특히 요즘 강조되는 실용영어 공부에서 발음교육은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 위원장이 처음 미국에 유학 간 1960년대에 한국에서 배운 ‘orange’ 발음을 그대로 했더니 알아듣지 못해 당황했다는 보도였습니다. 이것은 물론 ‘orange’의 우리 말 표기가 이 위원장의 말처럼 ‘오렌지’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기보다 당시에는 원어민 발음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지금처럼 크지 않았다는 데 더 문제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마땅하겠지요.

그러나 이 위원장이 말한, 원음에 가까운 표기법이 영어 학습에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일본인 발음 ‘세멘토’를 사용하는 고위 공무원을 꾸짖어 끝내 ‘cement’ 의 발음을 ‘시멘트’로 바로잡아 지금도 그렇게 통용되고 있음은 우리가 잘 아는 일화입니다. 또 이것은 우리말의 일부가 되다시피 한 외래어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표기법을 고칠 수 있다는 사례로도 기억될 수 있을 것입니다.

광복 직후에는 이와 비슷하게 ‘파아마’ ‘비스켓토’ ‘구란도(운동장)’ ‘란닝구’ ‘토락쿠’(트럭) 등 지금 들으면 웃음이 절로 나올 일본식 외래어가 많았습니다. 그 중 ‘빵’ ‘파마’ 등 일제 외래어는 그대로 정착해 버린 형편입니다.

그러나 광복 후 우리 부주의로 잘못된 것도 많습니다. 독일식을 따른 ‘비타민’은 그렇다 치고, 요즘 정착된 ‘비아그라’도 ‘바이아그라’라는 영어식 발음을 버린 것입니다. 최근 갑자기 많이 사용되는 ‘ubiquitous’ 는 원음에 가까운 ‘유비퀴터스’ 가 아닌 ‘유비쿼터스’라고 쓰고 있습니다.

20여 년 전 당시 인기가 높았던 할리우드 스타 Kevin Costner를 ‘코스트너’라고 표기한 신문사에 ‘코스너’ 가 원음에 가깝지 않느냐고 했더니 신문사 교정부장 모임에서 그렇게 정했으므로 바꿀 수 없다는 답변이었고, 필자와도 좀 인연이 있었던 미국 잡지 ‘Fortune’을 경기도에 있는 지명과 같은 ‘포천’으로 표기하기에 어차피 F발음은 표기할 수 없지만 ‘포천’ 보다는 ‘포춘’ 이 낫지 않느냐고 했는데 마찬가지 대답이었습니다.

우리말 표기의 문제점으로는 이와 같은 언론계의 잘못도 지적되어야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한글학자 일부의 쇼비니스트적인 고집에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일본의 경우 한자가 아닌 일본식 ‘가나다라’라 할 수 있는 소위 50음자 ‘카나모지(仮名文字)’가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보다 훨씬 전에 한 불교 고승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명치유신을 거치면서 외국문명과 외래어가 수입되고 외래어 표기가 필요해지자 일본은 카나 문자에 약간의 기호를 병용해 특수한 외래음의 표기에 사용하고, 장음(長音)을 표시하는 기호도 만들었습니다. 물론 일본어는 우리 말보다 발음이 단순해 이런 시도에도 불구하고 외래어 표기에선 한글을 따를 수 없지만, 한글에 절대 손댈 수 없다고 우기는 일부 우리 한글학자 태도와는 좋은 대조라고 볼 수 있겠지요.

일본의 경우를 한글학자 한 분에게 이야기했더니 한글에 손대는 것, 특히 외래어 표기를 돕기 위해 손댄다는 것은 사대주의적 발상이라고 펄쩍 뛰었습니다. 또 우리말에는 장음 단음이 자연적으로 들어 있어 글 사이에 기호를 넣을 필요는 없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말의 장ㆍ단음은 원래 한문자에서 온 것이므로 지금의 한글세대가 이것을 이해하기엔 많은 어려움이 있는 듯 싶습니다. 그 뿐 아니라, 어떤 이는 “우리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문자로 모든 외국어발음을 다 표기할 수 있다”고 우기기도 합니다. 국수주의도 이쯤 되면 가관이지요.

이에 비해 국립국어원장 이상규 박사는 “한글이 아무리 탁월한 언어라도 세계 모든 언어를 다 적을 순 없어요”라고 최근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그러나 외래어는 외국어와 다르며 당연히 우리말에 정착된 대로 표기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필자가 특히 관심을 가지는 문제는 장음표기입니다. 한때 ‘토오쿄오’ ‘뉴우요오크’ ‘베에토오벤’ 식의 표기가 쓰인 시절이 있었다고 기억합니다. 그러나 이런 표기는 곧 사라지고 ‘트르만 대통령’ ‘맥아더 원수’ 식의 표기가 정착되고 있습니다.

‘빵’ 과 같이 이미 우리말로 정착된 것은 제외하고, 일반 외국어나 외국 인명, 지명 등 고유명사의 표기는 이경숙 위원장의 주장대로 되도록 원음에 가깝게 표기하는 것이 외국어를 배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는 ‘토루-만’ ‘맛카-사-’라고 적습니다. 물론 이것 역시 원음과는 거리가 멀지요. 그러나 장음표기를 통해 원음 자체가 가진 악센트는 우리 한글의 표기보다 원음에 가깝게 들립니다. ‘news’의 표기는 ‘뉴스’보다 ‘뉴으스’가 원음에 더 가깝다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방송에서 ‘boat’ ‘musical’ 등 장음의 영어단어를 짧게, 그것도 어미에 힘을 주며 발음하는 것을 들을 때 이 분들은 영어로 이런 단어를 발음할 때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습니다. 관심 가지신 분들의 의견을 묻고 싶습니다.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주한 미국 대사관 신문과 번역사, 과장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TIME 서울지국 기자
-Fortune 등 미국 잡지 프리 랜서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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