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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매직과 한·베트남 관계의 미래
임종건 2018년 12월 26일 (수) 00:11:22

지난 12월 15일 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국가대표팀이 베트남 전국은 물론 많은 한국인까지 열광에 빠뜨렸습니다. 동남아 월드컵으로 불리는 스즈키컵 축구대회 결승 2차전에서 베트남 팀이 말레이시아 팀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것입니다.

필자도 이날 밤 9시 반부터 지상파인 SBSTV와 케이블인 SBS스포츠TV가 동시 생중계한 이 경기를 시작부터 시상식이 끝날 때까지 자정이 넘도록 모바일을 통해서 지켜봤습니다. 일본의 오토바이 제조업체인 스즈키 사가 후원하는 이 대회의 존재 사실도 이번에야 처음 알았습니다.

그처럼 알려지지 않은 대회를 국내의 지상파 TV가 편성을 바꿔가며 생중계한 것도 이례적인 데다, 두 TV 중계의 시청률 합계가 21.9%에 이르렀다니, 올 들어 국내에 들려오기 시작한 박 감독의 활약상에 국민의 관심이 컸음을 알았습니다.

필자 개인으로도 국제 스포츠 경기에서 한국 팀 외에 다른 나라 팀을 한국 팀처럼 응원해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기껏 북한이 일본 또는 중국과 하는 축구경기에서 북한을 응원한 적이 있으나 이번처럼 간절한 마음은 아니었습니다. 영국 프리미어 리그의 손흥민 선수의 소속팀이나 LPGA의 박인비 선수의 승리를 바라는 것과도 차원이 다른 열망이었습니다.

이번 승리로 박 감독은 베트남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한국인이 외국에서 성공한 사례는 많았지만 한 나라의 영웅으로 추앙될 만큼 성공한 사람은 아마도 그가 처음일 것 같습니다. 그의 성공이 더욱 빛나는 것은 한국에서였다면 이루기 어려운 성공으로 보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진설명 : 스즈키컵 결승전이 열린 하노이 미딩 경기장 응원석에 내걸린 박항서 감독과 베트남의 국부로 추앙받는 호치민의 대형 초상화가 박 감독에 대한 베트남 국민들의 추앙의 열기를 말해주고 있다.<사진 출처 = 뉴스1>  

 

그는 2002년 한일 월드컵대회에서 국가대표팀의 코치를 맡았지만, 히딩크 감독의 명성에 가려 주목받지는 못했습니다. 월드컵대회 이후 잠시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으나 성적 부진으로 밀려났고, 후배가 감독으로 있는 프로 축구단에서 다시 코치로 활동하다 그마저 그만뒀습니다.

그가 국내에 머물렀다면 한 누리꾼이 표현했듯이 ‘불쌍하게 생긴 중년’의 잊힌 축구 인생으로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국내의 박항서 열광에선 불공평한 시스템으로 인해 실패자가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대리만족 현상도 느껴지고, 그들이 대한축구협회의 무능이나 파벌주의에 대한 비판을 곁들이는 이유도 짐작이 갔습니다.

박항서 매직이 절묘한 것은 그가 제2의 축구 인생 개척지로 베트남을 선택한 것 자체라고 봅니다. 베트남은 지리적, 역사적으로 우리와 다른 점보다 닮은 점이 많은 나라입니다. 두 나라는 외세의 침입을 많이 받았고, 무엇보다 동족상잔을 겪었습니다.

두 나라 국민은 지형부터 반도 국가 탓인지 기질적으로 닮은 점이 많다고 합니다. 자존심이 강하고 불의에 대한 저항심이 강합니다. 박 감독은 감독으로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자존심은 강하나 자신감이 없는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국은 2차 세계대전 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한 세계 유일의 나라이고, 베트남은 미국 중국 프랑스 등 3개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과 전쟁을 해서 승리한 나라입니다. 그런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한 두 나라는 이웃과 불화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두 나라 국민이 중국과 일본을 싫어하는 공통점은 이런 역사적 기질적 배경에서 연유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은 월남전에 참전함으로써 베트남과 특별한 관계가 됐습니다. 지금은 경제교류에 묻혀 잊힌 듯하지만 언제든 폭발의 잠재력이 큰 역사의 상처입니다. 많은 한국인이 이 사실을 되새기며 박항서 매직으로 베트남에 진 빚이 덜어졌기를 희망한 것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두 나라는 1992년 국교 재개 후 주로 경제 협력을 통해 관계를 증진해 왔습니다. 지금 베트남은 한국의 교역국 중 중국 미국 홍콩 다음의 4대 교역국입니다. 5위인 일본과의 교역량보다 배나 많습니다.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의 생산액이 베트남 GDP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한국기업의 투자가 베트남 경제성장을 견인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 기업들의 해외투자는 중국에 집중됐으나, 중국의 인건비 상승 등 투자여건 악화로 실패 사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기업들의 대비 소홀의 탓도 있겠으나, 중국 측 파트너들의 신의(信義) 배반으로 인한 실패 사례도 많다고 합니다. 국내 기업들이 중국을 떠나 신의 리스크가 비교적 적은 베트남으로 투자처를 옮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문화적으로도 동남아에서 한류 붐이 가장 활발한 나라이고, 한국 내 베트남인과, 베트남 내 한국인이 각각 8만여 명, 그중 국내에 와 있는 베트남 유학생 수는 중국 다음으로 많아 1만5,000여 명(2017년 말 현재)입니다.

한 정치인이 "한국 남성은 베트남 여성을 제일 좋아한다"고 말해 물의가 빚어졌지만, 한국 남자와 결혼하는 외국 여성 중에서 베트남 여성이 가장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이는 앞으로 한국과 베트남이 혈연적으로도 밀접한 유대를 갖게 될 나라임을 의미합니다.

그런 인적교류는 이미 800년 전 월남의 이씨(李氏) 왕조가 멸망하던 때 고려로 망명 온 이용상(李龍祥) 왕자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는 고려 조정의 배려로 옹진의 화산(花山) 이씨의 시조가 됐고, 현 베트남 정부는 그들에게 베트남 국적을 부여해 오늘날 양국 간 우호 증진의 가교가 되어 있습니다.

국제관계에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습니다. 우리가 우방이라고 여겼던 주변의 강국들로부터 배신감을 느끼고, 자존심에 상처를 받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 일본과는 협력과 교류의 역사도 길지만, 적대와 침략의 역사가 더 깊어 과거의 상처가 덧나기 일쑤입니다.

베트남은 이런 시대에 한국의 진정한 우방이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나라입니다. 정치 경제 문화 등 전방위적으로 대결보다는 협력의 기회가 더 넓게 열려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박항서 매직이 하나 더 보태진 것입니다.

박항서 매직은 그가 베트남 대표팀을 맡은 지 1년 남짓 짧은 기간에 이룬 것입니다. 아직 변방축구 수준인 베트남 축구를 월드컵 본선 진출 팀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그의 매직은 완성됩니다. 그가 그 일을 달성할지는 두고 볼 일이나, 그는 이미 오래 지속될 양국 우호증진에 튼튼한 디딤돌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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