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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생을 마무리하는 좀바위솔
박대문 2018년 11월 08일 (목) 00:08:06
 
 좀바위솔 (돌나물과)  Orostachys minuta(Kom.) A.Berger
 


   
청량한 가을날, 가을 꽃맞이를 떠납니다. 지루한 겨울을 보내며 꽃 피는 춘삼월을 그리도 간절히 기다렸는데 그 봄, 그리고 여름이 어느새 훌쩍 지나갔습니다. 이제 또 올해의 꽃이 모두 져 가고 단풍 빛 짙게 물들어가는 가을 길을 걷습니다. 매년 어김없이 되풀이하는 자연의 행보이지만 해마다 철 따라 느낌이 다르니 그 또한 신기합니다. 반복되는 자연의 행태는 같지만, 거기에 덧붙여지는 세월의 흐름이 있기 때문인가 봅니다. 
    
이리저리 철원의 한탄강 줄기를 따라 걷다가 흙 한 줌 보이지 않는 바위에 붙어 꽃을 피운 좀바위솔을 만났습니다. 뿌리 내릴 곳도 없어 보이는 참으로 열악하고 모진 환경, 딱딱하고 메마른 바위 위에 덜렁 얹혀서 꽃을 피웠습니다. 바위 표면에 붙어서 먼지와 이끼에 의존하여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좀바위솔! 어찌 주변의 흙이 있는 땅을 외면한 채 가파르고 딱딱한 바위에 붙어 저 질긴 생(生)을 이어가는 것일까? 밤낮으로 변화무쌍한 온도 차와 거친 비바람 속에 몸을 내어 맡기면서도 한 줄기 꽃대를 뽑아 올리는 강인한 생명력에 애잔함이 묻어납니다.
    
좀바위솔은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여러해살이풀이지만 대나무처럼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면 죽고야 맙니다. 생에 마지막 한 번의 꽃으로 일생을 마감하는 셈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꽃이 빈약하거나 볼품이 없어 관심도 못 받으면서 매년 피고 지는 무수한 풀꽃들! 그들의 수명은 모두가 제각각입니다. 대부분 풀꽃은 수명이 1~2년에 그치는 한해살이풀 또는 두해살이풀입니다. 두해살이풀은 전해에 싹이 터 자라서 월동을 하고 이른 봄에 꽃을 피워 씨를 남긴 후 사라집니다. 하지만 어떤 것은 뿌리가 남아 매년 가을에 시들었다가 이듬해에 새싹이 나와 새 뿌리를 내면서 2~3년 또는 오랫동안 살아가는 여러해살이풀도 있습니다. 
    
바위 겉에 붙어 자라서 생의 마지막을 알리는 좀바위솔의 꽃이 가을 햇살 아래 눈물겹도록 화사합니다. 분홍빛 도는 하얀 꽃잎에 자홍빛 수술이 도드라지게 돌출하여 앙증맞게 작은 꽃송이들이 탐스럽게 보입니다. 수상(穗狀)꽃차례 꽃줄기에 다닥다닥 붙은 꽃송이 하나하나가 모여 꽃 기둥을 이루었습니다. 척박하고 시커먼 바위에 붙어 거친 비바람을 견뎌내고 어찌 저리 고운 꽃을 피울 수가 있을까? 한두해살이풀이 아닌 여러해살이풀이기에 몇 년을 자란 끝에 피워 올린 꽃인 줄은 모릅니다. 어떤 조건에서 생을 단념하고 꽃을 피우는지도 모릅니다. 오직 죽음을 무릅쓰고 화려한 꽃 한 송이를 피워 올려 씨앗을 남긴다는 필사적인 노력의 결과입니다. 다음 세대를 이어간다는 생명체로서의 소명(召命)을 완수하기 위한 마지막 불꽃이기에 더욱더 애처롭고 고와 보입니다. 
    
자라온 과정에 시련도 많았나 봅니다. 꽃줄기 밑의 도톰한 잎들이 벌레에 뜯긴 것인지 가뭄에 말라 타들어 간 것인지 모르겠지만 많이도 상해 있습니다. 그러한 상태에서도 의젓하고 고고히 피워 올린 좀바위솔 꽃송이가 새삼 경이롭습니다. 메마른 바위 겉에 붙어서 모진 고난을 겪고 살아남아 생명체로서의 마지막 할 일을 마무리 짓고 있는 좀바위솔의 대견하고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바위 겉에 붙어 자라는 좀바위솔 군락


    
좀바위솔은 주로 경북, 충북, 경기도 이북의 고산지대 바위 위에 붙어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잎은 비늘 모양으로 긴 타원형이고 끝이 뾰족하며 다육질입니다. 크기는 약 15cm 이내이고 꽃은 가을에 자홍색으로 핍니다. 바위에 붙어 자라고 솔방울처럼 생겼다는 뜻에서 이름 붙인 ‘바위솔’을 닮았는데 바위솔보다 좀스럽게 작아 ‘좀바위솔’이라 부릅니다. 바위솔 종류도 서로 비슷한 식구가 많이 있습니다. 바위솔을 비롯하여 좀바위솔, 둥근바위솔, 가지바위솔, 갈미바위솔, 잎새바위솔, 정선바위솔, 연화바위솔, 울릉연화바위솔, 진주바위솔, 포천바위솔, 다북바위솔, 난쟁이바위솔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가 돌나물과 식물로서 잎이 다육질인 것이 특징입니다. 이들은 자양분 없고 물도 간직해 주지 못한 무심하고 무정한 바위에 붙어서 생을 이어갑니다. 뿌리를 뻗으려야 뻗을 수가 없는 척박한 바위에 붙어 오직 스스로 사는 길을 찾아야만 합니다. 흙도 없고 물기도 없는 바위에 붙어 좀바위솔은 어떻게 살아갈까? 이들 식물이 살아가는 방식을 살펴보면 그 지혜와 생의 전략이 놀랍습니다. 선인장과 다육식물은 사막이나 높은 산 등 수분이 적고 건조한 날씨의 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해, 줄기나 잎에 많은 양의 수분을 저장하고 특별한 광합성을 합니다. 
    
다육식물은 고온 건조에 대단히 강하여 한여름 뙤약볕에 던져 놓아도 좀처럼 죽지 않습니다. 이토록 고온 건조에 강한 것은 육질의 잎과 줄기에 수분을 저장하고 있으며 일반 식물에서는 볼 수 없는 CAM(Crassulacean acid metabolism)이라는 특별한 광합성 시스템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막이나 수분이 부족한 곳, 밤낮의 온도 차가 큰 환경에 적응한 식물들입니다. 보통 식물은 햇볕이 있는 낮에 잎 뒷면의 기공(氣孔)을 열어 CO2(이산화탄소)를 얻어 광합성작용을 합니다. 동시에 열린 기공으로 많은 양의 수분이 빠져나갑니다. 그러나 사막처럼 뜨겁고, 건조하거나 바위처럼 메마른 곳에서 자라는 식물은 수분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뜨거운 낮에 기공을 닫습니다. 대신 시원한 밤에 기공을 열어 CO2를 흡입하여 저장했다가 낮에 광합성을 할 때 사용하는 놀라운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CAM형 광합성이라 합니다. 선인장, 돌나물, 쇠비름, 알로에, 산세비에리아, 풍란, 호접란 등이 대표적인 CAM 식물입니다. 이들은 밤에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므로 실내나 침실에 두면 공기를 정화하는 기능을 갖습니다.
     
여리고 작은 한 송이 꽃, 좀바위솔! 생의 지혜가 신비롭기만 합니다. 아무 생각도 감각도 없는 것으로만 여기고 있는 것이 식물입니다. 하지만 한 줌의 흙도 없는 딱딱하고 거친 바위 겉에 붙어 수분도 제대로 취하지 못한 주어진 여건에 자족하며 살아남기 위한 특수한 광합성의 생존술을 터득한 식물입니다. 땡볕과 거친 비바람을 묵묵히 견디고 자라나 후대를 위하여 죽음을 마다하지 않고 꽃을 피워 생명체로서의 마지막 임무를 완수합니다. 놀라운 생존 지혜와 종족 보존의 생체 본능을 좀바위솔에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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