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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형태화, 그 다름의 존중
안진의 2018년 09월 21일 (금) 00:09:23
 (정영권, 종이에 연필, 2017)
 

한 학생의 드로잉은 생각을 형태화하는 모습이 독특합니다. 운전자들이 보게 되는 교통 신호등을 그렸는데, 위로부터 빨강 주황 초록 등이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빨강은 위험의 의미답게 화가 난 모습이고, 주황 역시 경고의 모습처럼 인상을 찌푸리고 있고, 초록은 안전의 뜻을 품듯 웃고 있습니다. 자신의 등 위로 두 명의 사람을 태우고 있어도 개의치 않은 표정입니다.

이외에도 문에 문고리가 수없이 달려 있는 드로잉이 있는데, 어느 문고리를 잡아야 문을 열고 나갈 수 있을지, 방황과 불안, 혼란스런 심리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두 눈 중에 한쪽 눈에만 동공을 두 개 그리고 나머지 한쪽 눈엔 동공을 비어 있게 그린 그림은 어쩌면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이 이런 한쪽의 쏠림만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도 합니다.

화가들은 시각 이미지를 통해 생각을 형태화합니다. 이 때 발휘되는 독창성은 작품의 중요한 평가기준이 됩니다. 따라서 발상하고 표현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저마다 개성 있는 시각 이미지를 만들어내려 고심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화폭에서는 자유롭고 특이해야하지만 일상에서는 평범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닉 수재니스의 <언플래트닝(unflattening) 생각의 형태>는 컬럼비아 대학 최초의 만화로 된 철학 박사 논문을 책으로 출판한 것입니다. 문자에 의한 설명보다 시각적 이미지가 인식을 보다 넓게 확장시켜 주고 있으며, 영감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책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인류의 풍경을 매우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패쇄된 틀 속의 인간 군상으로 그려냅니다. 그래서 이 사회를 “숨 막힐 듯 경직된 채 ‘단조로움(flatness)’으로 가득 찬 풍경”이라고 말합니다.

머릿속에 새겨진 수많은 틀은 내재화되며, 스스로 보지도 못하고, 보이지도 않는 동떨어진 힘에 의해 자신의 가치를 평가받는다고 합니다. 역동적인 존재로서 인간의 잠재적 에너지는 감소되고 그 활기를 완전히 잃었으며, 대신 단조로움만 덩그라니 남았다고 합니다. 흑백으로 그려진 만화 속 무표정하게 획일화된 인간의 모습은 결국 텅 빈 공백처럼 컴컴한 어둠으로 사라집니다. 닉 수재니스 역시 낯설게 보고 다르게 생각해야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음을 말합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자주 듣던 속담입니다. 여기에는 사회적 존재에 대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정을 때리는 주체는 내가 아닌 타인입니다. 말과 행동이 모가 나면 미움을 받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타인과 무던히 어울리기 위해 튀지 말아야 함을 말하며, 이때의 기준은 타인에 의한 것입니다. 결국 타인의 시각에 의해 자아는 일반화된 타자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세상이 모두 둥근 돌만으로 이루어지고 모두 비슷한 생각만 하고 있다면 어떨까요. 이상화된 사회일까요? 닉 수재니스의 말대로 단조로운 풍경 속, 내재된 틀이 우리를 결박하고 있을 것입니다. 예술작품에서만 다양한 생각의 개성 있는 형태화를 찾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도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주면 더 좋지 않을까요?

 

성격, 외모뿐 아니라 가치관, 이데올로기도 다를 수 있습니다. 개인의 고유성을 존중하면서 공동체적 가치도 중시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로 지나칠 만큼 타인의 삶을 자신의 삶의 방식으로 규정하고 그 틀에 맞추어 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여 머뭇거립니다.

세상에 같은 사람이 없듯 생각도 다를 것이고 표현도 다를 것입니다. 그 다름을 존중하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일 수 있길 바랍니다. 다름이 위협이 아니라면,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아 다소 불편하더라도 꺼리지 않길 바랍니다. 열린 사고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다양한 생각의 형태화가 삶을 얼마나 다채롭고 풍요롭게 만드는지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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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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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ng0757 (128.XXX.XXX.142)
늦게 본 컬럼이지만 참 좋은글이네요.
간직하고 다음에 한번더 읽어볼래요.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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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5 12:19:05
0 0
두루킹 (221.XXX.XXX.73)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는 속담은 이제 재평가받아야 합니다.
이 속담이야 말로 이 사회가 유지되는 근본 원리를 단순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죠.
모난 돌은 정을 맞습니다.
그 결과 이 사회가 충분히 오래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입니다.
물론 아주 오래 그대로 유지되지는 않죠.
정을 맞고 버티는 돌 또는 정을 박살내버리는 돌,
정을 매혹(또는 매수)하는 돌이 가끔 등장하거든요.
그 결과 사회는 어디론가 도약하고 달라지죠.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단순히 모난 돌들이 많다고 사회가 다채롭고 풍요롭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모난 돌들끼리 서로 부딪쳐 서로 부서지고 상처나는,
만인이 만인을 괴롭히는 사회가 될 겁니다.

그래서 이 속담은 잘해봐야 평범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주는
생존과 성장을 위한 절대적 교훈이기도 합니다.
정을 맞아도 버틸 정도의 멘탈을 가졌거나
또는 정을 맞고 오히려 정을 박살낼 정도의 능력자,
또는 정을 매혹시킬 정도의 매력/재력있는 자가 아니라면,
또는 그런 잠재력을 가진 자라도 충분한 수준에 도달하기 전에는
기존 질서에 도전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다름"을 무조건 존중해 줘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다름의 가치는 스스로 증명해야 합니다.
남들의 다름은 나에게 그걸 인정하거나 거부할 판단의 수고로움과
끊임없이 그런 다름에 반응해야 하는 피로감을 강요합니다.
그 다름이 나의 수고와 피로감에 응당 보상을 주지 못한다면
그 다름은 나의 정을 맞을 수 밖에 없습니다.
즉, 어떤 사람이 자기의 다름에 대해 인정받고자 한다면,
내가 휘두를 정도 인정해줘야 합니다.

나의 다름에 대해 남들도 똑같이 반응할 것은 당연합니다.
내가 달라서 그들을 피곤하게 하였다면, 나는 그들에게
그 피곤함을 보상해주어야 나의 다름이 용납될 수 있는 것이고,
그래야 나는 계속 다를 수 있는 겁니다.

수많은 모난 예술가들이 우리를 피곤하게 합니다.
그들은 그 때문에 우리에게 정을 맞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매혹적인 예술로 보상하는 예술가들은 자기들의 다름을
계속 유지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 다름이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럴 배짱이 없다면 정을 맞고 사라지는 거죠.

그리하여,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는 것은 또하나의 황금률입니다.

p.s. 우리는 계속 모난 돌을 정으로 칠 수 있어야 하며, 그래야
몰상식과 궤변을 다름이라고 우겨대는 사람들을 사회에서 퇴출시킬 수 있습니다.
그 최근의 성과가 바로 박근헤 탄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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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1 21:09:38
0 0
고레 (121.XXX.XXX.14)
박근혜 이명박만 아니면 바른 소리도 할 줄 아는군.
답변달기
2018-10-06 10:05:45
0 0
꼰남 (59.XXX.XXX.120)
맞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시선과 생각이
우리 삶을 더 다채롭고 풍요하게 만들어 준다고 믿습니다.
답변달기
2018-09-21 11:00:24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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